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사과학자]④ "첫 6개월간 연구 못따 논문만 읽어…의학 한계 넘으려면 연구해야"

[편집자주] 의사과학자는 의대 졸업 후 의학, 과학, 공학 분야를 연계 지어 연구하는 의사인 동시에 과학자입니다. 임상 경험과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로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첨단 바이오 및 의료기기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제 또는 치료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 차원의 백신 개발 기술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생태계 강화에 나섰지만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도 사실입니다. 임상의에 대한 높은 선호도와 불안정한 연구 환경 등으로 국내 의사과학자 수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국내 의사 중 의사과학자 비율은 1%에 불과합니다. 동아사이언스는 비율은 1%에 불과하지만 공중보건은 물론 첨단바이오 분야에서만큼은 상위 1%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국내 의사과학자들을 직접 만나 의사과학자로서의 고충과 역할의 중요성 등을 조명해봅니다.
"의사과학자를 택할 때 주변 반대 물론 있었죠. 대학 졸업하고 왜 인턴, 레지던트를 시작하지 않느냐는 반응들이 있었어요. 포닥(박사후연구원) 시절, 심지어 교수 발령을 받은 뒤에도 임상의를 택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 의견들이 있었어요."
연세대에서 2001년과 2003년 각각 의대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2006년 동 대학원에서 나노과학기술협동과정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형범 세브란스병원 약리학교실 교수는 임상의 대신 의사과학자를 택했을 때 주변 반응이 어땠냐는 물음에 유별난 선택에 따가운 시선을 받는 대가를 치렀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대학 졸업 후 전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200명 동기 중 임상의 과정에 진입하지 않고 의사과학자를 택한 건 김 교수가 유일하다.
김 교수는 “의사과학자를 택하는 일이 맞는 건지 고민이 되긴 했다”며 “어떻게든 생계 유지는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며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연구 분야는 유전자 교정이다. 문제가 있는 유전자를 교정하고 유전질환을 치료하거나 유전자의 기능을 되돌리는 '유전자 조각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유전자를 조각할 때 쓰이는 도구는 유전자 가위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바꿀 수 없는 유전자를 가위로 조각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정상적인 상태로 바꿀 수 있다.
김 교수는 수천 개의 유전자 가위를 한꺼번에 만들어 다양한 돌연변이를 만드는 작업을 시행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대량의 변이를 만들면 각 변이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 인구의 38%는 DNA 손상을 감지하고 복구하는 유전자인 'ATM 유전자'에 최소 1개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ATM 유전자가 변이의 영향으로 기능적인 파괴가 일어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예전에는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기술인 시퀀싱 기술을 통해 ATM 내 변이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변이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있지만 문제가 되는 변이인지 여부는 판별하지 못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ATM 변이의 역할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ATM 유전자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변이를 만든 뒤 유전자 교정 기술인 '프라임 에디팅'과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모델 'DeepATM'을 이용해 ATM 변이 중 해로운 변이를 식별했다.
김 교수는 유전자 교정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낸 의사과학자로 주목받고 있지만 처음 교수로 임용됐을 땐 막막함이 있었다.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첫 6개월간 연구비를 수주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출근하면 할 일이 없었다”며 “그 기간 동안 논문만 봤다”고 말했다. 이어 “선택이라기보다 연구를 할 수 없으니 반 강요에 의해 유전자 가위 공부를 하게 된 건데 6개월 정도 논문을 보니 연구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방향성이 잡히고 나니 연구비를 따내는 일이 수월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연구는 끊임없는 실패 과정에서 드물게 성과를 얻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좋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한다”며 “기본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을 계속 바꿔 나가야 하고 포기할 때쯤 간혹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뜻밖에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연구의 묘미라 생각하며 연구를 지속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의사과학자의 길을 택하기 어려울 것이란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교수는 대다수가 임상의를 택하는 현실에 대해 “경제적 이유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며 “임상의와 의사과학자 간 급여 차이가 크다는 점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대우가 좋아지면 연구를 택하는 의사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Q. 박사 학위는 의학이 아닌 이학 쪽에서 받았다. 학생 신분일 때 임상의가 아닌 의사과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가?
"전문의가 되는 과정에 박사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연구를 하기 위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의사과학자가 되기 위해 이학 박사를 취득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의학이나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을 수도 있다.
의사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본과 3~4학년 때쯤이다. 의학 기술이 크게 발전해 많은 질병이 완치 단계에 이르는 상황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습을 돌면서 보니 깨끗하게 치료되는 질환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현재의 의학 한계를 돌파하려면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Q. 진료를 병행하지 않는 의사과학자로서 하루 일과 대부분을 연구에 할애하고 있나?
"연구만 할 수는 없다. 어제만 해도 학부생 강의가 있어 강의에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아마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은 50%도 안 되지 않을까 싶다."
Q. 의사과학자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의사이면서 과학자이면 의사과학자라 생각한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이 연구를 하고 있으면 의사과학자에 해당한다고 본다."
Q. 올해 일본에서 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1명은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한국 연구자들이 일본 연구자들보다 덜 열심히 하는 것도, 실력이 부족한 것도 절대 아닐 텐데 왜 국내 수상자는 탄생하지 않는 걸까?
"우리도 머지않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생물학, 의학, 생명과학, 바이오 등의 연구를 국내에서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선배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연구 환경이 열악했다. 세계적인 연구 환경이 갖춰진 지 25~3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국내 연구자 중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 것이라 기대한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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