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지휘부도 검사도 비겁했다”

김나영 기자 2025. 11. 10. 00: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검찰 안팎서 거센 비판 목소리

검찰 지휘부가 ‘대장동 일당’의 사건을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검찰 내부에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검사들 사이에선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을 겨냥해 “외압에 굴복한 것이냐. 스스로 엎드린 것이냐” “사표를 내더라도 항소를 제기하고 나서 냈어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공판을 담당한 검사들을 향해서도 “직을 걸고 항소를 관철한 검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영진(검사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이번 항소 포기가 알려지자 검찰 지휘부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사퇴를 촉구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노 대행과 정 지검장, 이진수 법무부 차관 등에게 “법치주의 정신을 허물고 정권에 부역해 오욕의 역사를 만든 책임을 지고 당장 사퇴하라. 더 이상 당신을 검찰 선배, 일선 검사들에 대한 지휘권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박 위원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부터 전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가 정권이 바뀐 뒤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됐다. 정유미(검사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이날 노 대행에게 “원칙도, 조직도, 후배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그저 정권에서 시키는 대로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문 닫고 나가는 게 목표이시냐”며 “이 사태에 책임을 지시기 바란다”고 문자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장동 수사를 맡은 김영석 대검 감찰1과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대검 차장(노 대행)께서 그토록 심도 있게 종합적으로 고려하신 기준이 무엇인지, 중앙 검사장께서는 수사·공판팀이 작성한 항소 취지 문서에 결재까지 하셔 놓고 번복하신 이유가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느냐”라고 적었다.

한 현직 검사장은 “검찰청을 폐지한다고 했을 때보다 더 절망적으로 느껴졌다”며 “고칠 건 고치자는 생각으로 현 정부가 내건 ‘검찰 개혁’은 버틸 수 있었는데, 이번 사안은 지휘부가 알아서 엎드린 격이니 견디기가 힘들다”고 했다.

“항소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했다”며 사의를 표명한 정 지검장에게도 비판이 쏟아졌다. 안미현 중앙지검 검사는 페이스북에 “검사는 단독 관청이라 엄밀히 말하면 결재는 내부 절차에 불과하다. 결재 없이 법원에 접수시킨다고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게 아니다”라며 대검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정 지검장이 전결로 항소를 승인할 수 있는데도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 사건 수사·공판 검사들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있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항소 기한을 넘기고 나서 반발할 게 아니라, 본인들의 직을 걸고서라도 항소해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결기 있는 검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더 안타깝다. 징계를 감수하고라도 항소장을 접수하는 검사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과거에도 정치적 사건 등에서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 견해가 충돌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격론 끝에 수사팀 의견이 관철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2020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이다. 당시 수사팀은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을 기소해야 한다고 세 차례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결재를 보류하며 사실상 기소를 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지휘부와 중앙지검 수사팀을 불러 회의한 뒤 기소를 결정했고, 사건 관련자 1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한국e스포츠협회가 롯데홈쇼핑 등에서 수억 원을 지원받는 과정에 전병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측근이 개입한 의혹 사건 수사 때는 대검 지휘부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구윤철 당시 기획재정부 실장(현 경제부총리) 소환 조사를 놓고 충돌했다. 대검이 소환 통보를 취소하라고 지시했으나 수사팀 검사들이 “직을 걸겠다”며 버텼다. 당시 검찰은 구 실장에게 “전 수석의 전화를 받고 압력을 느껴 예산을 증액했다”는 진술을 받아냈고, 전 전 수석을 기소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