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월남 최후 지켜본 한국 장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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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6·25 기습 남침을 저지른 김일성(1912∼1994)이 북한 정권 초창기에 타고 다닌 관용 차량이 전시돼 있다.
6일 전쟁기념관 중앙홀에서 '이달(11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이대용 장군을 기리기 위한 현양 행사가 열렸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이 장군을 향해 "6·25 전쟁은 물론 베트남 전쟁에서도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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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6·25 기습 남침을 저지른 김일성(1912∼1994)이 북한 정권 초창기에 타고 다닌 관용 차량이 전시돼 있다. 소련(현 러시아)에서 만든 ZIS-110 리무진인데, 1940년대 말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준 선물이라고 한다. 전쟁 첫해인 1950년 10월 북진하던 육군 제6사단 수색대가 평안북도 영변군 청천강변에서 노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푸른 별’을 뜻하는 청성(靑星)부대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6사단이 6·25 전쟁에서 세운 공적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국군 가운데 처음 압록강에 도달해 그 물을 수통에 담은 뒤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부대 또한 6사단이다. 모두 육사 7기생으로 전쟁 당시 6사단 예하 중대장이던 이대용(1925∼2017) 대위의 전공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4월 30일 월남 수도 사이공이 월맹군 수중에 떨어진 순간 이대용 장군은 다른 외교관 2명과 함께 마지막까지 대사관을 지켰다. 우리 교민들이 모두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월맹 당국에 의해 불법으로 억류된 이 장군은 온갖 고초를 겪었다. 공산 베트남의 우방인 북한은 황해도 금천이 고향인 그의 북송 실현에 총력을 기울였다. 남한을 중상모략하고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데 이용하려는 속셈이 뻔했다. 북측의 공작이 어찌나 집요했던지 이 장군은 “북한으로 강제 납치되어 끌려갈 때에는 자결하겠다”며 어린 자녀들의 대학 졸업시까지 드는 학비 지급을 대한민국 정부에 부탁하는 유서를 남겼다. 온 국민의 염원 속에 이 장군 일행 석방을 놓고 치열한 외교 협상이 벌어졌다. 결국 그는 베트남 억류 5년 만인 1980년 4월 풀려나 고국 땅을 밟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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