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되게 모은 꿀 나비와 인간에 약탈당하는 기구한 운명

김세호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교수 2025. 11. 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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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브런치> 인간과 꿀벌, 천년의 동거

꿀벌은 인간과 자연에 이로움을 주는 동물이다. 꽃에서 꿀을 채취하고 수분하여 식물의 생식을 돕는다. 지구 상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멸망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꿀벌의 삶은 괴롭기 그지없다. 말벌과 같은 천적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인간은 끊임없이 꿀벌의 꿀을 착취한다. 문득 필자 역시도 꿀의 달콤함을 즐기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인류가 꿀벌과 공존한 기원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양봉(養蜂)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보이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저 꿀을 예물의 하나로 썼다는 기사가 보여 양봉의 가능성을 추정할 뿐이다. 대신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우리 선조와 꿀벌의 동거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양봉에 쓰이는 서양벌이 아닌 토종벌과의 인연이다. 고려시대 꿀벌의 기록을 알아본다.
꿀벌. /EBS

#꿀을 향한 인간의 욕망

꿀벌은 스스로 살아가려고 꿀을 모은다. 작은 몸으로 부지런히 화분을 옮겨댄다. 인간은 마침내 꿀벌이 모은 꿀을 발견하고 그 노력이 무색하게 쉬이 꿀을 거두어간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이러한 세태를 보고 꿀벌을 위해 노래를 지었다.

採花作蜜, 꽃을 따서 꿀을 만드니

惟飴之似. 참으로 엿과 비슷하구나.

與油作對, 기름과 상대할 만하니

其用不匱. 그 쓰임이 끝이 없다네.

人不廉取, 사람들 염치없이 가져가

罄倒乃已. 모두 쏟아낸 뒤 그치지.

汝若不死, 네가 결국 죽고 나서야

人欲奚旣. 인간의 욕심 사라지리라.

-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19, '꿀벌 예찬(蜜蜂贊)'.

이규보는 시작에서 꿀벌이 모은 꿀을 묘사했다. 가득히 저장하니 뚝뚝 흘러내려 엿가락처럼 늘어진다고 하였다. 여기저기 유용하게 쓰이기에 그 값어치를 헤아릴 수 없다. 이에 사람들은 꿀을 발견하면 남김없이 긁어간다. 조금도 남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일종의 비유일까. 다음을 고려하지 않으니 양봉의 사례는 아닌지 모른다. 이규보는 꿀벌이 죽어야만 인욕이 사라지리라 한탄했다. 꿀벌의 헌신을 예찬하고 인간의 무자비한 약탈을 비판하는 모습이다.
변상벽 <계자도>(부분). /한국저작권위원회

#꿀을 채집하는 어려움

꿀벌은 작은 몸으로 어렵게 고된 과정을 거쳐 꿀을 모은다. 이러한 꿀벌의 삶이 애달파 보이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사평(閔思平, 1295∼1359)의 시는 다음과 같다.

春回曲檻綺疏通 봄빛 돌아온 굽이진 난간에 비단 창문 열고

咲見游蜂迹自窮 노니는 벌 자취 절로 궁색함을 웃으며 보네.

爭入花房狂蝶亂, 어지러운 미친 나비 다투어 꽃으로 들어가고

巧遮絲網老蛛紅 붉은빛 노련한 거미 교묘하게 거미줄 쳤구나.

爲它採蜜終何益 남을 위해 꿀 채집한들 끝내 무슨 이익일까.

擧族懸巢忽已空 온 족속 집 매달아도 홀연 텅 비어 버리겠지.

皇浦先生眞褊性 황보 선생은 참으로 편협한 성품을 지녔으니

聞香莫墮酒杯中 향기 맡고는 술잔 속으로 떨어지지 말지어다.

-민사평(閔思平), <급암시집(及菴詩集)> 권2, '벌, 익재(이제현)가 이의산(이상은)의 시에 차운한 것에 화운하다.(蜂, 和益齋次李義山詩韻)'

민사평이 벌을 주제로 읊은 시이다. 이제현(李齊賢)이 중국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벌(蜂)' 시에 차운하자, 이에 이제현의 그 시에 다시 화운했다고 하였다. 이제현의 <익재난고(益齋亂藁)>에 민사평이 차운한 원시가 전한다.

