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통일의 주역 이사(李斯)의 몰락

기호일보 2025. 11. 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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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제의 통일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는 이사(李斯 ?~BC 208)였다.

다른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이 뛰어난 이사를 그저 내쫓으라고 하니 시황제 역시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됐다.

글 한 편으로 시황제를 감동시킨 이사는 진나라 출신 신하들의 질시와 모함을 이겨내고 마침내 시황제의 통일 사업을 완수하는 주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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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용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시황제의 통일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는 이사(李斯 ?~BC 208)였다. 그는 초나라 출신으로 법가를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와 함께 순자(荀子)에게서 제왕학을 배웠다. 이 나라 저 나라로 벼슬자리를 찾아다니다 진나라에 들어가 승상 여불위(呂不韋)의 밑에 있으면서 시황제의 신임을 얻어 통일 전쟁을 수행했고 통일 이후 문자, 도량형, 분서갱유 등 온갖 정책을 주도했다.

순탄하게 출세가도를 달리자 외국 출신이니까 끝내는 진나라를 배반할 것이라는 등 토착 세력으로부터 시기와 모함을 받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이 뛰어난 이사를 그저 내쫓으라고 하니 시황제 역시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됐다.

이때 이사는 자기와 같은 외국 출신의 신하를 내쫓지 말아야 한다는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지어 올렸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아 큰 산이 되고, 강과 바다는 작은 시냇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깊은 바다가 되고, 왕은 뭇 백성을 물리치지 않아야 왕의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 지금 외국 출신 정객을 쫓아내면 적국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며 백성을 해치고 적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是以太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王者不卻衆庶, 故能明其德…今逐客以資敵國, 損民以益仇)"라고 했다.

모든 인재를 곁에 두고 세상을 통일하고 싶었던 시황제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은 명문이다. 글 한 편으로 시황제를 감동시킨 이사는 진나라 출신 신하들의 질시와 모함을 이겨내고 마침내 시황제의 통일 사업을 완수하는 주역이 됐다.

그의 운명은 시황제의 죽음과 함께 갈리게 됐다. 통일 이후 시황제는 전국을 순시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다섯 번째 순시를 하던 중  BC 210년 여름 사구(沙丘, 오늘날 하북성 平鄕縣 부근)에서 죽음을 맞았다.

순시하던 황제가 죽었다면 시신을 수습해 바로 황궁으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르고 태자 부소(扶蘇)가 황제 자리에 즉위해야 했는데, 이때 자신의 권력을 계속 누리고 싶었던 환관 조고(趙高)는 이사를 꼬드겨 음모를 꾸몄다. 시황제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지금의 태자를 죽인 뒤 자기 말을 잘 듣는 막내 왕자 호해(胡亥)를 옹립하자는 것이었다.

때는 한여름, 썩고 있는 시황제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황궁으로 향했다. 악취가 심해지자 조고는 황제께서 요즘 부쩍 생선을 즐겨 드셔서 비린내가 나는 것이라며 둘러댔다.

이때 마침 만리장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러 가 있던 태자에게는 불효자라는 명목의 죄를 씌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시황제의 거짓 명령서를 작성해 보냈다. 뭔가 음모가 있는 듯하니 좀 더 알아보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소는 명령을 따랐고, 조고와 이사는 호해를 태자에 올렸다가 새 황제에 즉위시키고 권력을 장악했다.

천년만년 갈 것 같던 이사의 권력도 조고와 대립하면서 끝장을 드러내고 만다. 조고는 이사가 진승(陳勝), 오광(吳廣)과 결탁해 반란을 꾸몄다며 죄를 뒤집어씌웠다. 이사는 수도 함양(咸陽) 거리에서 허리가 잘리는 형벌인 요참형(腰斬刑)을 받아 죽고 가족도 모두 죽음을 당했다.

이사가 조고의 꾐에 빠지지 않고 시황제가 죽은 다음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나 평안히 노후를 보내다가 죽었더라면 아마도 중국 역사에서 위대한 승상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시황제를 도와 500년 동안 이어지던 혼란기를 단번에 통일하고 여러 통일 사업을 이뤄내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터인데, 권력을 좀 더 이어가 보겠다는 욕심으로 결국 자신은 물론 집안 모두가 처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권력에 취한 이사의 끝장은 씁쓸한 정치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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