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트럼프와 젠슨 황, 누가 세계 질서를 바꾸나

석민수 2025. 11. 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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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전용기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군악대가 트럼프가 좋아하는 노래, YMCA를 연주합니다.

두 번째 재임 기간 중 첫 방한,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협상의 향배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국과의 합의도 머지않아 곧 최종 타결될 것입니다. 이 합의는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승리가 될 것입니다. 만성적인 문제와 불균형에 시달리지 않는 안정적인 파트너십 속에서 모두가 더 나은 이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양국은 상호관세 15%에 합의했지만,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3,500억 달러의 시기와 방식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자회담에서 이례적인 국빈 초청, 순금 700g이 들어간 무궁화대훈장, 천마총 금관 복제품까지.

87분간의 회담 끝에 관세협상은 전격 타결됐습니다.

우리 측 요구가 반영돼 매년 투자 상한선을 두고,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곳에만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곧바로 합의문이 나오지 않았고, 조건을 잘 지키느냐가 관건으로 남았지만,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히 큰 '샅바싸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쪽은 아마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이제 상업적인 투자가 잘 안 일어날 수 있는 부분에 이런 공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 할 거고 우리 입장에선 리스크가 크면 아 그건 어렵다 이런 이제 그 부분이 계속 줄다리기가 계속될 텐데...


그래도 APEC 정상회의 주간 외교 슈퍼위크의 첫 단추를 무사히 끼운 순간이었습니다.


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21개 경제권의 정상이 모여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

국내외 관심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쏠렸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모든 교역국에 수십% 관세를 물리며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는 미국.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훨씬 더 강력해져서 돌아온 트럼프 정부입니다. 무역 적자를 가져오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사실은 이 트럼프 무역전쟁 무역 분쟁의 대상이고 타깃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어느 국가도 피할 수 없고 쉽지 않은 그런 상황입니다.

보호무역주의 등 세계 통상 질서의 급박한 변화에 연이은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무거웠습니다.

특히, 미국의 50%가 넘는 관세부과에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선 중국,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됐습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
미중이라든가 이런 지정학적 갈등이라든가 이런 게 커지니까 이 안에서도 회의가 과거에는 굉장히 스무스하게 됐었는데 요즘에는 상당히 격렬하게 논쟁도 하고 또 이견도 표출하기도 하고 하는 그런 장소라서

정상회의 개막 일주일 전까지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 자체를 장담할 수 없던 상황.


이례적인 동시 국빈 초청 끝에 두 정상은 마주 앉았습니다.

악수만 20여 초,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회담장을 채웠습니다.

결과는 1년 휴전. 중국은 희토류 통제를 유예했고, 미국도 중국산 펜타닐이 유입된다며 수입품 전반에 물린 관세를 10%포인트 낮췄습니다.


APEC은 1994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롭고 개방된 무역·투자라는 보고르 목표를 채택한 이래,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무대로 기능했습니다.

카를로스 쿠리야마 APEC 정책지원국장
1989년 APEC 역내 평균 관세는 16.9%였습니다. 요즘(2023년) 역내 평균 관세는 5.1%입니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진전을 이뤘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특히 자발적 참여로 다양한 정책을 실험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며,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등 초대형 자유무역협정 논의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뉴스9 (2005년 11월 18일)
경찰들이 정상회의장 진입방지용 컨테이너박스와 함께 땅으로 떨어집니다. 순식간에 경찰은 APEC
반대 시위대에 포위됩니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정상회의가 열리는 시각 500여m 밖에선 격렬한 반 세계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선도하던 미국이 외려 반세계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자유무역의 결과 본인들의 제조업이 붕괴하고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그 사라지고 여기에 대한 미국 중산층의 좌절 그걸 통해서 또 이 사회적 불평등도 심화하고요. 이 좌절이 사회 저변에 확산이 되고 있었고 어 그러한 사회 저변에 인식을 바탕으로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전략.

이런 정책 흐름은 트럼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던 바이든 행정부도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의 미국 내 생산을 사실상 강제했습니다.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실 바이든도 들어와서 WTO의 분쟁 해결 기구를 정상화하지 않았습니다. 임기 내내. 그런 것들은 뭐냐면 결국은 WTO 중심의 교역 체제를 다시 리빌드 하지 않을 거라는 거를 사실은 행동을 통해서 보인 거고요.

