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맥주’ 마시면 45만원... 태국 관광 ‘낮술 벌금 대혼란’

유진우 기자 2025. 11. 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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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대국 태국이 연중 최대 관광 성수기 진입을 앞두고 엄격한 주류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트화 강세로 관광업이 불황인 가운데 정부가 관광에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는 정책을 도입해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지난 8일부터 개정된 ‘주류 통제법(Alcohol Control Act)’을 시행 중이다. 새 법안은 하루 중 허용된 영업시간 12시간(11:00~14:00, 17:00~24:00) 외에 ‘식당에 앉아서’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최대 1만 바트(약 45만 원)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매자만 처벌했던 기존 법규에서 나아가, 처벌 대상을 소비자까지 전격 확대했다. 관광객도 예외 없이 처벌한다.

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76회 태국 여행 및 관광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여행 상품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국 정부는 무분별한 음주를 줄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태국은 고질적인 음주 문제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 15세 이상 인구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1인당 평균 8.3리터로, 동남아시아에서 베트남(8.7리터)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세계 평균(5.8리터)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특히 음주 운전은 태국 교통사고 사망 원인 1위로 꼽힌다.

태국 공중보건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정부에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다. 불교 국가로 널리 알려진 태국은 인근 국가보다 주류 판매에 유난히 엄격한 편이다. 1972년부터 법적으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11시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여전히 대다수 편의점과 슈퍼마켓은 이 법안을 엄격하게 지킨다. 그러나 정작 주류 소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점에서는 이 법이 사문화됐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난히 큰 태국에서 음식점 주류 판매 규제를 강화하면 국민 상당수 생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태국 현지 매체 PBS는 시민 단체 알코올 감시 네트워크를 인용해 “오후 2~5시 판매 금지 조항이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소비자를 처벌할 수 없어 유명무실했다”며 “새 법안은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보도했다.

태국 관광업계는 즉각 혼란에 빠졌다. 태국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18%가 관광 산업에서 나온다. 3% 남짓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태국 관광 산업은 현재 강(强) 바트와 경쟁국 부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태국 바트화 가치는 코로나19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강세를 유지 중이다. 통화 가치가 오르면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여행 경비 부담이 커진다. 이미 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태국 관광청(TAT)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9월 21일까지 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234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4% 줄었다. 특히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주요국 관광객들이 하반기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TAT는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관광 수입이 목표치보다 15~17%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태국 방콕 왓 아룬 사원에서 도시 불교 승려들이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베트남은 간소화된 비자 정책과 저렴한 물가를 무기로 태국 관광객을 무섭게 흡수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저가 항공편을 늘리고 비자 정책을 완화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연간 1400만명에 가까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이번 주류 규제에서도 면허를 소지한 호텔과 리조트, 클럽 등 유흥 장소와 국제공항 라운지는 제외된다. 하지만 이는 극히 소수에 그친다. 관광객 대다수가 드나드는 일반 식당과 바 같은 소규모 주점 운영자들은 생계에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사가 루앙와타나쿨 카오산로드 상인협회 회장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가령 오후 2시 1분에 테이블에 맥주가 절반쯤 남아있다고 가정하면, 해당 술을 마시던 소비자와 업소 모두 최대 1만 바트 벌금을 물 수 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신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외국인 방문객을 경쟁 목적지에 빼앗길 수 있다”고 했다. 호주, 영국, 미국 등 주요국 대사관 이미 자국민에게 관련 제한 사항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관광업계는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 등 관계 부처에 관광객 행동 패턴에 맞춰 서비스 시간을 연장하거나 특정 구역을 지정하는 방안 등을 요구할 방침이다. 타나왓 폰위차이 태국 상공회의소 대학(UTCC) 총장은 방콕포스트에 “이번 규제는 연중 가장 중요한 성수기 관광객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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