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다니 ‘알뜰 식료품점’에… 뉴욕 상인들 “소련식 배급제냐” 시큰둥

“정말로 시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만 해도 가게마다 같은 제품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10일(현지 시각) 오전 10시 미국 뉴욕 맨해튼 로어 이스트의 공설 시장 에식스 마켓의 청과물 가게 ‘루나 브러더스 프루트 플라자’에서 만난 상인 이자니아 오소리오씨는 조란 맘다니(34·민주당) 뉴욕시장 당선인의 대표 공약인 ‘물건값을 확 낮춘 시영(市營) 식료품점 운영’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물건을 파는 에식스 마켓 역시 시에서 운영을 맡은 시장인데도 이런 상황인데 맘다니 구상대로 될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상인도 거들었다. “이곳에 입주하는 상인이 시세의 80% 정도 되는 낮은 임차료를 지불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물건값을 낮게 받는 건 아니에요.”

에식스 마켓은 1937년 피오렐로 라과디아 당시 뉴욕시장이 혼잡하고 비위생적인 노점 문화를 정비하겠다며 세운 공설 시장이다. 한때 뉴욕을 대표하는 시장이었지만, 1970~80년대 최신식 수퍼마켓과 대형 할인점 공세에 밀려 존폐 위기에 몰리자 1995년 뉴욕시 산하 경제개발공사(NYCEDC)가 직접 경영에 참여했다. 150만달러(약 22억원)를 투입해 현대화 사업이 진행됐고, 2019년에는 시설을 새로운 곳으로 이전했다.
인도계 무슬림 이민자 출신인 신진 정치인 맘다니가 생활고에 허덕이는 젊은 층과 서민을 겨냥해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를 외치며 돌풍을 일으킬 때 에식스 마켓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가 설치를 약속한 시영 시장의 원류(源流)로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지금은 맘다니 구상의 비현실성을 보여주는 장소로도 각인되고 있다. 이곳은 NYCEDC가 운영하는 뉴욕 공설 시장 중 가장 규모가 크다.하지만 50여 점포 중 청과물 가게와 정육점, 어물전 등은 일반 시장과 큰 차이가 없어 서민들의 ‘알뜰 장보기’가 사실상 어렵다. 진열된 가격표를 봐도 오렌지(2개 1.5달러), 블랙베리(한 팩 4달러), 자두(한 개 99센트) 등으로 다른 매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맘다니는 선거운동 기간 6000만달러(약 880억원)를 투입해 맨해튼·퀸스·브롱크스·브루클린·스태튼아일랜드 등 자치구 한 곳당 각 한 개씩 시영 식료품점을 열고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공급하겠다며 차별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 “21세기 뉴욕에 소련식 배급제를 도입하자는 거냐”며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맘다니는 이 밖에 생후 다섯 살까지 모든 아이에 대한 무상교육, 시내버스 무료화, 시중보다 대폭 임차료를 낮춘 임차료 안정화 주택 등 대중 영합적 공약을 대거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이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맘다니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던 민주당 소속 캐시 호컬 주지사부터 ‘100% 공약 이행’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호컬은 지난 9일 “버스 및 지하철 요금에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재정을 빼내는 계획을 지금 당장 시작할 수는 없다”며 뉴욕 시내버스 무료화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호컬은 지난 8월에도 한 조찬 행사에서 맘다니의 시영 식료품점 구상에 대해 “나는 자유 기업 체제를 선호한다”며 단호하게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맘다니의 정책 실현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주의회의 승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맘다니가 재원 확보를 위해 자신의 세제 공약인 법인세 인상과 부유세 신설을 추진하려면 주의회를 거쳐야 한다.
맘다니는 이날 2018~2021년 뉴욕 부시장을 지낸 딘 풀레이한(74)을 재기용했다. 맘다니 아버지뻘 나이인 그는 시 예산국장과 뉴욕주 하원 최고 재정 및 정책 고문을 지낸 예산 전문가다. 맘다니가 포퓰리스트 이미지를 탈피하고 주정부·주의회 협조를 순조롭게 얻을 수 있는 공약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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