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담] 이재용의 '뉴삼성', 8년 비상체제를 끝내다

조슬기 기자 2025. 11. 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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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조직 개편 소식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입니다. 8년간 태스크포스(TF) 형태로 운영되던 '사업지원TF'를 정식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전환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TF'를 떼어내기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짊어져야 했던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2017년 11월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긴급하게 출범했던 조직이 바로 사업지원TF였습니다.

태스크포스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이는 명백한 임시 조직이었습니다.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언제 해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차선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 이재용 회장은 185차례 법정 출석 끝에 올해 7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단행된 이번 조직 개편은 삼성이 더 이상 '비상 체제'가 아닌 '정상 체제'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선언이라는 게 경제계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조용한 경영'에서 '광폭 행보'로 
이재용 회장의 경영 스타일 변화는 극적입니다.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던 시절 그는 철저히 조용한 경영을 고수했습니다. 공개 석상 노출을 최소화하고, 대외 발언을 자제했습니다. 하지만 무죄 확정 이후 그의 행보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의 깐부 치맥 회동 이후 인공지능(AI) 동맹을 맺은 것을 비롯해 테슬라와는 23조 원 규모의  AI(인공지능) 반도체 칩 공급 계약을, 오픈AI로부터는 월 90만 장 규모의 D램 공급의향서를 확보했습니다.  

또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조만간 만나 전장(차량용 전자·전기장비) 사업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야말로 종횡무진하며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직접 챙기는 모습인데요.

취임 3주년을 맞은 지난달 27일에도 그는 별도의 기념행사 대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참석을 선택했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여기서 더 나아가 뚜렷한 결과물로 리더십을 증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입니다.

컨트롤타워 부활인가, 새로운 조율 시스템인가  
삼성전자는 이번 조직 개편이 컨트롤타워 부활과는 무관하다고 거듭 선을 그었습니다. 사업지원실은 3개 팀으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으로 과거 미래전략실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재계의 시각은 다릅니다. 사업지원실은 전략팀(중장기 사업 전략), 경영진단팀(재무·리스크 관리), 피플팀(인사·조직)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는 사실상 그룹 차원의 조율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완결된 구조입니다.

더욱이 초대 실장 박학규 사장과 전략팀장 최윤호 사장은 모두 미래전략실 출신의 '기획통'입니다.

조직 개편 이전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의 발언에서도 어렵지 않게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컨트롤타워 필요성에 힘을 실었기 때문입니다.

'미전실 부활'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면서도, 실질적인 조율 기능은 강화하는 포스트 컨트롤타워 모델, 이번 조직 개편을 이재용식 '뉴삼성'의 핵심 설계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HBM 전쟁, 그리고 재기의 골든타임  
삼성전자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냉혹합니다. 한때 절대 강자였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내줬고,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TSMC와의 격차가 여전합니다. 

하지만 반등의 조짐도 뚜렷합니다. 올해 3분기 매출 86.1조 원, 영업이익 12.2조 원으로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무엇보다 반도체 부문은 HBM 수요 급증에 힘입어 7조 원대 영업이익을 회복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차세대 HBM4 개발을 완료했다는 점입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출시 시기가 내년으로 예상되는 만큼, HBM4 경쟁은 삼성에게 재기의 마지막 골든타임입니다.

메모리 1등을 놓쳤던 삼성전자가 다시 올라서려면 다음 세대의 메모리 기술 확보와 수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진정한 시험대 오른 이재용과 뉴삼성  
사업지원실 출범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재용 회장이 그리는 '뉴삼성'의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입니다.

5년간 6만 명 신규 채용,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를 통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전장 사업 확대, 국가 AI 컴퓨팅센터 사업 참여 등 공개된 청사진만으로도 삼성의 변화 의지는 명확합니다.

하지만 청사진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반도체 경쟁력 회복,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미래 먹거리 사업화 등 산적한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이재용 회장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 복귀 여부, 연말 대규모 인사를 통한 세대교체 단행 여부 등 굵직한 결단들도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TF를 떼어낸다는 것은 단순히 조직 명칭의 변경이 아닙니다. 10년간 이어진 족쇄를 벗고 비상 체제를 종료하며 미래를 향한 정상 항해를 시작하겠다는 사실상의 선언입니다.

이 회장이 더 이상 선대 회장의 후계자가 아닌 뉴삼성의 개척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가 만들어갈 삼성이 이건희식 초격차의 DNA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유연성과 협력의 가치를 더해야 완성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HBM4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AI 혁명의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재용의 뉴삼성은 이제 말이 아닌 성과로 증명되어야 할 때입니다.

사업지원실 출범 이후 펼쳐질 삼성의 변화가 단순히 조직 개편을 넘어 진정한 뉴삼성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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