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존재들, 점으로 새겨"…박자현 개인전 '눈길'

박찬 기자 2025. 11. 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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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까지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어미니' 초상 시리즈 등 신작 6점
"소외층 삶, 신성한 증언으로 포착"
박자현 개인전 'Sacred Poetry : The Unseen' 전경.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제공

부산을 기반으로 20여년간 도시 개발과 철거, 그로 인해 밀려나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온 박자현 작가가 광주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는 박자현 개인전 'Sacred Poetry : The Unseen'을 오는 30일까지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의 올해 마지막 기획전으로 작가의 어머니 초상 시리즈를 포함한 신작 6점을 선보인다.

박자현의 회화는 점묘를 기반으로 한다. 수천, 수만 개의 점이 모여 형성하는 인물의 피부, 주름, 시선, 호흡의 미세한 떨림까지 포착한다. 그 밀도 높은 화면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섬세하다. 그는 점 하나하나를 찍어가며 존재의 증언을 쌓아 올린다. 그 결과 탄생하는 인물들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버티고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과 고통을 품은 얼굴들이다.

"어머니의 초상을 그리는 동안 비로소 내 작업의 주제가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박 작가의 시선은 최근 들어 '어머니'로 향했다. 그의 모친은 오랜 시간 육체노동을 이어온 여성으로 현재 해리기억장애를 앓고 있다. 작가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고통'과 '기억'의 문제를 조우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월세방에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삶은, 작가에게 있어 존재의 근원이며 동시에 상처의 원형이다.
박자현 개인전 'Sacred Poetry : The Unseen' 전경. 포도나무아트스페이스 제공

전시 제목 'Sacred Poetry : The Unseen'은 차학경의 '딕테'중 '폴림니아, 성시'에서 영감받았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세상의 가장 낮은 곳, '보이지 않는 이들(Unseen)'의 삶을 신성한 증언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그의 점묘화는 단순한 기법을 넘어선 수행적 행위다. 점을 찍는 노동은 바로 그들이 견뎌온 수고와 인내의 은유이자 사회로부터 배제된 이들의 삶을 되살리는 의식(儀式)에 가깝다.

박자현의 초기작은 좁고 밀폐된 공간, 일상의 불안과 고립을 담은 인물들로 채워졌다. '달방', '일상인' 등의 작품은 20대 작가가 느꼈던 도시 속 청춘의 무력감을 표현한 대표작이다. 이후 그의 시선은 점차 성매매 집결지, 쪽방촌 등 사회적 소외의 현장으로 확장됐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방, 합판으로 덧댄 벽, 문 앞의 옷가지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젠더·빈곤·도시 개발이 교차하는 비가시화된 현실을 회화적으로 기록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어머니의 초상과 더불어 그동안 외면되어 온 존재들의 흔적을 통해 '신성한 시'(Sacred Poetry)로서의 회화를 제시한다. 화면 속 인물과 공간은 어둡고 남루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미세한 숨결과 빛이 남아 있다.

그 빛은 작가가 바라보는 구원의 가능성이자, 고통을 견뎌낸 이들을 향한 헌사다.

박 작가는 그간 8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2023년 부산현대미술관 '자연에 대한 공상적 시나리오', 2021년 서울 공공미술 프로젝트 '100개의 아이디어', 2018년 서울대학교미술관 '여성의 일', 2017년 부산시립미술관 '욕망의 메트로폴리스' 등 다수의 기획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