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포항의 심장, 중앙상가... “시내 우체국 앞에서 보자”는 약속은 옛말이 되나

"시내 우체국 앞에서 보자." 포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주고받았던 약속이다. '국민은행 앞', '롯데리아'그 한마디면 친구를 만나고, 사랑이 시작되며, 밤늦게까지 웃음소리가 흘렀던 시절이 있었다. 중앙상가는 단순한 상권이 아니라 포항의 중심이었다. 말 그대로 도시의 심장이었다.
한때 포항의 심장이었던 중앙상가의 맥박이 멈췄다. 하지만 지금은 그 중심이 고요하다. 불이 켜진 점포보다 '임대 문의' 현수막이 더 많고, 오후 7시만 되어도 대부분의 셔터가 내려간다. 중앙동 골목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이제는 장사보다 버티기가 더 어렵다"며 "예전엔 밤 9시, 10시까지도 손님이 있었는데 지금은 7시만 되면 불이 다 꺼진다"고 텅 빈 거리를 바라봤다.

▲공실률 37%... 도심 기능 멈추는 경고등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2025년 3분기)'에 따르면, 포항 중앙상가의 공실률은 소규모 상가 18.8%, 중대형 상가 33.7%, 집합상가 37.0%에 달했다. 공실률은 해당 지역의 임대 가능 면적 중 임대계약이 체결되지 않았거나 자가·분양 등의 방법으로도 이용되지 않는 비율을 뜻한다. 상가 규모가 커질수록 비어 있는 점포가 늘어 많게는 10곳 중 4곳이 공실 상태다. 이 수치는 중앙상가가 경기 침체를 넘어 도심 기능이 점차 정지되어 감을 보여준다.

빈 점포를 대신해 포토부스·인형뽑기 매장·가챠숍 등 무인점포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는 상권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임대료 부담이 낮아 공실을 메우는 즉각적인 대안처럼 보이지만 머물 시간과 경험을 제공하지 못해 유동인구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주력 소비층이 중앙상가를 찾지 않는 상황에서 콘텐츠 없이 늘어난 무인점포는 '수요 없는 공급'으로 남았고 되려 거리가 더 황량해 보이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점포 수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상권 재생이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년들의 불빛, 행정의 공유캠퍼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항시는 원도심 재생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POBATT 도심 공유캠퍼스 조성 예정 △빈 건축물 활용 청년 창업 거점 조성사업 △'희망임차인 모집' 빈집·빈건축물 무상임차 사업 △포항 영일만 야시장 운영 등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시책을 이어가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현재는 공유캠퍼스를 주력으로 준비 중이며, 1~2년 안에 팝업스토어와 청년창업 공간도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세부 사업과 참여 대학은 다음 달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행정의 정책과 더불어 도심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 청년들이 손길을 내밀었다. 한동대 건축학부 학생들은 학교 슬로건 'Why Not Change the World?'를 가장 가까운 지역에 적용해 침체된 중앙상가와 육거리 일대의 임대 점포를 빌려 전시 공간으로 꾸미고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불러모았다.

전시를 진행한 학생은 "세상을 바꾸자는 말처럼, 우리가 사는 공간부터 바꿔보고 싶었다"며 "직접 공간을 꾸미면서 도심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주민분들이 '학생들이 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해 주셔서 오히려 힘이 났다"며 "작은 변화라도 지역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어 뿌듯했다"고 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동대의 졸업 전시를 지역으로 확장한 도시문화 실험이자, 포항시의 원도심 활성화 정책과 방향을 같이한다. 시가 행정적 기반을 닦았다면 학생들은 그 위에 온기를 더했다. 교수와 학생, 상인과 시민이 함께 참여한 이번 전시는 중앙상가를 다시 '사람이 머무는 거리'로 되살리려는 상생의 시도였다.

▲구조적 문제 해결이 관건
하지만 청년들의 실험만으로는 상권 회복이 쉽지 않다. 학생들과 시민이 지적했듯 중앙상가의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적이다. 높은 공실률은 물론 주차난, 노후 건물, 차량 중심 동선 등이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젊은 세대가 머물 만한 콘텐츠와 거리 환경이 부족한 점도 상권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영일만 야시장에 대해 "중앙상가 상인들도 유동인구 증가에는 긍정적으로 본다"면서 "다만 실제 매출로 이어지도록 시에서도 더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쇠락한 중앙상가에 불을 밝힌 건 학생들이었지만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건 결국 도시 전체의 몫이다. 모두가 함께 도심의 맥박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포항의 심장은 다시 어둠 속으로 식어갈지도 모른다. 도시는 결국 사람이 살아야 산다.
언젠가 "시내우체국 앞에서 보자"는 말이 다시 포항 도심의 일상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는 일이 지금 포항의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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