민사평은 봄날 창문을 열고 날아다니는 벌을 구경했다. 나비에게 꿀을 빼앗기고 거미줄을 피하느라 바쁜 애달픈 처지를 보았다. 설령 어려움을 극복하고 꿀을 모은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사람에게 빼앗길 운명에 불과할 뿐이다. 이에 황보식(皇甫湜)의 고사를 들어 벌이 그저 주어진 생을 무사히 마치기를 바랐다. 황보식은 일찍이 꿀벌에 쏘이자 일부러 돈을 주고 벌집을 사서 벌집을 절구로 빻아 한을 풀었다고 전한다. 꿀벌의 기구한 운명을 염려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신사임당 <초충도>. /한국저작권위원회

#벌을 통해 보는 인생사

벌이라고 항상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벌에게는 자신을 지켜낼 독침이 있다. 하필 어떤 어린아이가 벌에 쏘였다. 이색(李穡, 1328∼1396)은 이를 시로 읊었으니, 벌침의 고통에 인생사를 견준 것이 흥미롭다.

小童逢毒螫, 어린아이 벌 독침에 쏘이고는

啼甚欲驚隣. 심하게 울어 이웃들 놀라겠네.

痛處俄還止, 아픈 곳은 잠시 후에 멎었건만

驕音尙帶嗔. 어리광에 여전히 칭얼대는구나.

世情多苦楚, 세상 물정 괴로운 일 가득하고

病骨足酸辛. 병든 몸 고생스럽기 충분하지.

未識誰輕重, 무엇이 가볍고 무거운지 몰라

悠然一笑新. 유연하게 한 번 웃고 말리라.

-이색(李穡), <목은시고(牧隱詩藁)> 권17, '벌에 쏘이다(蜂螫)'.

어떤 어린아이가 벌에 쏘였다. 너무 아파 동네가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울어댔다. 얼마 후 시간이 흘러 괜찮아질 법하건만 울음을 멈출 줄 모른다. 평생을 살다 보면 괴로운 일을 여러 번 겪게 된다. 지금의 아픔과 비교하면 무엇이 더욱 괴로울까. 이색은 어린아이가 우는 모습에서 차분히 세상사의 고뇌를 돌아보았다. 막상 돌이켜보니 정답을 알기 어려워 그저 웃고 말았다고 한다. 벌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세태를 돌아본 정황이다.
벌꿀. /EBS

#꿀벌의 겨울을 응원하며

물론, 고려시대 꿀벌과 관련한 기사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이첨(李詹)은 <밀봉설(蜜蜂說)>을 지어 당시의 사회상을 논설한 적이 있다. 밀양(密陽)에 꿀벌을 기르는 자가 여왕벌을 다른 벌로 오인하여 죽이니 벌통의 벌들이 여왕벌과 함께 죽었다는 일화이다. 본래 군신 간의 의리를 지킨 사실을 보이고자 제시한 기사지만, 한편에서 민간에 양봉 문화가 널리 확산하였음을 증명한다. 아울러 여왕벌을 중심으로 꿀벌이 살아가는 특성을 충분히 이해한 모습도 공감할 수 있다. 인류가 꿀벌과 함께한 역사는 가볍지 않다고 하겠다.

근래 한반도에 겨울철 꿀벌의 대규모 실종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기후변화 가능성이 높다고 하나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필 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꿀벌이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동안 자연의 혜택을 너무 등한시한 것은 아닐까. 작은 꿀 한 스푼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본다. 꿀벌을 향한 열렬한 마음을 보낸다. 이번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봄에 다시 날아오르기를 응원한다.

/김세호 경상국립대 한문학과 교수

☞필자 소개 : 한문을 조금 읽을 줄 아는 21세기 현대인입니다. 옛사람을 좋아하며 고서를 뒤적입니다. 고전이 제일 재미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습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