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김 모락모락 ‘찐빵’ 공연장으로의 초대

조은별 기자 2025. 11.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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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49) 슬지제빵소 김종우 대표 <전북 부안>
곰소염전 천일염 넣어 만든 ‘소금찐빵’
종류도 다양…작년 매출액 30억 돌파
‘바다·산·들’ 모두 있어 식재료 무궁무진
농가서 직접 조달, 일부는 계약재배
“지역 맛 담고 주민에 일자리도 제공”
전북 부안에 있는 슬지제빵소 외관. 건물이 찐빵처럼 하얗다. 부안=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호호’ 불어 먹는 찐빵이 슬며시 떠오르는 서늘한 계절이다. 전북 부안엔 이 찐빵 하나로 전국의 발길을 모으는 집이 있다. 주말이면 2000명 가까이 찾아온단다. ‘대체 어떤 맛이길래?’ 궁금증을 안고 ‘슬지제빵소’로 향했다.

곰소염전 인근. 찐빵처럼 뽀얀 건물이 서 있다. 문을 열자 오른편엔 다양한 찐빵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고, 뒤쪽 찜기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왼편엔 계단식 좌석이 마련됐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찐빵을 연주하는 공연장 같다. 이 ‘달콤한 무대’를 지휘하는 이는 김종우 슬지제빵소 대표(31)다.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을 위해 세련되게 꾸민 제빵소 내부.

“찐빵 하면 예스러운 겨울 간식 같죠? 이곳에선 우리농산물의 건강과 색다른 재미를 담은 빵을 찌고 있답니다. 부안 특산물인 오디·뽕잎·호박·흑미·현미로 반죽을 물들이고, 소엔 크림치즈나 생크림을 넣기도 하죠.”

곰소염전의 천일염이 들어간 찐빵과 부안산 오디로 만든 오디봉봉, 역시 천일염이 들어간 흑당소금커피(왼쪽부터).

슬지제빵소에서 찐빵의 변신은 무죄다. 오색찐빵·생크림찐빵·부안단팥찐빵·곰소소금찐빵 등 종류도 다채롭다.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소금찐빵이다. 주말엔 줄 서서 사야 할 정도다. 맛을 보니 풍부한 버터향에 겉과 속이 모두 쫀득한 식감이 하모니를 이룬다. 찐빵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김 대표는 “빵에 들어간 소금은 곰소염전에서 나온 천일염”이라며 “바다향을 줄이기 위해 고생 좀 했다”며 웃었다.

천일염은 제과·제빵할 때 쓰는 소금과 달리 감칠맛이 난다. 김치나 젓갈을 담그기엔 제격이지만 빵에 넣으면 혼자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지역소금을 꼭 쓰고 싶었던 김 대표는 1년 동안 여러 발효종을 넣어보며 적절한 맛의 비율을 찾아 헤맸다. 온 마음을 다해 만들어낸 찐빵 덕에 작년엔 매출액이 30억원을 돌파했다.

“사실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었어요. 가족들과 고생도 많이 했죠.”

김종우 슬지제빵소 대표.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먼저 김 대표의 아버지가 둘째 딸 이름을 따 ‘슬지네 안흥찐빵’을 열었다. 16.5㎡(5평) 정도 되는 작은 가게엔 솥 하나뿐이었다. 어머니와 셋째 딸, 막내 종우씨도 힘을 보탰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반죽하고 팥소를 빚었지만 연매출은 4000만원을 맴돌았다. 동네 장사로는 한계가 있었다. 2013년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하자 서울서 살던 슬지씨가 돌아왔다. 가게 일을 돕던 슬지씨는 2015년 ‘농식품 및 아이디어 가공제품 콘테스트’에서 부안 특산물인 참뽕을 이용한 팥소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 대표는 “1억원이란 상금을 받고 누나가 모험심이 불타올랐나 보다”며 “전국에 찐빵을 알리고자 대출을 추가로 받아 곰소항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때 선보인 생크림찐빵과 크림치즈찐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탔고 매출액이 3억원을 넘어섰다.

아버지·누나에 이어 2022년부턴 김 대표가 제빵소를 잇는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빵을 개발하는 데 힘쓴다. 거침없는 도전으로 매출이 느는 것은 물론 전국서 협업 요청도 온다. 찐빵이 잘 팔리니 지역농가도 살아난다. 되도록 부안에서 생산한 재료를 구매하기 때문이다. 농가 100여곳에서 신선한 농산물을 받아 오고 일부와는 계약재배도 한다. 일년 동안 사용하는 밀만 해도 30t, 팥은 20t에 달한다. 김 대표는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은 아버지에게 배운 교훈”이라며 “아버지는 새참으로 찐빵을 배달하러 논밭을 오가곤 했는데, 그때 농민들을 자주 만나며 우리농산물의 중요성을 느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에서도 지역주민을 먼저 생각한다. 부안 토박이인 김 대표는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슬지제빵소 직원 18명은 모두 부안 청년과 은퇴한 어르신이다. 기부도 꾸준히 한다. 2024년엔 어려운 이웃에게 5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건네며 선한 영향력을 전했다. 따뜻한 온기는 회사에 퍼져나가 올해엔 직원 모두가 민생쿠폰을 장학금과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김 대표는 분주히 일하다가도 손님과 마주치면 환히 웃으며 인사한다.

“찐빵을 맛보러 멀리서 오는 손님을 보면 진심으로 감사하죠. 그래서 ‘부안다움’을 찐빵에 담고자 더욱 애를 씁니다. 이곳엔 바다·산·들이 모두 있어 도전할 재료가 끝도 없거든요. 앞으로도 부드러운 반죽 속에 지역의 맛을 꾹꾹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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