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 ‘깐부’ 젠슨황, 그에게 다가온 3번의 기회[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5. 11. 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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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128][프로토타입-13]엔비디아와 젠슨황

[프로토타입]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들은 프로토타입을 거쳐 완성됩니다. 시제품 또는 초기모델을 뜻하는 ‘프로토타입’ 시리즈는 모든 것의 탄생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치맥 깐부가 된 세 남자
지난주 대한민국을 휩쓴 화제의 뉴스는 다름 아닌 ‘억’소리, 아니 ‘조’ 소리 나는 세 남자의 치맥파티였다. 그 주인공은 이재용 삼성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그리고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이었다. 다합쳐 220조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이들은 서울 강남의 한 치킨가게에서 ‘깐부’를 맺고 치킨에 맥주를 곁들였다. 정확히는 소주와 맥주를 탄 소맥이었다.

올해 대한민국의 가장 큰 글로벌 정치 이벤트였던 APEC 정상회의에 맞춰 전세계서 1700명이 넘는 기업인과 경제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은 가운데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의 치맥회동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신선한 볼거리로 입에 오르내렸다.

젠슨 황(오른쪽)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깐부치킨 매장에서 이재용(왼쪽) 삼성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 회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리창 너머로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손님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 들어들며 이들을 둘러쌓다. 누가 계산을 했는지, 그들이 입은 옷과 안경이 어느 브랜드인지, 그들이 먹은 메뉴는 무엇인지 등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현장 중계됐고 온라인을 타고 널리 퍼졌다. 언제나처럼 검은 가죽 재킷에 짙은 색 셔츠를 입은 채 등장한 젠슨 황은 그가 평소 강조하던 협력과 의리, 유대관계의 실천현장의 모습을 대중에 공개하며 스타 CEO다운 행보를 보였다.
4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치맥회동을 했던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 CEO테이블 좌석이용에 대한 안내가 붙어있다. 2025.11.4 [이승환기자]
한국 PC방 덕에 기사회생한 게임덕후
현재 AI 산업의 대장주이자 핵심기업으로 불리는 엔비디아와 그 창업자 젠슨 황. 그러나 사실 엔비디아는 PC방으로 유명했던 대한민국 덕에 지금의 제국을 탄생시킬 수 있었단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는 실제 젠슨 황이 언급한 이야기다. 수십년간 그래픽카드 제조사로 성장을 거듭한 엔비디아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엔비디아가 있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그래픽 카드 기업에서 21세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AI 혁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의 수장, 젠슨 황은 어떻게 엔비디아 왕국을 완성했을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운데)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미국으로 떠난 대만 소년
젠슨 황은 1963년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난 대만계 미국인이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반도체 기업 AMD CEO인 리사 수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대만계 미국인이다. 그는 응용화학 공학자였던 아버지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젠슨 황과 그의 부모님
그리고 1960년대 대만의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국민당 정권 아래 계엄령이 유지되고 있었고 중국과의 갈등이 잔존해 있었던만큼 군사적 긴장감도 높았다. 아직 본격적인 산업화의 바람이 불기전 대만은 잠재력은 컸지만 여전히 미지수가 컸던 나라였다. 젠슨 황의 부모는 아들에게 좀더 나은 조건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고 싶단 생각을 했다. 실제 주변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람들이 있었던만큼 고심끝에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공교롭게도 미국 역시 아시아 과학기술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만, 인도, 한국 출신 학생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던 시기였다.
인종차별에 맞선 젠슨 황, 게임에 빠지다
그렇게 10살이던 젠슨 황은 1973년 형과 함께 단둘이서 미국 켄터키 주 원모어에 있는 친척집에 도착한다. 그들의 부모는 대만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보냈고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인이 많던 미국 남부의 시골마을에서 두 형제는 인종 차별의 표적이 됐다. 친구들은 그의 도시락을 뒤집었고 작고 왜소한 아시아인이라고 놀렸다. 젠슨 황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어를 익혔고 점차 미국 생활에 적응해갔다.

그의 외롭고 불합리한 10대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은 놀랍게도 기계였다. 기계는 그들을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지 않았다. 젠슨 황은 전자기기와 조립식 키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게임만한게 없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게임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후 상대적으로 아시아계가 많은 오리건 주로 이사를 간 젠슨 황은 16세의 이른 나이에 지역의 명문 공대인 오리건주립대 전기공학과에 조기진학하며 공학도로서의 꿈을 키워갔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 독학으로 회로 설계를 구상하고 공학적 사고력이 뛰어났던 젠슨 황은 대학에서도 곧잘 공부를 해나갔다. 그리고 이 곳에서 같은 전기공학과 동기이자 2살 많은 누나, 로리를 만난다. 젠슨 황은 로리의 과제를 도와주며 가까워졌고 이들은 캠퍼스 커플로 결혼에 골인해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중이다.

