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잘 먹고 있는” 피고인 윤석열의 법정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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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그대로였다.
곽 전 사령관이 법정에서 퇴장하자 지귀연 재판장에게 "탄핵심판 때도 피소추인(윤석열) 측에서 질문하면, 하도 일부 엉뚱한 얘기를 많이 하고 그래서 제한 시간 안에 물어보지를 못했다"라며, 증언 방식까지 문제 삼았다.
윤석열: 아니, 그러니까 국정 운영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만나면 늘 한다고 그랬잖아요.
"내가 여태 어느 검찰에 가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한동훈 (이야기가 나왔다는) 얘기만 했다. 오늘 전 대통령이 그 말 안 했으면 내가 그 얘기 안 했을 거다. 그런데 (윤석열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그 얘기까지 마저 드린다. 그리고 앞뒤 상황에서 비상대권 이런 부분 (이야기했던 게) 분명 내 기억에 있다." 윤석열 측은 재판 도중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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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그대로였다. 4개월 만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나타난 그는, 거침이 없었다. 마이크를 잡고 직접 증인을 신문했다. 몇몇 증언을 들을 때에는 기가 찬 듯 고개를 젓거나 동의할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재판 내내 수시로 자료를 살피고, 증언을 들으며 메모하고, 옆자리에 앉은 변호인들과 상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재판에 개입했다. 재판 중 쉬는 시간이 돌아오면, 변호인단을 빈 법정에 동그랗게 모아두고 발언을 이어갔다.
형사재판은 피고인 본인 출석이 의무다. 윤석열은 7월10일 재구속된 이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16차례 연속 불출석했다. 윤석열 측은 실명(失明) 위험 등을 불출석 이유로 들었지만, 주요 증인이 나오면 법정에 나오겠다고 단서를 뒀다. 주요 증인을 자체 선별해, 선택적으로 출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지귀연 재판장은 별도 구인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불출석으로 인한 불이익은 피고인이 부담해야 한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10월30일과 11월3일에 열린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26·27차 공판에는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곽 전 사령관은 사전에 비상계엄 관련 지시를 받았던 사령관 중 유일하게 ‘자수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그는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자수서를 2024년 12월9일 검찰에 제출했고, 이후 줄곧 같은 진술을 유지했다. 두 차례 공판에서 곽 전 사령관에 대한 증인신문은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총 14시간15분 동안 진행됐다.
윤석열은 곽종근 전 사령관 증언의 신빙성을 흔들기 위해 직접 공방을 벌였다. 곽 전 사령관이 법정에서 퇴장하자 지귀연 재판장에게 “탄핵심판 때도 피소추인(윤석열) 측에서 질문하면, 하도 일부 엉뚱한 얘기를 많이 하고 그래서 제한 시간 안에 물어보지를 못했다”라며, 증언 방식까지 문제 삼았다. 곽 전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피고인석 쪽으로 돌려 윤석열을 바라보며 대답을 이어갔다. 두 사람의 대화를 중심으로 곽 전 사령관에 대한 855분간의 증인신문을 정리했다.

“‘질서 유지’ ‘시민 보호’ 들어본 적 없다”
10월30일 열린 26차 공판에서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곽종근 전 사령관에 대한 주신문을 진행했다. 윤석열은 이날 오후 5시8분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 비상계엄 당시 특전사 요원들을 국회에 투입한 목적이 ‘질서 유지 내지는 시민 보호’였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윤석열이 질문하기 직전, 곽종근 전 사령관은 ‘국회 확보의 목적이 뭐였냐’는 김홍일 변호사의 질문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구체적인 지시가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부하들에게 확보하는 것 이상으로 추가 지침을 주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윤석열이 끼어들었다.
윤석열: 실탄 장병들한테 개인 휴대시키지 말라, 장관한테 그 지시는 받았죠?
곽종근: 그날 말입니까? 김용현 장관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답니까?
