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스무 살 차이 박상현 황유민 함께 우승. 한연희 감독 제자들, 시즌 피날레 장식
- KLPGA 대보 하우스디 챔피언십 4차 연장승… LPGA 진출 앞두고 유종의 미
- 탁월한 클러치 능력, 동반 승전보에 “가족 같은 기쁨”
- 지도자의 헌신이 만든 라스트 댄스

화려한 피날레였습니다. 같은 날 막을 내린 국내 남녀프로골프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는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는 챔피언의 탄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이 지도하는 박상현(42·동아제약)과 황유민(22·롯데)이 그 주인공입니다. 두 선수 모두 마지막 홀 극적인 버디 퍼트에 힘입어 우승 재킷을 입었습니다.
박상현은 9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 밸리 골프 앤 리조트에서 열린 KPGA 투어챔피언십 인 제주(총상금 11억 원)에서 우승 트로피를 안았습니다.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를 기록해 2위 이태희를 한 타 차로 제쳤습니다. 우승 상금은 2억2000만 원입니다.
황유민은 이날 경기 파주시 서원힐스골프장에서 끝난 KLPGA투어 대보 하우스디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11언더파 205타로 이동은 임희정과 동타를 이룬 뒤 4차 연장전 끝에 기어이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우승 상금은 2억5000만 원.
어떤 우승이든 하기만 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지만 특히 두 선수에게 이번 우승은 남다른 감회에 빠져들게 할 것 같습니다.

박상현은 40대에 접어들어 통산 3승을 거두는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올해에만 8월 동아 회원권그룹 오픈 이후 2승(KPGA 투어 통산 14승)을 올렸습니다. 박상현이 시즌 다승을 거둔 것은 2021년 이후 4년만입니다. 40대 선수가 한 시즌 2승을 기록한 것은 2005년 최광수와 김종덕 이후 20년 만의 일입니다. 20년 전 최광수와 김종덕도 대단했지만 요즘 KPGA 투어의 우승 경쟁이 과거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상위권 선수의 기량이 상향 평준화한 걸 참작하면 불혹도 훨씬 지난 박상현의 우승 행진에는 더 큰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슬럼프 조짐을 보인 박상현은 톱10에 2차례 진입했는데 그 두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습니다. 부진했지만 우승 기회가 찾아오면 꿩 잡는 매처럼 놓치지 않은 겁니다.
KPGA 투어 통산 상금 1위를 달리는 박상현은 이번 대회까지 약 58억9372만 원을 벌었습니다. 앞으로 60억 원 돌파까지는 약 1억 원이 조금 더 남았을 뿐입니다. 2023년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으로 역대 최초 국내 통산 상금 50억 원 고지에 오른 데 이어 40대에도 최상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박상현은 우승 후 "바람이 신의 한 수였다. 강한 바람 속에서 KPGA 투어 선수들보다 많이 쳐본 경험이 있다고 생각해 우승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공동 선두였던 마지막 홀에서 4.7m 슬라이스 경사의 퍼트를 집어넣으며 버디를 잡아 승리를 결정지었습니다. 17번 홀에서 보기를 해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로 바운스백 한 겁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승부사다운 소감이었습니다.
그는 또 "수요일에 아내가 연락이 와서 '똥 꿈을 꿨는데 담으면 담을수록 안 담기더라, 좋은 꿈 같은데 사지 않겠냐?'라고 해서 정말로 아내한테 천 원에 꿈을 샀다. 그러고 첫날부터 좋은 결과 나오며 이번 주 잘하면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웃었습니다.
"시니어투어로 가기 전까지는 뛰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언제까지 뛰는 것을 계획하기보단 지금 어린 선수들과 변별력을 가지고 우승 경쟁을 하면서 계속 투어를 뛰고 싶다."


황유민은 18번 홀에서 열린 4차 연장전에서 6.4m 버디 퍼트를 떨어뜨리며 최후의 승자가 됐습니다. 이 대회를 끝으로 황유민은 내년부터 그토록 고대하던 꿈의 리그 미국 LPGA 투어에 뛰어들 계획입니다. 국내 고별 무대를 잊지 못할 우승컵으로 장식한 겁니다.
황유민은 지난달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비회원으로 우승하며 미국 투어 카드를 따냈습니다. 올해 들어 국내 투어에서는 무관에 그치다 최종전에서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보그룹(회장 최등규) 서원밸리와 서원힐스 골프장을 이끌며 대회 기간 최상의 코스 컨디션을 유지한 정석천 대표는 "황유민 프로가 대회를 앞두고 연습라운드를 온 적 있다. 매주 대회가 있어 힘든 상황이었지만 한 대회를 포기해 가며 자신이 좋아하는 서원힐스의 양잔디 코스에 승부를 걸었다. 그런 간절함이 빚어낸 우승인 것 같다"라고 전했습니다.

