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만 가득한 임상시험 병동...이유가 성호르몬 차이?
<1>수상한 삼각관계
참여자 성비 불균형...남성 30% 多
호르몬 차이, 중도 탈락 등을 이유로
여성 발현 부작용 포착 어려워져
편집자주
의약품 효능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매년 1,000건 진행된다. 지난해에만 16만 명이 참여했다. 누군가는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누군가는 경제적 보상을 받으려 임상시험을 선택한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보호할 제도와 감독은 느슨하고 허술한 실정이다. 한국일보는 4회에 걸쳐 임상시험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본다.

9월 18일 아침, 서울 강서구의 한 임상시험센터 앞.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돌돌 긁는 소리와 함께 일군의 무리가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첫 타자는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젊은 남성. 그 뒤를 운동복 저지와 후드티 등 편한 차림의 남성 대여섯 명이 따랐다. 거뭇하게 올라온 수염을 쓸며 터벅터벅 걸어 나온 이를 끝으로 이날 센터에서 나온 인원은 50명. 전원 남성이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30% 더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임상시험 참여자는 남성이 9만2,600여 명, 여성이 6만8,600여 명으로 성비에서 또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앞선 2년도 마찬가지. △2022년 남성 9만21명, 여성 6만5,524명 △2023년 남성 8만9,538명, 여성 6만7,145명으로 30% 이상 격차를 보였다.

한국일보는 8월 한 달간 건강인 대상 임상시험을 진행한 서울·경기권 병원 20여 곳을 20차례 이상 방문, 참여자들 면면을 살펴봤다. 그리고 두 곳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 시험센터에는 남성 참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만 18세 이상의 건강한 성인 남녀'라고 적시한 시험 모집 공고가 무색할 정도였다.
참여 경험자들 얘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성 참여자를 구하는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 정원 자체가 적고, 공고 내용과 다르게 여성을 뽑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이들은 전했다.
당뇨병 치료제 임상시험에 참가한 김혜민(31)씨는 "시험 공고가 10개 올라온다고 하면 8개는 남성만, 2개는 여성도 모집한다"며 "정원이 (남성에 비해) 적어 마감이 빠르게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 참가한 시험에서는 "여성이 8명인 반면 남성은 32명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여성은 중도 탈락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치우침의 원인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이를 "굴러가는 방식"에서 찾는다.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의뢰자(제약사 등) 입장에서는 참여자의 중도 탈락을 매우 경계한다. 새 의약품을 출시하기에 앞서 제약사는 1·2·3상 통과 목표 시점 등 단계별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 건강인 참여자 모집은 임상의 가장 앞 단계인데, 만약 중도 탈락자가 발생한다면 혈액 샘플 수 변동 등 꽉 짜인 계획과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절차 중단이라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제약사나 임상시험 실시기관(병원 등)은 구인 플랫폼에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건강인 모집을 의뢰하면서 ①변동 없는 샘플을 ②최대한 많이③가능한 한 빠르게 모아달라고 요구한다. 성 호르몬으로 인한 변수가 낮은 '젊은 남성'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상시험 참여자를 모집하는 M 플랫폼 관계자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여성은 월경이나 임신 등 호르몬 변화로 투약 결과를 왜곡시킬 리스크가 크고, 이로 인한 중도 탈락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지원자 중) 남성 위주로 골라 보내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여성 지원자들이 임상시험 사전 건강 검진에서 마지막 월경 일자를 밝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집업체 입장에서도 남성 참여자들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빨리' '가능한 한 많은' 참여자를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임상시험에 참가했던 경력자를 찾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한 번 이상 경험한 남성들에게 참가의 기회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치매와 저혈압처럼 여성의 발병률이 더 높은 질병 치료제에 대한 시험 역시 대부분 남성 위주로 병동을 채우게 된다.
제약사와 실시기관을 이어주는 한 임상시험수탁기관(CRO) 관계자는 "한마디로 쉬운 길을 찾는 것"이라며 "(2·3상처럼) 특정 조건에 꼭 맞는 환자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닌 이상 큰돈 쓰고 품을 들일 이유가 없다"고 풀이했다. 모집업체 B 소속 관계자도 "제약사 입장에선 건강인 대상 시험 일정이 틀어지지 않고 무난하게 결과를 내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부연했다.
남성 중심 임상, 건강 불평등 낳는다

