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심정지에 심장이식까지...故 딕 체니 전 美부통령이 세운 진기록

채인택 2025. 11. 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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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과 혈관질환 관련 합병증으로 84세로 숨져
71세 때 심장이식 수술…미 정·부통령 중 유일
37세부터 5차례 심장마비…여러 시술로 위기극복
관상동맥우회술·심실보조장치…심장의학사 보는 듯
퇴임 뒤에도 심장관리하며 장수…환자에 용기·희망
지난 3일 버지니아주 자택에서 별세한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 2009년 6월 1일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2001~2009년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가 11월 3일(현지시간) 버지니아 북부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폐렴과 혈관 질환과 관련된 합병증이 사망 원인으로 발표됐다. 그와 8년의 임기를 함께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동시대 최고의 공직자 중 한 명으로, 모든 직책에서 정직성, 높은 지적 능력을 보이며 진지한 목표를 추구했던 애국자"라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테러와의 전쟁' 설계자…전쟁 수렁 빠뜨렸다 비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통령으로 재임했던 체니는 외교·국방 분야를 사실상 위임받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사실상 대통령'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부통령 재임 첫 해인 2001년 중동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알카에다로부터 9·11테러를 당하자 '테러와의 전쟁'을 설계하고 실행을 주도했다. 9·11의 기획자 오사마 빈라덴 인도를 요구하며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이어 2003년에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 전쟁은 2011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21년까지 계속돼 미국과 세계를 전쟁의 수렁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심장질환 이겨내며 직무 수행한 용기와 희망의 인물

체니 전 부통령은 이런 정치적 비판과는 별개로 의학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인물이다. 임기 중에는 물론 퇴임 뒤에도 건강과 관련한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우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체니는 한마디로 거의 평생에 걸쳐 심장질환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한 '의지의 환자'라고 볼 수 있다. 심장질환으로 인한 '도전과 극복'의 이력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다. 아울러 질병을 안고 직업에 종사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기도 한다.

20개월 대기 끝에 심장이식 수술…84세까지 장수

우선 그는 퇴임 뒤 3년이 지난 2012년 71세의 나이로 전현직을 통틀어 미국의 정·부통령 중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심장이식을 받았다. 기증 심장이 그에게 배정된 것이 혹시 특혜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기증자를 기다리며 20개월 간 대기한 뒤 이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는 37세 때 처음 심장마비를 겪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평생 심장 문제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꾸준한 치료와 긴급 이송, 적절한 치료 등으로 버텼다. 그 결과 84세까지 살 수 있었다.

특히 미국 기준으로는 확실히 장수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유엔 발표에 따르면 미국인의 출생시 기대여명은 79.39세(남자 76.86, 여자 81.85)로 세계 55위다. 체니는 미국인 남자 평균보다 7년 이상 더 생존한 셈이다.

참고로 한국의 기대여명은 84.33세(남자 81.19, 여자 87.16)로 홍콩(85.51세, 남자 82.84, 여자 88.13)과 일본(84.71세, 남자 81.69, 여자 82.74세)에 이어 세계 3위다.

20년간 하루 3갑씩 피운 담배가 문제로 지목

체니의 건강 문제는 부통령 재임 중에도 수시로 터졌다. 이 때문에 그는 무력 사용을 앞세우는 매파 정치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건강 문제로도 자주 주목을 끌었다. 이는 그의 건강 수준이 부통령이라는 중요 공직을 수행하는 데 적합한지, 아니면 물러나서 요양해야 하는 지를 둘러싼 논쟁을 불렀다. 20년 동안 하루 세갑씩 피웠던 담배가 사단을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가장 큰 문제는 30대에 시작된 심혈관 질환과 이에 따른 잦은 응급실 이송이었다. 체니는 공식 확인된 것만 평생 다섯 차례의 심장마비를 겪었다. 하지만 초기 대응과 응급조치를 잘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1978년 6월 18일 37세에 첫 심장마비를 겪었을 때는 와잉오밍주 연방하원의원을 노리고 한창 경선과 선거 준비를 하던 때였다. 다행히 선거에서 승리해 이듬해인 1979년 초선의원으로 연방하원에 입성할 수 있었다.

체니는 그 뒤 1989년까지 10년간 6선(연방하원의원 임기는 2년)을 하면서 연방하원의원으로 재임했다. 그러는 사이 1984년과 1988년에 각각 심장마비를 더 겪었다. 1988년 심장마비를 겪은 뒤에는 4개의 관상동맥 우회로 이식술을 받았다.

그 뒤 조지 H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1989~1993년 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동안에는 관리를 잘 했는지, 심장마비는 보고되지 않았다. 국방부 장관으로서 보안을 잘 유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2008년 6월 17일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딕 체니 당시 부통령(왼쪽)이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텐트·풍선성형술·심장박동기…발달한 심장의학으로 생명연장

체니는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로서 한창 선거운동을 치르던 2000년 11월 22일 네 번째 심장마비를 겪었다. 당시 그는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술을 받았다.