윤석열: 아니 그러면, 그냥 스스로 ‘실무장 시키지 말라’고 밑에 지시한 겁니까? 장관은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사령관님 스스로 생각해서 실무장을 안 시킨 겁니까?
곽종근: 실탄을 개인에게 주지 말라는 건 제가 시켰습니다.
윤석열: 그러니까 장관 지시 없이?
곽종근: 예, 개인에게 주지 말라는 건 제가 시켰고···.
윤석열: 그러면, 스스로 실무장을 시키지 말라고 했다면 ‘확보’라는 게 결국 공공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민간에 억압적인 거 안 하고, 질서 유지하러 들어갔다는 게 머릿속에 있는 거네요?
곽종근: 말씀하시는 질서 유지는 도저히 제가 수긍할 수 없고, 그 전이든 (작전) 중이든 ‘질서 유지’ ‘시민 보호’라는 말 자체는 들어본 적이 없고···.

“그럼 군이 거길 왜 들어갑니까?”
10월30일 오후 6시20분 “오늘은 여기까지 진행하겠다”는 지귀연 재판장 말을 윤석열이 끊었다. “재판장님, 아주 간단한 건데 내가 하나만 좀”이라면서 군을 국회에 투입한 목적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방해’가 아니었다고 또다시 한번 주장했다. 그러면서 곽종근 전 사령관에게 “전시·교전 계엄이 아닌 건 명백하다. (···) 반국가 세력이나 국내의 안보 위협 세력들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안보와 국정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에 자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 아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곽 전 사령관이 되물었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 그럼 군이 거기(국회)를 왜 들어갑니까? 그냥 경찰 넣으면 되지?”
윤석열: 군인들 입장에서는 전시·교전만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시 상황에서 바로 계엄 선포된 적이 없습니다. 다 집회라든지 과격 시위 때문에 계엄이 됐고 (···) 전 세계로 중계방송이 되는데 국회 본회의장에 특수부대가 들어가서 의원을 끄집어내면 아무리 독재자라고 그래도 성하겠습니까? (···) 전시·교전 계엄이 아닌 건 명백하잖아요. 만약에 한다면 대통령이 왜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아마 얘기를 들었을 수 있겠죠. 반국가 세력이라든지, 외부의 적대 세력보다는 국내의 안보 위협 세력들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안보와 국정이 위태로워졌다. 이런 이야기를 보통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곽종근: (···) 김용현 전 장관(의 지시)하고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결이 다르거나 벽이 있습니다. 만약 김용현 전 장관이 ‘이번 비상계엄이 (국회에) 들어가서 경고하고 시민 보호하고 빨리 빠질 거야’라는 이야기를 정말 했다면 군복을 입은 사람이, 그럼 군이 거기를 왜 들어갑니까? 그냥 경찰 넣으면 되지? (···) 그런 자체를 일절 김용현 장관이 저희들한테 얘기한 것도 없고···.
윤석열: 아니 제 말씀은···.
지귀연: 일단 증인 말씀을 끝까지 한번 들어보시죠.
곽종근: (···)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갑자기 투입돼서 들어갔던 부분이고, 그 이후에 여러 상황들 판단 거치면서 이게 아닌 거 같다 싶어서 중지했던 일들이고. (···)

윤석열의 전략 ‘지시 시간 허점 파고들기’
11월3일 열린 27차 공판에서는 곽종근 전 사령관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앞선 공판과 달리 이날 윤석열은 오전 11시22분부터 적극적으로 증인신문에 나섰다. 최근 윤석열 변호인단은 “공소장 전반에 모순이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곽종근 전 사령관이 윤석열에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시간(2024년 12월4일 0시31분)이, 이상현 당시 특전사 1공수여단장이 부하인 김형기 1공수 1특전대대장에게 ‘담 넘어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서 의원들 다 끌어내’라고 지시한 시간(2024년 12월4일 0시30분)보다 늦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윤석열→곽종근→이상현→김형기 순으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내려갔다면, 이상현 전 여단장이 김형기 대대장에게 지시한 시점보다 먼저, 윤석열이 곽종근 전 사령관에게 지시를 내려야 맞는데 순서가 다르다는 얘기다. 곽 전 사령관은 27차 공판에서 “이상현 여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에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전달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2024년 12월4일 0시)31분에 (윤석열 지시를) 듣고 나서부터는 내 워딩으로 이상현에게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비상계엄 당시 곽 사령관은 이상현 여단장에게 ‘국회 현장에 도착하면 이진우 수방사령관과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이상현 여단장은 국회 도착 후 약 6분 뒤인 2024년 12월4일 0시28분께 이진우 사령관과 통화했다.
