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우승하면 곧바로 세계 최고? 피아노는 단거리 경주 아닌 마라톤

“기계와 로봇이 대부분의 일을 하는 인공지능(AI)의 세상에서는 어느 때보다 진짜 인간이 필요하다.”
중국 인기 피아니스트 랑랑(郞朗·43)이 10일 한국 취재진과의 영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피아노 명곡과 소품 등 32곡을 담은 ‘피아노 북(Piano Book)’ 2집을 발매한 직후의 인터뷰였다. 어린 연주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을 묻자 그는 “어릴 적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자칫 틀에 갇혀서 기계적이기 쉽다. 마지막에 무대에 올라갈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해석과 생각”이라고 답했다. “공부할 때는 악보를 충실히 따라가야 하지만, 연주할 땐 마음을 열고 상상력을 활용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랑랑은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이나 록 밴드 메탈리카와도 스스럼없이 협업하는 엔터테이너로도 유명하다. 그는 “최근 블랙핑크의 로제와도 파리 자선 콘서트에 함께 섰는데 무척 낭만적인 선율의 곡을 연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욕심 내는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 바로 ‘음악교육’이다. 지난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랑랑국제음악재단’을 설립하고 세계 240여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 음악 수업을 편입시키는 일을 후원하고 있다. 어린 연주자들에게는 피아노 수업과 음악 캠프, 콘서트의 기회도 무료로 제공한다. 그는 “재단을 설립한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과 세계 경제 위기가 겹치는 바람에 기쁨과 어려움이 모두 많았지만, 제 목표는 ‘음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음악교육을 화두로 삼는 이유가 있다. 올해 세계 콩쿠르에서 두드러진 현상이 중국계 연주자들의 돌풍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홍콩 출신의 아리스토 샴), 부소니 콩쿠르(중국의 우이판)에 이어서 최근 쇼팽 콩쿠르(중국계 미국 피아니스트 에릭 루)까지 중국계 연주자들이 모두 정상에 올랐다. 그는 “어릴 적 제가 피아노를 배울 적에는 존경하거나 본받을 만한 연주자들이 서방 연주자들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나 다른 연주자를 보면서 자신감을 키우고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했다.
세대적으로 중국계 피아니스트들의 약진은 ‘랑랑 효과(Lang Lang Effect)’로도 풀이된다. 1990년대 이후 랑랑이 세계적 스타로 부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잇따라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박세리 키즈’,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김연아 키즈’로 불리는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랑랑은 “이들이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약진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체르니 연습곡 같은 친숙한 소품을 담은 지난 2019년의 ‘피아노 북’ 1집은 전 세계에서 스트리밍 횟수만 12억회에 이르렀다. 이번 2집에서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같은 클래식 명곡뿐 아니라 영화 ‘라라랜드’와 드라마·애니메이션·게임 음악까지 다양한 곡을 수록했다. 그는 “어릴 적 좋아했던 드라마 ‘서유기’의 주제곡이 최근 게임 음악으로 다시 나와서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면서 “피아노 음악은 단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을 담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만약 ‘피아노 북’ 3집이 나온다면? 그는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한국 드라마 음악도 연주하고 싶다”며 웃었다.
랑랑은 지난 2019년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인 지나 앨리스(31)와 결혼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랑 서방’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둘 사이에는 네 살 난 아들이 있다. 그는 “친구부터 전 세계 언론까지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아들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칠 거냐’라고 묻는다. 아직 피아노를 배우진 않았지만 비틀스의 록 음악을 좋아하고 미니 드럼을 친다”며 웃었다. 어쩌면 랑랑의 피아노 음반이 가장 필요한 곳은 랑랑의 집안일 듯싶었다. 내년 2월 그는 협연 무대를 위해서 다시 방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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