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73) 만파식적

신라 천년 동안 조용한 시대는 없었다. 시대마다 소란은 있었고 그 소란을 잠재우는 이도 있었다. 삼국통일 이후인 신문왕 시대에도 나라 안팎은 불안했고 백성들의 마음도 흔들렸다. 왕이 즉위하면서 김흠돌의 반란을 사전에 미리 제압했지만 왕권은 불안정 했다.
이때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 김유신 장군이 신문왕에게 내린 피리 만파식적을 불면 파도가 멎고 전쟁이 물러가며 병이 사라졌다. 이 이야기는 신화를 넘어 한 시대를 지탱한 믿음이었고 권력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신화전설: 만파식적과 옥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통일 이후의 평화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귀족들의 힘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국경 너머에서는 당나라의 그림자가 여전히 위협처럼 남아 있었다. 나라 안에는 흉년과 병란이 이어졌고, 백성들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 불안이 곧 왕권의 불안을 의미했다.
그 시절, 신문왕은 보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고 동해 바다로 향했다. 신하 김문영과 함께 동해의 해변에 서 있을 때, 갑자기 파도가 갈라지고 하얀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용은 신문왕을 등에 태우고 바다 밑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도착한 곳은 죽도라 불리는 신비한 섬이었다. 섬 한가운데는 높이 솟은 돌기둥이 있었고, 그 돌기둥의 틈 사이에서 하나의 피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문왕은 그 피리를 들고 육지로 돌아왔다. 백성들 앞에서 피리를 불자, 며칠째 그치지 않던 비가 멎었고, 흉흉하던 병이 사라졌다. 외적의 침입 소문이 돌 때마다 왕이 그 피리를 불었고 이어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피리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었고, 신의 목소리였으며, 왕의 권위를 증명하는 신물이었다. 왕은 보물창고 깊숙한 곳에 피리를 보관했다.
피리의 소리는 실제로 무언가를 바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 피리를 믿는 순간 백성들은 안심했고, 왕은 더욱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만파식적은 그렇게 현실을 잠시 멈추게 하는 신화가 되었고, 그 소리는 고요 속에서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흔적: 가미새바위
신라 문무대왕릉은 동해의 파도 속에 잠든 채, 한민족 해양사상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 경주 감포 앞바다의 '대왕암'이 문무왕릉으로 지정된 지도 반세기가 넘는다. 하지만 최근, 문헌과 지형, 민속 지명까지 종합적으로 재검토하려는 시도가 학계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신라시대 이견대에서 문무대왕릉까지의 거리를 '70보'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불과 수십 미터 수준의 거리다. 그러나 현재 사적 제158호로 지정된 대왕암과 이견대는 1km 이상 떨어져 있어, 고문헌의 거리 기술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곳이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의 해안가에 위치한 '가미새바위'다.

또한 이 바위와 마주한 서쪽의 작은 언덕은 주민들이 '당수께'라 부르며 오랫동안 신성시해 온 장소다. 이곳은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조에 등장하는 '이견대'의 위치와도 거리상으로 부합한다. 신라 왕이 죽은 뒤 바다가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장소로서의 상징성이 여전히 서려 있다.
이러한 다양한 지리적, 문헌적 단서들을 바탕으로 일부 연구자들은 '문무왕릉과 이견대의 위치가 잘못 비정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가미새바위를 중심으로 한 일대의 정밀한 고고학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전통해양문화연구소 김성규 소장은 가미새바위가 "문헌 기록과 지형 모두에서 대왕릉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며 당수께와 가미새바위 주변을 본격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김 소장이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를 바쳤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삼국유사 원문에 배를 뜻하는 단어는 없다"면서 "왕범해입기산(王泛海入其山)은 왕이 찰방거리는 바닷물을 건너 산으로 들어간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현재 가미새바위가 맞다고 설명했다.
가미새바위는 남근의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고, 둘레에 여근의 형상으로 바위들이 둥글게 포위하듯 솟아 있다. 그 사이로 바닷물이 파도에 따라 들어오고 나간다. 이 바위는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면 섬이 되고, 평소에는 뭍으로 연결돼 걸어서 들어갈 수가 있다.

◆스토리텔링: 신화로 만든 권력의 목소리
신화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가 필요로 할 때 탄생한다. 만파식적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겉으론 신비한 이야기였지만, 그 이면에는 신라 왕실의 절박한 사정이 숨어 있었다. 신문왕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무리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무열왕과 문무왕이 대를 이어 이룬 강력한 왕권 체제는 몇 년을 지나지 않아 균열을 일으켰다. 귀족들은 점점 힘을 키웠고, 중앙의 권위는 지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신문왕은 그 흐름을 되돌려야 했다. 단순한 정책이나 법령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백성들이 믿을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장치를 필요로 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아름다웠다. 바다 속에서 피리를 얻고, 그것을 불어 세상의 어지러움을 잠재우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단지 상상 속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실제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왕의 통치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신문왕은 피리를 통해 통치했고 백성들은 그 피리의 절대적인 힘을 믿었다.
이 피리는 오늘날로 치면 지도자의 메시지와도 같다.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그 한마디처럼 신문왕의 피리 소리는 백성들의 불안을 달래주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었다. 말이 아닌 소리로 전달된 신뢰 그것이 만파식적이 가진 정치적 힘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혼란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넘쳐나고, 소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누군가의 '피리'를 기다린다. 반드시 만사를 해결해 주는 전설 속 피리가 아니더라도 함께 흔들리고 함께 견디게 해줄 단 한 줄기 울림이 절실하다. 누군가의 말이, 손짓이, 숨결이 그런 울림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만파식적은 이제 더 이상 실체가 없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이다. 피리의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리고 오늘 우리는 피리를 불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이 꼭 지도자일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의 말, 한 사람의 행동이 또 다른 만파식적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파도 앞에서 누군가는 다시 피리를 꺼내 들어야 한다. 그 피리를 불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와 타인을 향한 믿음을 바탕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피리를 불 차례는 이제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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