윤석열은 27차 공판 초반부터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2024년 12월4일 0시31분 곽종근 전 사령관과 1분가량 통화한 직후,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과 통화했다고 직접 밝혔다. 이진우 전 사령관의 부하인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은 4월14일 이 재판 1차 공판 당시 “‘2024년 12월4일 0시31분부터 1시 사이, 사령관에게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해 국회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윤석열: (윤석열 경호처) 비화폰 통화 내역을 보니까요. (···) 계엄 선포하고 한 시간쯤 지나면 병력이 도착한다고 그래서, ‘도착했냐?’라고 확인하는 시간이 수방사령관하고 (2024년 12월3일) 밤 11시33분하고, 또 특전사령관하고는 밤 11시35분입니다. 이렇게 (통화)한 거 말고 제가 특전사령관한테 (2024년 12월4일 0시)31분에 전화를 했다고, 거기서 제가 ‘의원 끄집어내라’고 했다는데 그럼 그 전에 이상현 1공수여단장과 그 부하 사이에 ‘의원 끌어내라’는 얘기는 제가 수방사령관한테 이야기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전파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좋습니다. 다른 부대장한테 이야기를 들어서, 여단장이 자기 사령관한테 묻지도 않고 아래에 지시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가 (비화폰) 통화 내역을 보니까 특전사령관하고 31분에 1분가량 통화하고 나서, 그 후에 (제가) 수방사령관하고 통화를 하거든요. 혹시 특검 조사 시에 이런 거 안 보여주던가요?
곽종근: 그건 못 봤습니다.
윤석열: 그 전에 내가 수방사령관하고 (2024년 12월4일) 0시20분쯤 통화라도 했다면 지금 이야기하신 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넘겨짚을 수 있는데, 수방사령관하고 통화는 증인인 특전사령관 통화 이후에 했습니다. 그걸 알고 이야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곽종근: (···) 이상현 여단장이 제가 (지시한) 국회 확보라는 연장선상에서 저렇게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또 이진우 수방사령관하고 그런 내용을 통화했기 때문에 이상현 여단장이 그렇게 이해하고 지시하지 않았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지귀연: 증인 증언 내용은 계속해서 지금 똑같은데.
“한동훈 총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이 김용현 전 장관, 곽종근 전 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등과 2024년 4월부터 수차례 모여 비상계엄을 공모했다고 본다. 곽 전 사령관은 26차 공판에서 비상계엄 관련 대통령 안가·관저 모임에 대한 특검 측 질문에 “(2024년) 10월1일 (대통령 관저) 모임부터 그 전 모임과 (성격이) 다르다고 분명히 느꼈다”라고 말했다. 곽 전 사령관은 이날 모임 뒤부터 김 전 장관이 국회, 중앙선관위, 더불어민주당 당사 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윤석열은 27차 공판에서 2024년 10월1일 대통령 관저 모임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이날 모임에는 김용현 전 장관을 비롯해 곽종근·여인형·이진우 전 사령관이 참석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모의하려고 준비한 모임이 아니라 국군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당일 급조된 모임이었고, 술을 많이 마셔서 “시국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었다”라고 곽 전 사령관을 몰아세웠다. 곽 전 사령관은 사전에 공지받고 사복까지 준비해 갔다며, 그동안 하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를 폭로했다.
