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내 국민을 홀대하며 세계를 대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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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사람을 잘 부리려면 먼저 배불리 먹여라."라는 말이 있었다.
아무리 회의장이 화려하고 조명이 눈부시다 해도, 그 뒤편에서 국민이 추위에 떨고 피로와 배고픔에 지쳐 있었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 한없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남기는 일이다.
내 국민이 존중받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자존심이며 다음 세대에 물려줄 떳떳한 유산이다. 국민 한 사람의 눈물과 수고를 잊지 않는 나라, 그것이 국가의 진정한 품격이며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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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사람을 잘 부리려면 먼저 배불리 먹여라."라는 말이 있었다. 『손자병법』에는 "병졸의 배를 곯리면 전쟁은 이미 패한 것이다."라고 했고, 로마의 장군들은 병사들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신뢰를 다졌다. 서양 속담에도 "좋은 주인은 하인을 먼저 먹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약속이자 도리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시대를 넘어 인간의 기본 윤리이며, 문명의 품격을 결정짓는 기준이다.
이달 초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라는 화려한 뉴스의 이면에는 현장의 안전을 위해 투입된 경찰관들의 고단한 현실이 숨어 있었다. 최대 1만9천여 명이 동원되었지만, 숙소와 식사 제공은 턱없이 미흡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가 공개한 사진에는 근무복을 입은 경찰관이 종이상자를 덮고 쪽잠을 자는 모습이 담겼다. 일부 경찰은 영화관 대형 스크린 앞이나 복도에서 모포 한 장 깔고 밤을 새워야 했다. 한 경찰은 "모텔 화장실이 문이 없고 통유리로 돼 있었다."라며 "룸메이트에게 보여줄 수조차 없다. 감방에도 칸막이는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도시락을 받지 못해 사비로 밥을 사 먹거나 찬밥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준비 미비가 아니다. 국가의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인권과 복지가 방치된 명백한 행정 실패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이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공직은 봉사가 아니라 책임이며, 그 책임의 가장 기본은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다. 행사장의 화려함에만 몰두하고 현장 근무자들의 처지를 외면한 행정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시스템의 도덕적 해이와 파산을 보여준다.
경찰청과 APEC 기획단은 1년 넘게 세계 정상들을 맞을 행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정작 국가의 얼굴인 현장 경찰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 편히 쉴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화려한 회의장 뒤편에서 경찰이 박스를 덮고 잠든 나라, 그것을 '성공'이라 부를 수는 없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누가 이런 인력 운용을 결정했고, 왜 점검하지 않았는지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 책임자를 문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전수조사와 평가 보고서를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또한 동원된 경찰관들에게는 합당한 보상과 휴식이 주어져야 한다. 격려금 몇 푼이 아니라 충분한 특별 휴가와 인권 교육 강화 등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 헌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조직에 자긍심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는 국가 행사 인력 운용 매뉴얼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경찰뿐 아니라 군·소방·공무원 등 대규모 행사에 투입되는 모든 공직자에게 숙식·안전·복지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사람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행정, 위계로 움직이는 낡은 조직문화로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존재이지, 보여주기 위한 행정의 소모품이 아니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국민을 홀대하며 외국 귀빈을 맞이하는 것은 내실 없는 허세이며 허망한 자존심일 뿐이다. 아무리 회의장이 화려하고 조명이 눈부시다 해도, 그 뒤편에서 국민이 추위에 떨고 피로와 배고픔에 지쳐 있었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 한없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남기는 일이다. 진정한 국격은 국제행사 성적표가 아니라 그 행사를 떠받친 사람들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밥 한 그릇, 깨끗한 이불 한 장, 편안한 잠자리가 곧 나라의 품격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박스를 이불 삼아 새벽의 냉기에 몸을 웅크린 경찰의 숨소리를 기억하자. 그들의 피로와 분노가 두고두고 부끄러움으로 남지 않게 해야 한다. 국가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국민은 그 노고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진정한 '성공 외교'를 말할 수 있다. 국민의 희생 위에 쌓은 성취는 오래가지 못한다. 내 국민이 존중받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자존심이며 다음 세대에 물려줄 떳떳한 유산이다. 화려한 회의장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이 땅의 정의와 따뜻함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 한 사람의 눈물과 수고를 잊지 않는 나라, 그것이 국가의 진정한 품격이며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이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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