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튀르키예인들이 국경 넘어 그리스에서 장보는 이유
치즈·초콜릿은 가격차 70%까지 벌어지기도
고금리 기조로 급선회하며 ‘살인적 인플레이션’ 이어진 탓
그리스行 당일치기 ‘쇼핑 여행’ 상품도 인기 높아
“여기서 리터당 10유로 하는 올리브 오일이 튀르키예에선 두 배 값입니다. 평균적으로 튀르키예 대비 3분의 1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거주 중인 식음료 기업 임원 지한 치탁(48)은 매달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그리스 알렉산드로폴리스로 장을 보러 간다고 밝혔다. 이스탄불 식탁 물가가 급등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치탁은 “주로 와인과 치즈 등 식료품 위주로 쇼핑 카트를 채운다”며 “매장 내부에서 튀르키예인을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9일(현지 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스 북동부 항구 도시 알렉산드로폴리스는 최근 튀르키예에서 온 쇼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튀르키예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그리스를 방문한 튀르키예인 중 6%는 ‘쇼핑 목적’으로 국경을 넘었는데, 이는 2012년 이후 최고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틱톡,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제품 가격을 비교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양국 간 물가 차이는 뚜렷하다. 예컨대 알렉산드로폴리스 대형마트 체인 리들에서는 다진 소고기가 1㎏당 9.36유로로, 이스탄불 까르푸(12.10유로)보다 약 20% 저렴하다. 아울러 소시지는 가격이 절반 수준이며, 고다 치즈와 킨더 초콜릿은 최대 70%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그리스에서 튀르키예로 원정 쇼핑을 오던 추세가 완전히 뒤집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튀르키예의 통화 정책 전환이 있다. 2003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며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 자국 통화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을 유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앙은행을 정치적으로 조종하면서 리라화는 급격히 폭락했으며, 인플레이션이 살인적 수준으로 치닫게 됐다.
2023년에는 메흐메트 심셰크 재무장관이 임명되면서 고금리·긴축 기조로 선회, 식료품 물가 상승률이 54%에서 35%까지 낮아졌으나 소비자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튀르키예 통계청에 따르면 심셰크 장관 취임 이후 식품·비알코올 음료 가격은 144% 상승했으며, 중앙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30%를 웃돌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물가 부담이 가중되면서 정치권도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외즈귀르 외젤 당대표는 “국민이 식료품을 사기 위해 외국으로 가야 하는 나라가 됐다”며 “23년 집권의 결과가 이렇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튀르키예 서부 도시들에서는 ‘그리스 장보기 투어’가 새로운 여행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스탄불·차나칼레·부르사 등지 여행사들은 약 50유로(8만4000원)로 그리스 알렉산드로폴리스에 다녀올 수 있는 하루 버스 투어를 운영 중이다.
예컨대 여행사 아톰 투어는 매주 금요일 이스탄불에서 출발, 토요일 오전 알렉산드로폴리스에 도착하는 야간 버스 투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3시간 반에 걸쳐 자유롭게 쇼핑을 한 뒤 점심 식사와 도시 관광을 마치고 오후에 귀국하는 코스다. 이 여행사 관계자는 “고기, 치즈는 물론 해산물 식사도 절반 가격이라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본다. 통화 안정과 물가 완화를 내세우는 정부와 치솟는 밥상 물가를 맞닥뜨린 서민 간 괴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일명 ‘원정 쇼핑’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7월 튀르키예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1′에서 한 단계 상향 조정한 ‘Ba3′으로 설정한 바 있다. 무디스가 튀르키예의 등급을 올린 것은 2023년 7월 이후 약 1년 만으로, 무디스는 등급 상향 배경에 대해 “리라화에 대한 국내외 신뢰를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통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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