[박칼린의 길 위의 명상] ‘동서문답(東西問答)’의 시대

2025. 11. 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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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답(東西問答)'.

한국에 오래 살았어도 한국어가 외국어인 필자에게 사자성어는 어쩔 수 없이 순서가 헷갈리는 네 음절의 단어일 때가 많다.

그래서 "동문서답"을 말하려는데 꼭 "동서문답"이 먼저 입에서 나와 사람들이 웃으면서 고쳐주고는 하는데, 오늘은 의도해서 쓴 말이다.

동문서답이 넘쳐나는 대화 속에서 길을 잃은 시대, 그 속에서 칼린의 사자성어도 같이 길을 잃은 동서문답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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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답(東西問答)’. 한국에 오래 살았어도 한국어가 외국어인 필자에게 사자성어는 어쩔 수 없이 순서가 헷갈리는 네 음절의 단어일 때가 많다. 그래서 “동문서답”을 말하려는데 꼭 “동서문답”이 먼저 입에서 나와 사람들이 웃으면서 고쳐주고는 하는데, 오늘은 의도해서 쓴 말이다. 동문서답이 넘쳐나는 대화 속에서 길을 잃은 시대, 그 속에서 칼린의 사자성어도 같이 길을 잃은 동서문답의 시대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잘 듣지 않은 채 대답을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일을 할 때에도, 일상생활에서도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경우가 점점 줄어든다. 이는 식당이나 우체국에서 주변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 식빵은 저기 진열돼 있는 우유식빵과는 어떻게 다르죠?” “이건 도쿄식으로 만들었어요.” / “그 담당자 연락처가 어떻게 되죠?” “제가 연락했어요.” / “택배 보내는 분 성함을 뭐라고 쓰셨어요?” “인천 주소를 썼는데…. ”

“제발 묻는 질문에 답을 해달라.” 필자가 요즘 들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참 많이 부탁했던 거다. 그럼 사람들은 5초간 생각하다가 그제서야 답을 한다. 너무 당연한 걸 부탁해서인지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그제서야 다시 답을 주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던 일이 이상하게 마무리가 안 돼 물어보면, 늘 중간에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대화를 하면서 주어를 빼먹어서 오해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동안 협업하는 사람들에게 ‘주어를 빼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필자는 이게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들리지만 듣지 않는 세상’이라 할 만 하다. 상대방이 왜 이 질문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황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 대화방식과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대화법이 요즘 한국 사회에서 심해진 것 같다. 물론 이는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문화’ ‘직접적으로 말하면 부담스러워 하는 문화’ ‘말로 안해도 알아서 행간의 숨어있는 뜻을 알아차려야 하는 문화’ 때문인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사람과 대화에서 이런 상황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더군다나 효율성이 중요한 일터에서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서 몇 번씩이나 대화가 오고 가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계속 엇나가서 오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 이 사람이 뭔가 숨기는 게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 않아도 될 의심까지 하게 될 때가 많으니 여러모로 비효율적인 것이 많다.

말과 관련된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매일 꾸준히 훈련을 해야하는데, 필자는 이 시작이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쁘다고 대충 듣고 대충 말하는 것만큼 더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 역시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해야 하니 조리있게 말하는 능력도 같이 동반돼야 할 훈련이다. 오늘부터라도 스스로 말하기·듣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져서 모두가 명확히 질문하고 정성껏 대답한다면 대화의 즐거움이 훨씬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박칼린 공연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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