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탈리아 ‘파스타 전쟁’…107% 관세에 외교 갈등 ‘활활’

107%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받은 이탈리아산 파스타가 미국 시장에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이탈리아 최대 파스타 수출업체들이 막대한 관세 부담 탓에 이르면 내년 1월부터 미국 시장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이탈리아산 파스타에 92%의 반덤핑 관세를 내년 1월부터 매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기존 유럽연합 수입품 전체에 부과된 15% 일반 관세와는 별도로 추가되는 것이다. 이 관세율은 트럼프 행정부가 타깃으로 삼아 특정 제품군에 부과한 관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8월부터 미국 파스타 제조업체의 요청을 받아 이탈리아산 파스타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했다. 최대 대미 수출업체인 라몰리사나, 가로팔로 두 회사를 대상으로 매출 정보 등을 요청한 결과 제출 서류가 번역이 부실하고 정보가 미흡해 “비협조적”이었다며 다른 업체까지 총 13곳 업체에 92%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 결과를 발표했다. 예비 결과는 120일 내 업체의 이의 제기가 없으면 최종 확정된다.
미국은 지난 수십년간 이탈리아산 파스타 수출 업체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반덤핑 조사를 벌이곤 했지만, 이번처럼 심각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받은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탈리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주세페 페로 라 몰리사나 최고경영자는 “미국은 주요 시장이지만, 그 정도 마진을 버틸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코시모 룸모 룸모파스타 대표는 “이건 덤핑 문제가 아니라 수입을 차단하려는 핑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업계에선 예전 반덤핑 조사 때와 비슷하게 대응했는데 트럼프 상무부가 돌변했다는 입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상무부가 이탈리아 회계 관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새 실무자들을 배치해 엄격한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반덤핑 관세 문제를 다뤄 온 회계사인 엔리카 마사렐리는 “이렇게 (미 상무부가) 비타협적인 태도로 나오는 건 30년 만에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내에선 이번 반덤핑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이탈리아 파스타 업체 3곳을 두고, 글로벌 사모펀드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반덤핑 문제를 제기한 미국 기업 ‘윈랜드 푸드’의 소유주는 사모펀드 ‘인베스트인더스트리얼’인데, 이 사모펀드가 소유하거나 협력 관계인 이탈리아 파스타 업체들은 이번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탈리아에 이은 세계 2위 파스타 생산국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파스타 시장 규모는 약 62억달러 규모로, 최근 몇년간 이탈리아산 수입이 급증해 현재 미국 시장의 약 12%를 차지하고 있다.
‘파스타 관세’는 미국과 이탈리아 간 외교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번 조치를 이탈리아 파스타 산업을 겨냥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응에 나섰다. 이 탈리아산 파스타 대미 수출 규모는 연간 7억7000만달러(1조1200억원)에 달한다.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특별 외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직접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돌포 우르소 산업부 장관은 “파스타는 이탈리아 요리의 자랑”이라며 정부가 관세에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파스타 소동은 “막대한 수출 규모 이상으로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짚었다. 지난달 25일 이탈리아 정부청사에서 열린 ‘세계 파스타의 날’ 행사는 이탈리아 파스타계 거장들이 집결한 가운데 침울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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