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도박 빚도 못 거르는 탕감 정책
‘빚 탕감’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가장 먼저 내놓은 정책 중 하나다. 금융 당국은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개인’ ‘7년 이상 연체’ ‘5000만원 이하’라는 기준을 정했다. 이 조건에 맞으면 빚을 모두 없애주기로 한 것이다. 지난 6월 4일 대통령 취임 후 불과 보름 만의 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이 정책을 칭찬했다. 새 정부 출범으로 해체 위기에 놓였던 금융위원회는 빚 탕감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말도 들린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면 빚 탕감 정책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재명 표 빚 탕감’은 이전 정부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신청 없이 정부가 알아서 깎아준다는 점이다. 물론 일괄 탕감 방식이 과거 정부에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세금 투입 없이 금융사들의 희생으로만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금(정부 재정)이 4000억원이나 투입된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 보니 정책 발표 직후 ‘내 세금으로 코인 투자나 도박하다가 생긴 빚을 깎아주느냐’ ‘룸살롱 운영하다 빚을 져도 세금 들여 없애주느냐’는 식의 질문이 쏟아졌다. 당황한 금융 당국은 황급히 “아니다”라며 진화했다.
그런데 넉 달여가 지난 현재, 빚 탕감 정책을 집행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내놓은 얘기는 달랐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개인이 도박이나 투자 실패로 진 빚을 구분해 낼 수 있느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한국자산관리공사는 “표준산업분류에 따른 업종 코드로만 사행성 채권 여부를 확인한다”고 답했다. 공식 통계 기준 말고는 빚을 왜 졌는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금융 당국 관계자도 “대상자가 너무 많고, 따로 심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빚 성격을) 알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이와는 반대로 묵묵히 생활하다 빚을 진 사람들은 대상에서 제외될 처지다. 빚 탕감 대상자가 진 전체 채무는 약 12조9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대부 업체에서 빌렸다 갚지 못한 액수(약 6조7000억원)는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대부 업체 가운데 정부 방침에 동의해 탕감될 규모는 5825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대부 업체가 빚 탕감에 나설 경우 정부가 대부 업체에 보전해 주겠다는 금액이 대부 업체들이 원하는 금액과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정부의 설득에도 대부 업체들은 ‘밑지고 장사할 수 없다’며 버티다 보니 성실한 사람의 빚은 없애지 못하고, 도박·유흥 때문에 발생한 빚을 깎아주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빚 탕감 정책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도덕적 해이 우려가 꼬리표처럼 따른다. 급해선 안 되고, 충분하고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은행의 높은 대출금리 등을 언급하며 “금융이 너무 잔인하다”고 했지만, 대부 업체의 반발에 공감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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