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재개발 갈등… 주민들 “생존권 달려, 사업 막으면 정부 고발”

최연진 기자 2025. 11. 1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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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높이 규제 놓고 입장차 여전

서울 종묘(宗廟) 앞 재개발 구역의 높이 규제 완화를 놓고 서울시와 정부가 정면충돌한 가운데, 재개발 구역(세운4구역) 주민들이 “정부가 재개발 사업을 막으면 고발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슬럼화된 도심을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고층 빌딩 숲이 들어서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의 경관(景觀)이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주민들, 세운상가 앞 기자회견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주민들이 11일 세운상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라’ ‘사유재산 침해하는 입법 반대’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었다./박성원 기자

세운4구역 주민 100여 명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운4구역은 종묘 정전(正殿)에서 600m 떨어져 있는데도 국가유산청 등이 맹목적인 높이 규제를 외치고 있다”며 “주민 생존이 걸린 세운4구역을 정치적 싸움터로 전락시키지 말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의 높이 제한을 최고 71.9m에서 141.9m로 완화하는 내용의 재개발 계획을 고시했다. 종묘 앞에 있는 세운상가를 허물어 공원을 조성하고 세운상가 양옆에 있는 세운4구역 등 재개발 구역을 고밀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높이 규제를 완화해 재개발 조합이 얻는 이익 1조5000억원으로 공원을 조성한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될 위험이 있다”며 반발했다.

지난 6일 대법원은 문화재 주변의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의회의 조례 개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세운4구역 개발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일 “관련 법을 개정해서라도 종묘 일대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최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대법원 판결은 조례 개정 절차가 적법했다는 것이지 개발 계획 자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지난 10일 종묘를 찾아 “종묘 근처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에서 보는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게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든다”고 했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묘를 훼손할 일이 결단코 없다”며 “공개 토론을 하자”고 했다.

이날 주민들은 “세운4구역은 문화재 보호구역(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밖에 있는데도 그동안 과도한 규제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종묘는 정전 등 건물과 주변 녹지로 구성된다. 서울시는 종묘 담장에서 100m까지 구역을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으로 지정해 규제한다. 그 안에서는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없다.

세운4구역은 종묘 담장에서 173~199m 떨어져 있지만 그동안 높이 규제를 받아왔다.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밖이라도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인허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서울시 문화재 보호 조례 때문이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 정전에서 바라봤을 때 건물이 담장 주변 나무 위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며 세운4구역 높이를 55~71.9m로 정했다. 최고 18층 건물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회가 개정한 것이 바로 이 조례다.

주민들은 “종묘 정전에 서면 나무 위로 을지트윈타워 등 건물이 줄줄이 보인다”며 “세운4구역만 맹목적인 규제에 시달렸던 것”이라고 했다.

주민 유정원(74)씨는 “종묘는 4구역 주민들에게도 소중한 곳”이라며 “종묘를 망쳐서 떼돈을 벌자는 게 아니라 최소한 정당한 재산권은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장복수(80)씨는 “2006년부터 20년간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저 높이 규제 때문에 사업성이 안 나와 착공도 못 하고 있다”며 “첫 삽 뜨는 날보다 죽을 날이 더 빨리 올 것 같다”고 했다.

주민들은 또 “종묘 정전은 종로3가역이 있는 남서쪽을 향하고 있어 종묘 남쪽에 있는 세운4지구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4구역 조합이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종묘 정전에 섰을 때 4구역은 왼쪽으로 44도 각도에 있다. 주민들은 “사람의 시야는 보통 좌우 30도씩인데 4구역은 그보다 10도 이상 왼쪽에 있어 종묘의 경관을 해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도시 전문가들은 “문화유산 보호와 도심 개발, 재산권 보호 사이에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도심 곳곳에 문화유산이 있는 서울의 경우 문화유산 보호에만 치중할 경우 지역이 슬럼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종묘 경관의 핵심은 정문에서 정전을 바라봤을 때 모습”이라며 “문화유산 주변을 일률적으로 규제할 게 아니라 위치에 따라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영국 런던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런던타워 주변에 높이 160m 전망대와 랜드마크 빌딩을 지어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운상가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면 종묘에서 남산까지 길이 900m, 폭 100m 녹지 축이 생겨 종묘가 더 돋보인다”며 “종묘 일대가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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