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뉴스] 광주극장 온 봉준호 감독 "영감은 충장로에서도 떠올라"
'옥자' 이후 8년만 광주극장 찾아
영화 '바톤핑크' 함께 감상하며
데뷔작 준비 시절 소회하기도

"저는 감독이기 이전에 '작가'라고 생각해요. 연출자로 보내는 시간보다 작가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 직업을 기입해야 할 때면 감독 대신 '작가'라고 쓰곤 합니다."
8일 광주극장을 찾은 봉준호 감독은 모든 작품을 직접 집필하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광주극장은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특히 선착순 좌석 배정 방식으로 인해 입장 시간 전부터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900여 석의 좌석은 행사 일주일 전부터 오프라인 예매와 현장 예매를 포함해 이미 전석 매진된 상태였다. 봉 감독은 광주극장 1층 객석에 앉아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이날 광주극장을 찾은 시민 이하은(24·여) 씨는 "앞자리에서 봉준호 감독을 보기 위해 낮 12시부터 줄을 섰다"며 "봉 감독의 작품 대부분을 감상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시네토크에서 봉 감독은 "8년 전 '옥자' 개봉 당시 광주극장을 방문했는데,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게 놀랍다"며 "그때 상영회가 끝난 뒤 광주에서 황실이튀김을 먹었는데 처음 먹고 너무 맛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이후 서울 곳곳을 뒤졌지만 황실이튀김을 찾을 수 없었다. 오늘 행사 후 다시 먹을 생각에 너무 설렌다"며 웃었다.

봉 감독은 데뷔작을 준비하던 시절의 경험이 '바톤 핑크'의 주인공과 매우 닮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25년 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집필하던 시절 제작사에서 마련해준 속초의 허름한 오피스텔에서 작업을 했다. 아는 사람도 한 명 없었고 가족도 두고 혼자 짐을 싸 떠나야 했다"며 "두 달 동안 그곳에서 지냈지만 원고를 단 한 장도 쓰지 못했다. 고립된 공간에서 작업에 집중하려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사에 한 달만 더 달라고 부탁해 동네 카페에서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습관이 생겨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감독이나 작가마다 집필 방식이 다르지만 나는 하루에 두세 곳의 조용한 카페를 옮겨 다니며 시나리오를 쓴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자신이 감독이기 이전에 '작가'라고 여기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120여 쪽 분량의 시나리오를 혼자 써 내려가는 일은 정말 고독하고 막막하다"며 "그동안 만든 모든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그중 '기생충'은 5개월로 가장 짧았고, '살인의 추억'은 13개월이 걸려 가장 오래 걸렸다. 현재 작업 중인 애니메이션도 직접 집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봉 감독은 관객과의 질의응답에서 영감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대해 "모든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 충장로와 금남로를 거닐다가도 번뜩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항상 오감을 곤두세우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개관 90주년 광주극장 영화제'는 오는 16일까지 광주극장에서 열린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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