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사가 싫다’…보수의 심장에서 페미니즘 책이 불티났다
김영란, 24살에 이프 출판영업 입문
신입에 “뭘 좋아해?” 묻는 일터 반해
전국 누비며 페미니즘 영업 전선으로
‘오르가슴을 찾아서’ 표제 꺼린 서점
구석 서가 진열해도…잡지 완판·재판
대구서 페미니즘 책 잘 팔리는 역설
때론 싸우고 때론 타협하며 영업 뛰어
이프의 자유 누리다 외부 나오니
‘페미니스트’ 껄끄러운 꼬리표 취급
이직 뒤도 자발적 이프 영업 계속
이프북스 챙기는 ‘영원한 이프인’

나는 ‘이프’의 출판 영업 담당자다.
노는 게 제일 좋았던 내 나이 24살. 문화비평지 ‘문화과학’ 손자희 선생님께서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를 소개해 줬다. 출판 영업은커녕 출판사 일도 잘 모를 때였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이프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 여기서 내가 무슨 일을 할지 나도 궁금했다.
한동안 이프에 출근해서 한 일은 전화벨이 두번 울리기 전에(사무실이 작아서 전화벨 한번이면 충분했다) 전화 받고, 점심 주문하는 게 나의 일과였다. 지루했냐면 그건 아니다. 사무실에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매일 멋진 언니들 보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때 내가 선배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영란씨는 뭐를 좋아해? 뭐 하는 게 재밌어?”였다. 뭐를 잘하는지가 아니라 뭘 좋아하냐니! 신입사원에게 그런 말을 묻는 회사가 과연 있을까?
‘쌈닭’이 된 페미니스트 영업자
우선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하는 출판 마케팅 과정부터 등록했다. 그리고 강사가 알려준 ‘출판영업인협의회’, ‘인문사회과학출판사모임’에도 가입했다. 뭐든 배우려고 모임이든 술자리든 빠지지 않고 다녔다. 그런데 식당에 가면 꼭 내 앞에만 수저통을 놓는 게 아닌가. 나도 똑같이 회비 내고 식당 왔는데 왜 내 앞에만 수저통을 놓는 것인지.(그때 여성회원이 나 혼자였다.) 난 내 수저만 놓고 수저통을 옆 사람에게 밀어놨다. 식사가 끝날 즈음엔 커피 심부름을 시키길래 “저는 커피 안 마시는데요” 했다. 물론 수저 놓는 거, 자판기 커피 뽑아서 쟁반에 올려 대령하는 거 하나도 안 힘들다. 그 하나도 안 힘든 거 본인들이 하면 된다.
‘오르가슴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특집이 실린 1998년 이프 겨울호는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 매장 진열대에 올려놓지도 못했다. 표지와 표제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기 싫었던 서점 직원들이 눈에 잘 안 띄는 서가 쪽으로 책을 뺐다. 하지만 그 오르가슴 특집호가 어찌나 잘 팔렸는지 잡지는 통상 1쇄로 끝나기 마련인데 재판까지 찍었다. 이프가 출간한 단행본 제목도 예사롭진 않았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사위에게 주는 요리책’, ‘색녀열전’, ‘섹스 사인(sex signs)-여성을 위한 심리점성학’ 같은 멋진 책을 거래처에서는 대놓고 불편해했다.
이런 이프의 영업자인 나는 ‘기 센 언니’여야만 했다. 한번은 지방 서점에 갔을 때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나에게 영업자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며 옷을 갈아입고 오라면서 결제를 해주지 않는 일이 있었다. 나도 발끈해서 “선생님 등산복도 예의 있는 거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만…” 하고 쏘아붙였다.(그렇게 그곳은 정리했다.) 거래처나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쟤는 건들면 피곤한 애’, ‘피하는 게 상책인 사람’으로 이름났다. 그때 내 머리카락 색은 카멜레온 같았다. 보라색, 노란색, 주황색, 어느 날 세번의 탈색 후(그래야 색이 잘 나온다)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나타났을 땐 이프 선배들도 한마디 했다. 머리 좀 그만 괴롭히라고. 하지만 당시의 나는 ‘건들지 마라. 물어버린다’는 의지를 머리 색깔로 표현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내 성질대로만 했다면 거래처가 몇군데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제사가 싫다’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영업할 때다. 대구 거래처 대표가 신간 제목을 보더니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때는 얼음장 깨서 빨래하고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 한집에서 다 거둬가며 살림하면서도 아무 소리 없이 잘만 살았는데 요즘은 도대체가….” 그러면, 나는 “그러게요. 왜들 이러는지, 저도 이번 책은 좀….” 이러면서 입금표를 쓱 내민다. 수금은 해야 하니까.(모든 영업 현장과 일상에서 일일이 싸우고 상대해 주기엔 내 에너지가 아까웠다.) 그런데, 거래처에서 지청구를 듣던 이 책은 명절 전후로 대구와 부산에서 재주문이 제일 많았다.
