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 변호사,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에세이집 출간
박태해 2025. 11. 9. 06:03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의심하는 기술이 아니라 현명하게 믿는 기술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인 저자가 변호사 사무실, 경찰서, 구치소, 법정을 오가며 기록한 우리 인간관계에 관한 ‘신뢰’를 다루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기 범죄가 24만건에서 42만건으로 80% 증가했다. 사기가 절도를 넘어 1등 범죄가 된 시대,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당연해졌다.

저자는 법조인과 작가, 두 세계를 오가는 독특한 이력의 인물이다. 2014년 ‘보헤미안 랩소디’로 제10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이력을 지닌 저자는 특유의 글맛을 선보이면서도 쉽고 명료한 해설과 재치 있는 화법으로 인간과 사회를 향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법정은 불신의 제도화된 공간이다. 모든 진술은 검증의 대상이고, 모든 관계는 의심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그 세계에서 오랜 시간 일하며 “진실이란 결국 불완전한 신뢰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법이란 불신을 전제로 만들어진 시스템이지만, 역설적으로 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하다. “서로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제도를 믿을 수는 있다.” 그의 말은 개인의 신뢰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문제로 확장된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시선은 법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 일반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그는 묻는다. “착한 사람은 믿을 만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호하다. “아니다.” 인간의 선의는 언제든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재민은 ‘착함’과 ‘신뢰성’을 구분한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라도 이해관계 앞에서는 배신할 수 있고, 반대로 완벽히 선하지 않아도 신뢰를 지킬 수 있다. 결국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도덕적 이상형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현실적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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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정재민/페이지2북스/1만9800원 |
저자는 거듭 역설을 제시한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고립된다.” 신뢰가 상처를 낳는다고 해서 불신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더 큰 상처를 부른다는 것이다. 세상을 완벽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믿어야 한다. 신뢰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감싸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체는 간결하지만 사유의 깊이는 밀도 있다. 법정의 사례, 인간관계의 단면, 철학적 질문이 균형 있게 교차한다. 논리적 분석 속에서도 인간적 따뜻함을 잃지 않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는 “믿음이란 타인을 향한 선의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시험”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의심은 우리를 지켜 주지만, 믿음만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역설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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