윤석열: 한 8시 넘어 오셔가지고 앉자마자부터 그냥 소맥 폭탄주를 돌리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술 많이 먹지 않았어요? 내 기억에 아주 굉장히 많은 잔이 돌아간 거 같은데, 앉자마자, 그렇지 않습니까?
곽종근: 술은 항상 통상 10잔에서 20잔 정도 들었고, 저는 분명히 그때 말씀을 들었고···.
윤석열: 아니 내가 그리고 먹다가 안주 떨어지면, 냉장고 가서 뭐 뒤져다가 더 만들어서 가져오고 이런 기억은 없어요?
곽종근: 아닙니다. 분명히 제가 그때 당시 기억하는 게, 김치 있잖습니까? 맛있어서 김치를 한 번인가 더 가져온 기억이 있고···.
윤석열: 한남동 고깃집에서 나오는 김치 따로 사다가 여러분들 온다고 해서 2층 냉장고에다 넣어둔 건데, 내가 가서 안줏거리 할 것도 더 가지고 오고 이러면서 그날은 주로 우리 술 많이 마신 날 아닙니까? (···) 거기서 무슨 시국 이야기할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곽종근: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지금까지 말 못했던 부분을 하겠습니다. 제가 한동훈 얘기 분명히 말씀하셨다고···.
윤석열: 아니, 그러니까 국정 운영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만나면 늘 한다고 그랬잖아요.
곽종근: 차마 그 말씀을 안 드렸는데 한동훈이하고 일부 정치인들 호명하시면서 당신 앞에 잡아오라고 그랬습니다. 당신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그랬습니다.
곽종근 전 사령관의 이야기에 순간 방청석이 술렁였다. 윤석열은 어이없다는 듯 잠시 웃은 뒤 신문을 멈췄다. 곽 전 사령관은 직전 공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다만 당시에는 “정치인 중 한동훈 이야기한 게 기억난다”라고만 말했다. 그때 윤석열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찬규 부장검사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곽 전 사령관은 “대부분 시국의 어려움에 대한 애로사항을 토로해서, 그 비슷한 연장선상(의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고 한동훈 이야기는 분명하게 기억난다”라고 답했다.
왜 마음을 바꿔 새로운 사실을 꺼내놓은 걸까. 곽 전 사령관은 법정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태 어느 검찰에 가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한동훈 (이야기가 나왔다는) 얘기만 했다. 오늘 전 대통령이 그 말 안 했으면 내가 그 얘기 안 했을 거다. 그런데 (윤석열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그 얘기까지 마저 드린다. 그리고 앞뒤 상황에서 비상대권 이런 부분 (이야기했던 게) 분명 내 기억에 있다.” 윤석열 측은 재판 도중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문을 냈다.

“내가 하지 말라고” “그런 지시 없어”
곽종근 전 사령관은, 2024년 12월1일 김용현 전 장관이 국회, 선관위 과천 청사와 관악 청사, 수원 선관위 연수원,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 등 6개 장소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27차 공판에서 윤석열은 그중 “두 군데(국회와 선관위) 이외에는 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주장했지만, 곽 전 사령관은 그런 지시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2024년) 12월3일 계엄 선포 후에 (김용현 전 장관에게 지시받은 여섯 군데 장소 중에) 국회하고 선관위 두 군데만 갔죠? 나머지는 중간에 가지 말라고 그래서 스톱했잖아요. 출발하고 스톱했거나 근처에 갔다가 안 들어가고 스톱했잖아요.
곽종근: 여섯 군데 중에서
윤석열: 아니, 들어가지 않았잖아요.
곽종근: 민주당사가 중간에 가다가 (2024년 12월4일) 1시9분에 상황 종료가 돼버리는 바람에 중간에 가다가 멈추고 안 간 겁니다.
윤석열: 아니 그 (여론조사) 꽃이라든지 거기 들어가지 않았잖아요.
곽종근: 도착은 했는데 임무 자체를 (건물) 확보를 하라고 해서.
윤석열: 장관이 국회나 선관위 이외의 곳은 가지 말라고 별도 지시 안 했습니까?
