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라트비아인이 본 조선의 모습은?
주한 라트비아 대사관이 번역한 도서 속 조선 후기 사회

“한국인은 음악과 춤, 놀이를 참 좋아한다” “모르는 사람에게나 아는 사람에게나 모두 친절하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남편이 울기라도 했다가는 두고두고 조롱받을 만큼 한국 여성들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1899년 한 라트비아인이 기록한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이다. 당시 러시아 장교 신분으로 조선에 와 있던 라트비아인 알렉산드르스 빈테르스(1866–1918?)는 직접 보고 들은 조선의 면면을 기록해 ‘한국의 생활상과 한국인에 관한 단상’이라는 에세이를 펴냈다. 주한 라트비아 대사관은 해당 에세이를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이 책을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무계원에서 공개했다.
에세이는 지난 2021~2024년 부임했던 아리스 비간트스 전 주한 라트비아 대사가 친구에게서 건네받아 빛을 봤다. 집에 있던 장서에서 옛 라트비아어로 적힌 이 책을 발견한 친구는 “한국에 대해 더 연구해보라”며 대사에게 건넸다. 30페이지 정도로 짧지만 옛 라트비아어를 현대 라트비아어와 영어로 먼저 번역한 뒤 다시 한국어로 옮기고, 내용을 사료와 비교하며 각주를 다는 작업이 동반돼 출판까지 약 2년이 걸렸다.

“러시아와 영국, 일본, 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지역인 만큼, 이 낯선 나라에서 들려올 불편한 소식에 머지않아 세계가 놀라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글의 서두부터 빈테르스가 국제 정세의 돌풍에 흔들리기 시작한 한반도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내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해 전 발발한 청일전쟁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은 청일전쟁의 구실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예견되는 일련의 사건들에서도 구심점이 될 것 같다”라고도 썼다. 저자는 아관파천 직후 이 글을 썼는데, 러시아군이었던 만큼 조선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한 점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주목했다.
본문에서는 조선의 왕실과 지방 정치, 가정의 일상 모습을 세심하게 들여다봤다. ‘왕과 조정’ 장에서는 왕의 하루 일과, 궁중 의례 준비 과정 등 관련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지방 관리들의 만연한 횡령 행위도 주목한다. 빈테르스는 굉장히 짧은 2년의 임기 후 곧장 직위를 얻지 못한 지방 관리는 녹봉을 받지 못한 채 예비 인력으로 2~3년을 지내야 한다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관리들은 쉬는 동안 먹을거리를 마련해 두려고 공직을 수행하는 기간에 하나같이 최대한 많은 이익을 챙기려 든다”고 썼다.
조선군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빈테르스는 “한국의 무신은 그다지 존경받는 계층이 아니다”라면서 “청일전쟁으로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전쟁에 120만 대군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한국군은 쓸모가 없다”며 당시 조선 군대를 매우 낮게 평가했다. 앞서 1881년 발간된 ‘발트일보’에는 임오군란 전 한국 구식 군인들의 불만에 대한 내용이 보도됐던 만큼 조선군 현실은 7000여㎞ 떨어진 서방에서도 관심거리였다고 한다.
조선의 여성 인권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도 짚었다. 빈테르스는 “혼자 사는 여성은 힘으로든 꾀어서든 누구나 겁탈할 수 있다. 법으로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얼마나 존중을 받지 못하는지 자기 이름조차 갖지 못한다”는 등 당시 여성과 관련한 대중 인식, 풍습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음주가 훌륭한 취미로 여겨지지 않는데도 술꾼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부잣집에 가면 한 손님당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내는 게 관례다”라는 등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한 사소한 사실들이 기록됐다. 빈테르스는 조선 외에도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거쳐간 여러 도시와 직접 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책과 기고문을 남겼고 훗날 라트비아 민족운동가 겸 언론인이 된다. 그가 바라본 한국의 도시는 ‘우수르(Ussur)’라고 알려졌는데, 이 도시가 조선의 어떤 곳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야니스 베르진스 주한 라트비아 대사는 “이 책은 한국과 라트비아 간 첫 외교 기록물이나 다름없다”라면서 “세계화 이전 시대에 라트비아와 한국 문화를 잇는 첫 다리를 놓은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책은 상업적 용도로 판매 되지는 않고, 전국 도서관에 무료로 기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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