부통령에 취임한 지 석달 째인 2001년 3월에는 긴급 관상동맥 풍선 혈관성형술도 받았다. 그해 6월에는 심장 박동기 이식술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9·11테러를 맞았다.

이후 부통령 임기동안 그는 심장마비를 겪지 않았지만 다양한 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2005년 7월 정기검진에서 슬와동맥류(무릎 뒤쪽 오금을 지나는 슬와동맥의 혈관벽이 약해져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상태)가 발견됐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발표됐다. 9월 24일 슬와동맥류를 치료하기 위해 6시간 동안 양쪽 무릎 뒤쪽 동맥에 카데터를 삽입하는 혈관 시술을 받았다. 5개월 뒤에는 호흡곤란을 겪은 뒤 검사를 위해 잠시 입원했다.

2007년 3월 5일에는 왼쪽 종아리에 통증을 느낀 뒤 조지워싱턴 대학병원에서 왼쪽 다리의 심부정맥혈전증으로 진단받았지만 혈액 희석제를 처방 받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해 11월 26일 오전에는 병원에 가서 심방세동을 진단 받고 당일 오후에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됐다.

2008년 7월 12일 심장검사에선 '심장 질환 병력이 있는 67세 남성으로선 심장박동이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008년 10월 15일 체니는 사소한 이상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다고 발표됐다.

부통령 임기 마지막 날인 2009년 1월 19일 새 집으로 상자를 옮기던 중 허리를 다쳤다. 결국 체니는 새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취임식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게 됐다.

퇴임 뒤에조 심장기능장애 겪다 이식으로

부통령 재임 중 심장 문제는 가혹한 스트레스가 원인의 상당 부분을 제공했을 수 있다. 하지만 체니는 퇴임 이듬해인 2010년 2월 22일에도 심장마비를 겪었다. 그날 그는 흉통을 호소하며 조지워싱턴대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좌심실에 중등도의 수축 기능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됐다.

딕 체니는 2012년 71세의 나이로 미국의 전현직을 통틀어 정‧부통령 중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심장이식을 받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상황은 계속 악화했다. 그해 6월 25일에도 불편함을 호소하여 조지워싱턴대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결국 심부전이 악화하면서 2010년 7월 초 버지니아주 우드번의 심장질환 전문의료기관인 이노바 페어팩스 심장 및 혈관 연구소에서 좌심실 보조장치(LVAD)를 장착하게 됐다. 몸 전체에 지속적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장치다.

체니는 그해 8월 9일에 퇴원했지만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됐다. 체니의 주치의 조나단 라이너는 환자에게 "건강한 71세 남성이 이식 수술을 받으면 10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체니는 심장 이식을 결심한 뒤에도 익명의 기증자로부터 심장을 기증받기까지 20개월 넘게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2012년 3월 24일 체니는 이노바 페어팩스 병원에서 7시간에 걸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71세에 심장을 이식받은 그는 2025년 11월 3일 저녁(현지시간) 버지니아 북부에서 폐렴과 혈관 질환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을 더 살았다. 체니는 현대 심장의학 기술 덕분에 84세 장수를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국방부 장관 이어 부통령으로…부시 부자 모두와 함께 일해

체니는 2001년 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8년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통령으로서 임기를 함께했다.

부통령이 되기에 앞서 그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주요 공직을 줄이어 맡았다. 격무와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 세갑의 담배를 피우면서 심장에 문제가 축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9년 3월에서 1993년 1월까지 4년간 조지 W 부시의 아버지인 조지 H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부통령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불을 붙인 그는 사실 군 복무 경험은 없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징집 대상이던 체니는 다섯차례에 걸쳐 연기를 신청했다. 대학학업·기혼·자녀출산·부양가족 등의 사유였다. 마지막에는 연령(26세) 초과로 징집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는 문민우위 원칙을 지켜 국방부장관에 군 경험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예일대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전기공으로 일하다 와이오밍대에 들어가서 학부를 마쳤다. 그 뒤 주지사 보좌관, 의원실 인턴을 거쳐 다양한 공직을 맡았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행정부 시절인 1974년 12월에서 1975년 11월까지 백악관 비서실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비서실장 아래에서 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럼즈펠드가 국방부 장관으로 가면서 비서실장을 맡아 1977년 1월 포드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까지 함께했다.

그 뒤 1979년 1월에서 1989년 3월까지 와이오밍주의 연방하원의원을 지내다 1989년 국방부장관을 맡으면서 물러났다. 이처럼 일평생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겠다는 야망을 키우며 격무에 시달렸던 것이 젊어서부터 심장질환에 시달린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공직에서 은퇴한 뒤에도 이 질환은 지속적으로 체니를 따라다녔다. 심장의학의 역사, 그리고 공직과 건강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체니의 삶이다. 그 과정에서 그를 84세까지 생존하게 해준 의학 연구자들과 의료진의 노력도 잊을 수 없다.

채인택 의학 저널리스트 (tzschaeit@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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