곽종근: 그런 지시 안 했습니다.
윤석열: (···) (김용현 전 장관이) 몇 군데를 더 보내야 될 수밖에 없다고 해서 내가 그걸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이 ‘두 군데(국회와 중앙선관위) 이외에는 전부 보내지 말라, 취소한다.’ 이렇게 해서 안 들어간 거 아니에요? (···) 장관이 증인한테 취소하라고 안 했어요?
곽종근: 저한테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겁니다”
4월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재판관 8인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그러면서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파장이 그나마 최소화된 건, 윤석열이 ‘경고성 계엄’을 의도해서가 아니라 2024년 12월3일 밤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윤석열 탄핵심판 선고 요지)”이라고 판단했다. 27차 공판에서 윤석열은 앞서 헌재에서 한 차례 기각됐던 주장을 다시 꺼내들었다. 정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방해하려고 했다면, 더 많은 군인들을 국회에 투입했을 거라는 취지의 이야기다.
윤석열: (···) 전체적으로 본관이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최소한 특전사 요원들보다 10배 이상 많은 인원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증인도 부하들한테 이게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
곽종근: 말씀드리겠습니다. ‘707(특임단) 뭐 소수 들어갔는데, 임무 수행’ 문제는 707(특임단)의 능력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건 16명 들어가 있는 인원들이 못한 게 아니고 안 한 겁니다.
윤석열: 그건 아니잖아요. 그 화면을 보면은.
곽종근: 안 하기 위해서.
윤석열: 아니 그러니까.
지귀연: 피고인, 물어보셨으면 증인 답변하실 때는 좀 가만히 계셔주십시오.
곽종근: 그들이 최대한 절제하고 안 한 것이라는 걸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TV로 들어가서 안 하는 걸 보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제 (2024년 12월4일 0시)31분 통화 이후에 수방사령관한테 네 명이 한 명 끌어내고, 문 부수고 들어가서 하라는 지시 다 하셨지 않습니까(비상계엄 당시 이진우 사령관과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오상배 사령관 수행부관은 5월12일 같은 법정에서, 윤석열이 이진우 사령관에게 전화해 ‘네 명이 (국회의원) 한 명씩 들쳐 업고 나와라’ ‘아직도 못 들어갔냐.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 ‘계속해라.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되어도 두 번 세 번 계엄 하면 되니까’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저희가 하는 게 안 되니까, (그걸) 보셨으니까 수방사령관한테 지시하신 거 아닙니까?
“여기 음식도 괜찮고, 큰 불편은 없어”
11월3일 오전 10시10분에 시작한 27차 공판은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윤석열은 이틀 동안 장시간 진행된 재판에도 지친 기색 없이,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했다. 윤석열이 건강 문제를 재판이나 수사 불출석을 위한 ‘핑계’로 내세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시사IN〉은 1~3월 윤석열 구치소 접견 기록을 입수했다. 당시는 윤석열이 건강 문제를 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에 응하지 않던 때다.
〈시사IN〉이 확보한 구치소 접견 기록에 따르면, 윤석열은 자신을 찾아온 대통령실 참모진과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 잘 먹고 있고, 여기 음식도 괜찮고, 교도관들이 잘 해줘서 큰 불편은 없어(1월24일).” “나야 술도 못 먹고 과식도 안 하니 건강은 좋아(2월10일).” “눈 뭐 오른쪽 눈에 뭐가 떠다니고는 했는데 이제는 거의 없어졌어(3월4일).” 수사기관에 밝힌 것과는 정반대 이야기다.
윤석열은 10월30일 26차 공판을 마치고 “체력이 되는 데까지 나오겠다. 어쩔 수 없을 땐 스킵을 해야겠지만 웬만하면 최선을 다해서 나오겠다”라고 말했다. 11월25일에는 곽종근 전 사령관과 윤석열의 위치가 뒤바뀐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피고인 곽종근·문상호·여인형·이진우 전 사령관 재판에 윤석열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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