문제는 일부 의약품에서 왜곡된 시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남성 참여자 일색일 경우 여성에게 특징적으로 발현되는 부작용 등을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면제인 졸피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약의 경우 복용 후 부작용이 여성에게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전 중 가수면 상태에 빠진다거나, 낮 시간에 주의집중장애가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방에 잘 흡수되는 성분 특성상 체지방이 많은 여성의 체내에 더 오래 머물며 인지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미국식품의약국(FDA)은 2013년 1월부터 여성의 졸피뎀 최초 복용량을 남성의 절반으로 줄이도록 했다.
국내 제약사의 한 과민성대장증후군 치료제 역시 여성이 정량 복용할 시 변비를 유발한다는 점이 처방받은 환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지난해 발표된 논문 '건강한 임상시험 참여자 보호에 관한 쟁점: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을 중심으로'(서울대)는 "어떤 약물의 약동학적 특성이 나이, 성별, 인종, 건강 상태 등에 의해 차이가 생긴다면 이는 임상적으로 부정확한 데이터를 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 위주로 임상시험이 진행된다면 졸피뎀과 같은 약의 경우 출시 전 부작용을 제대로 잡아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남녀 모두에 대한 임상시험을 함께 거치도록 규제한다. 미국은 1993년 임상시험에 여성 참여자를 필수로 포함시키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영국 또한 의약품 의료제품 규제청(MHRA)과 보건연구청(HRA) 등 임상 연구에 다양성 계획을 반영하라는 지침에서 성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역시 시험 참여자의 성별 비중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장(소화기내과 교수)은 "신약과 복제약 임상시험 모두 한 성별이 전체 참여자의 3분의 1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시험이 진행되도록 시범적으로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신은별 기자
취재: 이유진 기자, 백혜진•황은서 인턴기자
인터랙티브: 한규민 디자이너, 윤창원 개발자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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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프롤로그
- • 설명서 단 5분 읽고 임상시험에 동의했다...100만 원에 거래되는 '빈자'의 건강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715150003871) - • "내 건강을 팝니다"…그런데 임상시험 이해는 하셨나요? [인터랙티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0617110002351)
- • 설명서 단 5분 읽고 임상시험에 동의했다...100만 원에 거래되는 '빈자'의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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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수상한 삼각관계
- • 아빠 병원에서 임상시험하고 처방한 그 약, 아들 회사에서 만들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17120004185) - • 병원과 제약사, 임상시험 의약품 서로 몰아줘도...법은 막을 수 없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18040005198) - • 아빠·아들의 수상한 임상시험 생태계…1등 모집회사도 긴밀하게 '우리 편'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0050001752) - • 사례비로 유혹하고 유령 회사 동원하고...'건강 판매' 부추기는 임상시험 모집업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19250005070) - • "임상시험 모집과 참여 동기가 돈이 되어선 안 된다"...뉴욕의 모집 회사는 다르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19240000996) - • 남자만 가득한 임상시험 병동...이유가 성호르몬 차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718230002228)
- • 아빠 병원에서 임상시험하고 처방한 그 약, 아들 회사에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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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가난에 빚지다
- • 아내는 임상시험 받다 떠났다..."비용 부담하겠다"는 말을 외면 못 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0180000909) - • "분명 돈 때문인데, 돈 때문이어선 안 된다"...임상시험 '딜레마'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0230003739) - • 임상시험 받던 아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6년 소송 엄마는 여생을 잃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721520002581) - • '갈 길 먼' 임상시험 피해 보상...합의 안 되면 소송 말고 길 없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0250002324)
- • 아내는 임상시험 받다 떠났다..."비용 부담하겠다"는 말을 외면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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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K뷰티의 그늘
- • "반찬값 벌려고" 최저시급에 피부 맡기는 4050 경단녀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716070001262) - • 부작용 설명도 없이 "빨리 사인하세요"… 피부 시험 '대충' 해도 식약처는 뒷짐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0300003485) - • "규칙 만들고 스스로 지킨다"…화장품 시험기관 '자율 관리' 한계 또렷하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0430001872) - • '볼 패임, 가슴 볼륨 크림으로 메우세요'...과대광고 보증 서는 인체시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717050002868)
- • "반찬값 벌려고" 최저시급에 피부 맡기는 4050 경단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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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임상시험 강국으로
- • "어렵고 긴 설명서, 초등생도 이해할 수 있게 싹 바꿔야"...WHO '충고' [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1190002150) - • "임상시험 강국 꿈꾼다면…참여자 권리부터 챙겨야"[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621220002148)
- • "어렵고 긴 설명서, 초등생도 이해할 수 있게 싹 바꿔야"...WHO '충고' [인터뷰]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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