자유무역으로 생산 설비가 해외로 넘어갔고 그 결과 자국 산업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우리나라처럼 시장이 작고 제조업 수출 비중이 큰 경제에는 치명적일 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마티아스 코먼 OECD 사무총장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에 더 깊이 통합돼 있고, 중간재 교역 의존도가 높아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겁니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한쪽이 시장을 막으면은 그 시장에 못 들어가는 이 수출품들이 다른 시장으로 쏠리면서 그 시장이 또 다른 장벽을 세우고 또 다른 장벽을 세우고 확산되는 도미노 효과 같은 게 나타납니다.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1일, 정상들은 ‘경주 선언’을 통해 글로벌 무역 체제가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며 자유 무역을 지지한 2020년 푸트라자야 비전을 계승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문구는 격론 끝에 장관급 선언에만 담겼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통상 질서를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자유무역과 다자 무역이 우리 경제의 성장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토대가 되었는데 이제 옛날에 그 시절로 완벽하게 그대로의 형태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시대가 정말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제 세계화. 또 다른 현실을 반영했지만, 세계화의 모습을 띤 그런 형태로 질서를 재편해 나갈 수 있게...

이번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만큼이나 큰 화두는 바로 인공지능, AI였습니다.

시가총액 7,000조 원의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을 이끄는 그가 15년 만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첫 일정은 서울의 한 치킨집, 트레이드마크인 가죽 재킷을 입고 이재용 정의선 회장을 만나 치킨과 맥주를 즐겼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난 치킨과 맥주를 정말 좋아해요. 친구들과 ‘치맥’은 더 좋아요!

다음날 경주에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프로세서인 블랙웰 칩을 26만 개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에 과학·기술과 제조 부문에서도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와 AI 기술, 그리고 제조를 결합하면 로보틱스(로봇공학)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열립니다. 이것이 바로 차세대 ‘피지컬 AI’입니다.

질문에 능동적으로 답하고, 글이나 그림을 직접 창작하는 지금 AI의 수준을 넘어 피지컬 AI,


산업현장에 AI를 직접 활용하려는 비전, 젠슨 황은 이를 구현할 파트너로 한국 기업을 꼽은 겁니다.

삼성전자와 SK그룹, 현대차그룹에 각각 5만 개씩, 네이버클라우드는 6만 개를 공급받고, 우리 정부도 5만 개를 확보해 국가 AI 컴퓨팅센터에서 쓸 계획입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
비공개 미팅에서 젠슨 황 대표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미국에 2천만 장 정도가 있다 라고 얘기를 했고요. 미국이 가장 많죠. 중국이 있고 전 세계 3등이다 라고 합니다. 물론 거의 비슷하죠. 미국 중국 저만큼 앞서 있고 그다음에 3등 싸움을 막 하고 있다고..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금 AI가 어떻게 보면 통상 문제가 한국 경제를 바꾸는 것 그 이상으로 아마 앞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AI가 저희 산업과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기 시작을 할 텐데.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 나갈 굉장히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필요한 겁니다. 근데 이제 그런 부분에 있어서 한국은 굉장한 포텐셜을 갖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AI 발전과 혁신에 따라 그 혜택을 포용적으로 나누자는 ‘AI 이니셔티브’가 APEC 최초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카를로스 쿠리야마 APEC 정책지원국장
많은 사람들이 AI의 파괴적인 능력에 대해 우려하지만, 우리는 AI가 기회라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효율성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APEC이 열리는 동안 우리 기업들의 활약도 눈부셨습니다.

AI는 물론 자동차, 조선, 방위산업, 에너지 등 각 분야의 첨단 기술이 선을 보였습니다.

뉴스9 (10월 30일)
한국의 피부관리 제품 발견이란 소개 문구까지.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개인 SNS 게시글입니다.


황리단길 화장품 가게를 찾은 미국 백악관 대변인.

경주의 유명 과자가 맛있다고 극찬한 시진핑 주석.

환영 만찬 공연을 렌즈에 담는 정상들까지.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K푸드, K뷰티, K컬쳐는 우리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제인 스몰 / 뉴질랜드 ThreeNews 기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팥이 들어간 케이크(황남빵)예요. 처음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한국 프라이드치킨도 좀 달라요. 맵고 특이한 소스가 있고 맛있어요.

정상회의 기간 박물관 등 일부 관광지는 문을 닫았고, 곳곳에서 교통 통제도 잦았지만, 그럼에도 모두 저마다의 경주를 즐겼습니다.

비야르 에탄 / 프랑스 관광객
교통이요?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정말 아름다운 도시예요!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 외환위기에도 무너지지 않았음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2025년, 20년간 GDP는 2배로 늘었고, 당시의 한국 대표 기업은 이제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습니다.

우리의 소설, 노래, 드라마, 영화는 이제 세계 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 감소, 지방 도시의 붕괴, 격화되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여기에 대외적으로는 주력 산업에서 중국의 매서운 추격, 흔들리는 글로벌 통상 질서 등 우리가 처한 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20여 년 뒤, APEC 정상회의가 이 땅에서 또다시 열릴 때 어떤 대한민국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지금 우리의 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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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기자:석민수
촬영:강우용, 조선기
촬영기자:김민준, 이정태
편집:이기승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조연출:이민철, 엄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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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수 기자 (m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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