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소득의 이면: 한국에 생길 4600만원의 벽과 일본이 허무는 1억엔의 벽

한정연 기자 2025. 11. 11. 19: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마켓톡톡
日, 금융 과세 강화해 휘발유세 대체
부자일수록 세율 낮은 ‘1억 엔의 벽’
공평성·과세 정의 회복 위해
최저한세 강화·종합과세 포함 고려
韓 배당소득 최고세율 하락에 집착
불공정·불평등 악화 불 보듯

우리나라 정부가 불공정과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재벌 총수들에게나 적용하는 배당소득 최고세율을 어떻게든 낮추려고 노력하는 사이, 일본 정부는 정반대 발걸음을 내디뎠다.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을 분리 과세하느라 생긴 정책 실패의 상징 '1억엔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일본은 왜 금융소득을 다시 종합 과세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배당 부자들의 실효세율을 높이려고 하는지 자세히 알아봤다.

가타야마 사츠키 일본 재무부 장관은 최근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할 뜻을 내비쳤다. [사진 | 뉴시스]

일본은 1989년 이후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에 20%의 단일 세율을 부과했다(2037년까지는 특별소득세 포함 20.315%). 배당과 주식 매각 차익이 누진적인 종합과세 체계에서 빠져나가자, 배당소득 부자들이 실제로 적용받는 실효세율은 평범한 직장인의 소득세율을 밑돌았다.

배당 부자들의 실효세율이 눈에 띄게 낮아지기 시작하는 구간이 바로 연소득 1억엔(약 9억5000만 원)이다. 그래서 부자보다 더 가혹한 세율을 적용받는 일본 서민 대부분은 소득 '1억엔의 벽' 앞에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 4600만원의 벽=20% 세율은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소득에 적용할까. 연소득 330만엔(약 3135만원) 이상을 버는 직장인에게 적용한다. 연간 배당소득이 1억엔(약 9억5000만원)이어도 월급 27만5000엔(약 261만원)인 직장인과 같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는 얘기다. 각종 투자 관련 세액공제 등 혜택을 합치면, 1억엔 배당소득의 실효세율은 더 낮아진다. '1억엔의 벽'이 일본 직장인에게는 '통곡의 벽'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해까지 우리는 배당소득과 같은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넘으면 일본과 달리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포함해 과세했다. 소득이 많아질수록 세율이 누진적으로 상승해 연소득이 10억원을 초과하면 최고세율 45%(지방소득세 포함 49.5%)를 적용했다.

그런데 지난 8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은 금융소득을 종합과세에서 분리하고 최고세율을 35%로 낮췄다. 연소득 8800만원, 월급 733만원(실수령 586만원)인 직장인에게 적용하는 세율이 35%다.

일부에서는 오는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에서 배당소득 최고세율을 25%로 낮추는 안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봉 4600만원, 실수령액으로는 월급 383만 원(실수령 333만원)인 직장인에게나 적용하는 세율이다. 일본 직장인들이 통곡하는 벽은 '1억 엔의 벽'인데,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고작 '4600만원의 벽' 앞에서나 통곡해야 한다.

■ 필요에 의한 정의도 정의=일본 정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의 증권 계좌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신고하지 않으면 과세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런 제도를 보완한 1989년부터 일본은 주식 매매를 통해서 얻은 주식 양도소득과 배당소득을 분리 과세했다. 사실상 과세 범위를 넓히는 일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불황과 디플레이션이 겹쳤던 2003년에는 이자가 발생하지도 않는 저축 대신 투자를 통해 기업활동을 지원하자는 목적으로 20% 단일 세율로 금융소득 분리과세를 실시하고, 10년간 한시적으로 10% 세율을 적용했다. 우대 세율이 폐지된 2014년에는 금융소득 세율은 20%로 유지하고, 대신 소액 투자 비과세 제도를 연간 350만엔 한도(약 3300만원)로 시행했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도 높아지는 누진적인 종합과세보다 소득이 적을수록 세 부담이 많은 역진적인 분리과세 체제가 불공정을 조장하고, 불평등을 악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1억엔의 벽'이다. 일본 정치권은 오랜 기간 과세 공정성 회복의 차원에서 이 벽을 해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해체에는 동의했지만, 조세 저항 등을 고려해 지난해에야 흐릿한 윤곽이 나왔다.

사실 '1억엔의 벽'이 올해 일본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올해 12월 31일에 폐지되는 휘발유세 잠정세율을 대체할 과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리터당 25.1엔인 휘발유세 잠정세율로 일본 정부는 매년 세금 1조5000억엔(약 14조2500억원)을 거뒀다. 그래서 일본 정치권의 이번 과세 정의 회복은 사실 '필요에 의한 정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금융소득세 강화 정책이 가진 과세 정의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부자일수록 세율이 낮았던 일본의 오랜 불공정을 바로잡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재무부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소득세의 강화는 2014년 이후 10년 이상 지속해 온 소액 투자 비과세 제도와 부닥치는 측면이 존재해서다.

가타야마 사츠키 재무부 장관은 지난 10월 24일 "금융소득 과세 강화를 예단할 수는 없다"며 이렇게 우려했다. "세금 부담의 공평성과 함께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원칙도 계속 추진하겠다.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하기 쉬운 환경을 손상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최저한세냐 종합과세냐=그렇다면 일본은 금융소득 과세 체계를 어떻게 바꿔나가려는 걸까. 대략 3가지 방안이 거론된다. 우선, 기시다 정권에서 이미 도입을 결정한 최저한세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다. 2025년 소득을 기반으로 내년 소득세 신고 때 적용하는 금융소득 최저한세는 최저 실효세율이 기준 이하로 내려가면, 그 차액을 추가로 내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도입 예정인 최저한세 연소득 기준은 30억엔(약 285억원) 이상으로 좁고, 공제한도도 연간 3억3000만 엔으로 넓으며, 최저세율도 22.5%로 높지 않다. 과세 공평성을 회복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연간 10억엔 소득을 올린 사람의 실효세율이 15%면, 올해까지는 소득세 1억5000만엔을 내면 됐지만, 내년 신고부터는 10억엔에서 3억3000만 엔을 공제한 금액에 22.5% 세율을 적용해 1억5075만엔을 내야 한다. 그래서 최저한세를 도입하되 이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

코스피는 11일 전 거래일보다 33.15포인트 상승한 4106.39에 장을 마감했다. 여야는 배당소득세를 낮추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사진 | 뉴시스]

연간 금융소득이 일정액 이상이면, 종합과세에 포함하는 한국식 종합과세 방안도 거론된다. 우리는 포기한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의 종합과세지만, 일본에서는 유력한 방안 중 하나다.

과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종합과세도 소득이 증가할수록 세율이 인상된다. 최고세율은 55%다. 분리과세는 유지한 채 금융소득 최고세율을 현행 20%에서 30% 이상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거론되다. 분리 과세하는 금융소득세 최고세율을 30% 이상으로 높이되 종합과세와 분리과세 중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프랑스식 종합과세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야가 유일하게 마음을 모은 건 배당소득세의 최고세율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내리는 일이다. 내년부터 우리나라 서민과 청년들 앞에는 '1억엔의 벽'보다 담장이 훨씬 높은 '4600만원의 벽'이 세워진다. 일본은 우리가 아직 짓지도 않은 이 통곡의 벽을 부수는 데 36년을 허비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