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⑨ 장화, 홍련-전설이 된 아름다운 ‘공포 영화’

KBS 2025. 11. 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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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공포 영화', 진화하다

한국 영화사를 장르의 관점에서 돌아볼 때, 공포 영화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공포 영화가 주류 장르인 적은 없었으나, 때로는 흥행적으로 크게 성공해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기도 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여고괴담'의 대중적인 성공은 이후 시리즈물로 계속 제작됐고, 2024년에는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2000년대 이전의 공포 영화는 귀신이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화 ‘장화, 홍련’ (사진 :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 공포 영화의 변곡점, '장화, 홍련'

이후 2000년대 한국 영화가 산업적으로 크게 확장되고 더욱 다채롭게 변화함에 따라 공포 영화도 다양해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2003)이다.

한국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제목에서 바로 작가와 연도 미상의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을 떠올리게 된다.

대중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소설은 이미 여러 차례 동명의 공포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따라서 영화 '장화, 홍련'도 계모의 모략으로 한을 품고 죽은 자매, 장화와 홍련이 귀신으로 출몰하는 영화라고 예상하게 된다.

김지운은 이러한 대중의 선입견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깨는 아이디어를 통해 참신한 공포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 ‘장화, 홍련’ (사진 :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 아름다운 공포, '장르의 변주곡'

영화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수미(임수정 분)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의사의 말에 따라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미와 수연(문근영 분) 자매가 숲속의 외딴집에 도착하고, 아버지 무현(김갑수 분)과 새엄마 은주(염정아 분)가 자매를 맞이한다.

수미와 수연 자매는 장화와 홍련처럼, 그리고 은주는 사악한 계모처럼 보이는 가운데 시종일관 무시무시한 사건이 도래할 것 같은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한 시간 이상의 상영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공포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은주의 남동생 부부가 집에 방문했을 때,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남동생의 아내가 싱크대 아래서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봤다고 하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이전의 한국 공포 영화에서는 언제나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게 흥행의 비결이었다.

영화 ‘장화, 홍련’ (사진 :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 공포를 재창조한 '장화, 홍련'

반면, 영화 '장화, 홍련'은 귀신의 출몰을 소재로 한 원작에서 영감을 얻었으면서도 귀신의 등장 없이 뭔가 있는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만으로 관객을 공포와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예를 들면, 은주가 붉은 피를 흠뻑 머금은 묵직한 포대 자루를 질질 끄는 장면만으로도 소름이 확 끼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배우만큼 중요한 요소는 세트로 만든 가족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 장면에서 등장하는 공간인 집은 어두운 목조 바닥에 높은 천장과 폭이 좁고 길게 뻗은 복도를 통해 공포와 긴장을 연기하는 ‘제3의 배우’로 기능한다.

집 자체가 으스스한 생물체의 느낌을 자아내면서 금방이라도 도처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공포감이 극대화된다. 여기에 음향 효과가 적절하게 가미되어 긴장감을 더욱 강화한다.

영화 ‘장화, 홍련’ (사진 :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 '장화, 홍련', 전설이 되다

결국 모든 것이 수미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관객은 귀신을 본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수연은 수미의 환상이며, 은주는 새엄마를 모델로 해서 수미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수미가 이렇게 심각한 정신병에 걸린 원인은 남편의 외도로 인한 친엄마의 자살과 동생의 사고사 때문이다.

문제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만일 수미가 수연에게 좀 더 관심을 쏟았다면, 어쩌면 동생의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미는 수연의 죽음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은주에 대한 극심한 분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따라서 수미에게 동생은 살아있어야 하고, 은주는 자매를 끊임없이 괴롭혀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너무나 악독한 새엄마여야 한다.

이렇게 영화 '장화, 홍련'은 이전의 한국 공포 영화와는 다른 공포 영화의 새 장을 열었고,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오컬트 영화 '검은 사제들'(2005), '곡성'(2018), '파묘', 괴수 영화 '괴물'(2006), 좀비 영화 '부산행'(2016) 등 이후 다채로운 한국 공포 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 영화 '장화, 홍련' 이야기

영화 ‘장화, 홍련’ (사진 :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하나,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수미의 미는 장미꽃의 '미(薇)', 즉 장화(薔花)를 뜻하고 수연의 연은 연꽃의 '연(蓮)', 즉 홍련(紅蓮)을 뜻하도록 지었다고 한다.

둘,
집 세트의 구성을 결정한 아이디어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1970년대에 보수한 서구풍 목조 가옥’이었다.

셋,
칸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됨으로써, 한국 공포 영화를 해외에 널리 알린 영화로 평가된다.
영화 '장화, 홍련' (사진 :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글 : 영화평론가 김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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