아끼는 제자 박상현과 황유민을 바라보는 한연희 감독은 누구보다 흐뭇하기만 합니다. 한 감독은 "박상현은 시즌 내내 부진하다가도 많은 경험과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찬스가 오면 놓치지 않아 2승을 올렸다"라며 대견스러워했습니다. 황유민 등 제자들을 챙기려고 서원힐스를 찾은 한 감독은 또 "황유민이 올해 스윙하고 샷이 많이 안정되고 좋아졌는데 LPGA투어에 진출하려고 해외 메이저대회에 참가하느라 국내대회 성적이 상대적으로 안 좋았다. 시즌 막판에 LPGA와 KLPGA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자신감이 올랐을 것이다. 체력과 쇼트게임만 보완하면 미국에 가서도 좋은 성적 낼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한연희 감독은 최광수 신용진 등과 1988년 프로 입문 동기이지만 고질인 허리 부상으로 일찌감치 은퇴한 뒤 제주 오라CC 헤드 프로로 7년 동안 일하다 지도자로 변신했습니다. 선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도에 따라 스타 제조기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는 당시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강화 위원장(현재 협회 회장)과 힘을 합쳐 아시안게임 2개 대회 연속 금메달 4개 싹쓸이 신화를 이뤘습니다.

한 감독과 박상현의 인연은 2011년부터 시작됐습니다. 한 감독은 골프 스윙뿐 아니라 자기 관리, 식사 등 골프장 밖 생활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태국이나 제주에서 장기 전지훈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박상현은 평소 음료수나 캔을 딸 때 혹시 손이 베일까 봐 늘 휴지로 뚜껑을 감싸기도 합니다. 이러한 습관은 한 전 감독의 세심한 조언을 따른 것입니다.
황유민은 6년 전 한연희 감독이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경기 성남시 남서울골프장 연습장을 찾았습니다. 당시 나이 16세였습니다. 고교 1학년 황유민은 김효주를 닮고 싶다는 이유로 한 감독에게 지도를 요청했습니다. 김효주가 바로 한 감독의 대표적인 제자였습니다.
김효주를 롤 모델로 삼은 황유민은 한 감독의 지도와 함께 주니어 시절부터 촉망받은 기대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대한골프협회의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에 따라 기량을 키웠습니다. 한 감독은 "유민이가 하나부터 열까지 효주를 닮고 싶어 했다. 평소 늘 존경심을 드러내며 훈련 루틴, 연습 방법까지 따라 할 정도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은 "황유민 프로는 국가대표 시절부터 꾸준하고 일관된 기량을 펼쳤다. 한국여자오픈을 비롯한 주요 프로 출전 대회에서도 베스트 아마추어상을 놓친 적이 별로 없다. 승부처에서 집중력이 뛰어나 발전 가능성이 커 보인다"라고 평했습니다.
경기 후 황유민은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둔 것 같다"라며 "올 시즌 아프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연장전도 길어지고 힘들었지만, 팬들의 응원에 '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겼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돌격대장'이라는 별명을 지닌 황유민은 이날 우승 후 한층 성숙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동안 메이저대회에 나가보면 나는 무모한 골프를 했던 것 같다. 돌아갈 상황에서는 돌아가야 더 좋은 선수가 될 것 같다. LPGA에서는 샷이 안 좋았을 때 쇼트게임 리커버리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원래 샷을 똑바로 치는 스타일은 아닌데 샷도 똑바로 쳐야 할 것 같다"면서요.
그러면서 원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LPGA 투어에서 뛰고 싶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해서 세계 1등도 되고, 많은 우승을 하고 싶다. 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나가는 게 제일 큰 꿈이다. 올림픽 금메달도 따고 싶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전할 생각이다."

황유민은 내년 2월 LPGA 투어 시즌 개막전인 힐튼 그랜드 베케이션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를 통해 본격 데뷔전을 치를 계획입니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박상현과 황유민 모두 오늘 경기 결과에서 보듯 클러치 퍼트 능력이 뛰어나다. 마지막 날 찾아오는 압박감과 긴장 속에서 어떻게 우승하는 방법을 아는 선수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과 평소 훈련의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골프 유망주 발굴에 앞장서고 있는 이재혁 화순CC 부회장은 "박상현과 황유민 두 선수 모두 좋은 인성과 성격을 지녔다. 겸손함과 타인에게 배려할 줄 안다. 힘든 훈련 과정을 극복하는 인내력과 성실성 모두 최고 수준이다. 이 또한 어려서부터 지도해 주신 한연희 감독님의 제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황유민에 대해서는 "어리지만 배짱이 두둑하다. 1라운드가 시작되면 천진난만한 표정은 사라지고 날카롭고 매서운 눈빛으로 변한다. 승부욕이 강하고 노력파 가운데 노력파"라고 칭찬했습니다. 한때 자신을 박상현 매니저로 자청했던 이 부회장은 또 "박상현 프로 역시 공과 사가 뚜렷하며 매너와 쇼맨십이 강하다. 실력도 최고인 데다 선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선수"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박상현과 황유민은 공통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를 돕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박상현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거액을 기부했습니다. 황유민도 한 어린이 재활센터에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한연희 감독은 "선수들이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 뿐이다. 제자 둘이 같은 날 우승 소식을 전한 건 박상현과 김효주 이후 두 번째인 것 같다. 이런 큰 기쁨을 얻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감독은 평소 아끼는 제자들을 조카나 자식처럼 여기며 같이 식사도 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지도자로도 유명합니다.
박상현과 황유민. 스무 살 차이를 뛰어넘어 2025시즌 라스트 댄스의 남녀 주연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사제관계를 초월해 가족 같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은사가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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