이프 영업을 하면서 서러운 일만 당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만 해도 대학교 앞에는 이른바 ‘사회과학 서점’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날이오면(서울대), 녹두(동국대), 풀무질(성균관대), 숙명인(숙명여대), 사람인(서강대), 직립보행(계명대), 청년글방(전남대) 등 이름도 찬란한 이런 서점에서는 이프가 좋은 위치에 진열되어 있었다. 한두달에 한번 단돈 오만원, 십만원씩 수금하러 가면 서점 대표나 총무님들이 이번 호 이프 재밌게 읽었다며 다음 기획은 뭔지 기대된다고 말해서 노란 입금표를 적던 내 손이 기쁨으로 떨리곤 했다.
이프,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
이프 생활이 무르익어 이제 더 시도할 머리카락 색도 없다 싶을 즈음, 더 본격적으로 놀고 싶어서 사표를 냈다.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 있는 친구 집에서 뜨거운 여름도 보내고 뉴욕의 가을도 보내고 멕시코 칸쿤에서 수영도 하면서 놀다가 이프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무실에 다른 영업자가 있었다. 서운함을 뒤로하고 다른 출판사에 이력서를 냈다.
그런데 나의 자랑스러운 이프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페미니스트’ 이미지가 강해서 출판사와 맞지 않는다며 몇곳에서 거절당했다. 진보 성향의 대표적 인문사회 출판사 대표가 이렇게 말하다니, 페미니즘을 알 만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다. 이럴 바엔 무조건 월급이 많은 회사에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출판사에 이력서를 냈다. 거기서도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프의 ‘급진’적인 성향이 나와 맞지 않아서 이직하려 한다고 세상이 원하는 정답을 내놨다. 나는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다.
‘○○문화사’에 입사했다. 월급은 ○○문화사에서 받으면서 틈틈이 이프 일을 봤다. 이프 계간지 광고 필름을 받아 오거나 서점 영업을 대행했다. 나중엔 몰래몰래 대행하느니 아예 대놓고 해야겠다 싶어서 마음 맞는 선배와 함께 2007년 ‘출판마케팅센터’를 차렸다. 디자인이나 편집을 외부에 맡기는 것처럼 출판 영업도 외주로 하는 곳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선배와 함께 시작했다. 그렇게 출판 영업자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책을 팔았다. 이 출판사 저 출판사 소속도 많이 바뀌고 직함도 직위도 많이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건 난 여전히 이프의 영업자다.
요즘도 가끔 이프 명함을 내밀면 “저 학교 다닐 때 이프 완전 팬이었어요!” 하며 반가워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게, 그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보지 말고 정기구독하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아직도 이프 잡지가 나오지 않았을까요”라고 농담하지만, 나 또한 그때의 이프 잡지가 너무 좋았다고 고백하곤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화석이 되어버린 이프 얘기 같은데, 아니다. 이프북스는 아직도 단행본을 내고 있다. 가장 최근작은 ‘유숙열의 뉴욕 페미니즘 리포트’이다. 자, 자 어서 동네서점으로 가시기를, 아니면 인터넷서점에서 클릭 한번으로 편안하게 받아보시기를! 이프북스 현 영업자로서 강력 추천 드린다.

김영란 | 경험과 지식으로 완전히 무장한 전사만이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살고 있는 출판 영업자다. 이것이 이프 언니들이 알려준 페미니즘이다. 너의 욕망을 숨기지 마!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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