젠슨 황과 그의 부인 로리 여사
취업에 성공한 젠슨황, 창업갈증을 느끼다
대학을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학원에 진학한 젠슨 황은 1992년 석사과정을 마치며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당시 젠슨 황의 시선은 당시 막 꽃피기 시작한 PC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향후 컴퓨터가 그릴 새로운 미래에 대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젠슨 황은 문서 작성이나 수식 계산 등의 용도로 활용되던 PC가 향후 게임이나 음악, 그리고 동영상을 시청하는 멀티미디어 기기로 발전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견했다.
창업 당시 젠슨 황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누구보다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반도체를 만들고 이를 게임에서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단 막연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또한 직접 코드를 짜 간단한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색상, 픽셀, 광원 효과를 실험하는 그래픽 렌더링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며 총천연색으로 이뤄진 화려한 게임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첫 직장은 AMD였다. 이 곳에서 그는 반도체 설계일을 맡았다. 하지만 그의 핏속에는 창업에 대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그는 스스로 가진 창업 DNA를 숨기지 못한채 1993년, 30살의 나이에 창업을 결심한다. 젠슨 황은 그래픽 칩셋 설계 엔지니어 커티스 프리엠과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아파트에 사무실을 차렸다. 바로 엔비디아의 탄생이다.

허무맹랑한 꿈, 타도 인텔을 외치다
사실 스타트업 엔비디아의 목표는 ‘타도 인텔’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굴지의 대기업이자 기술력의 산증인인 인텔에게 이제 막 창업한 조그마한 회사가 도전장을 던진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이는 마치 조그마한 동네에 슈퍼마켓을 연 창업자가 월마트나 코스트코를 잡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초창기 엔비디아를 이끌던 젠슨 황
그는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의 왕좌에 도전장을 내밀려 차별화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그 결과 인텔과 달리 멀티미디어 처리에 특화된 CPU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텔의 벽은 이제 막 창업한 엔비디아엔 너무 높았다.

결국 그는 CPU 개발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그가 가장 즐겨하는 취미이자 특기인 게임에 특화된 기술을 개발키로 한것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개발로 선회한 것이다. CPU는 마치 초등학교의 반장과 같다. 반장은 하나의 일을 차근차근 처리한다. 수학 문제를 풀고, 다 끝내면 영어 단어를 외우고, 그다음엔 숙제를 정리한다. 즉, 문제를 하나씩 순서대로 해결하는 데 뛰어난 친구다. 반면 GPU는 운동회에서 이인삼각 경기를 하는 반대표 친구들과 비슷하다.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발을 맞춰 달리며,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야심작의 출시, 대실패의 반전
그렇게 엔비디아는 1995년 ‘NV1’이란 첫 그래픽 칩셋 제품을 공개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성능은 기대치에 한창 미치지 못했다.
엔비디아 NV1
큰 위기를 맞은 엔비디아에게 손을 내민 기업은 일본 게임 개발사 세가(SEGA). 세가는 엔비디아의 성장 가능성에 베팅해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다. 세가는 당시 자사의 콘솔 게임을 PC 게임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선 PC에서도 가동이 가능한 그래픽 가속칩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이런 그들이 주목했던 기업이 바로 엔비디아였던 것이다. 엔비디아의 그랙픽 카드는 세가의 게임을 PC버전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호환 포트를 갖추고 있었다. 결국 세가는 5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며 한줄기 빛이 됐다.

숨통이 틔인 엔비디아는 NV1의 실패를 교훈삼아 후속작인 RIVA128을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이 제품은 낡은 흑백TV를 컬러TV로 바꾼 것과 같은 혁신이었다. RIVA 128은 그래픽카드 안에 여러 기능을 하나로 묶은, 세계 최초의 그래픽 통합형 칩이었다.

엔비디아의 힘, 지포스의 탄생
탄력을 받은 엔비디아는 1999년 회사를 대표하는 제품을 내놓는다. 바로 GPU 브랜드 ‘GeForce’ 시리즈의 첫 제품인 지포스256이 세상에 출시된 것이다. 지포스256은 기존 게임 유저들에게 혁신이었다. 하나의 칩이 그래픽 처리의 많은 부분을 대체했다. 게임속 영상은 훨씬 부드러워졌고 이제 PC에서도 콘솔 게임기 못지 않은 그래픽 구현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또 지포스 이전엔 그래픽 처리를 CPU를 통해 앴지만 이후 그래픽 영상 처리를 별도로 하는 GPU칩 생태계가 구축되는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엔비디아 지포스 칩
엔비디아가 내세운 혁신은 게임 산업과 함께 성장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한국은 PC방 문화의 폭발적 확산으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고성능 그래픽칩 소비국이 됐다.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서든어택’ 같은 온라인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그래픽카드 수요가 급증했고, 그 중심에 엔비디아의 지포스 시리즈가 있었다. 게임 그래픽 성능을 높이기 위한 젊은 세대의 ‘업그레이드 열풍’이 엔비디아 성장의 조용한 촉매제가 된 셈이다. 젠슨 황이 최근 방한하며 한국이 엔비디아 성장의 큰 힘이 됐다고 한 말은 결코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 새로운 시대를 본 젠슨황
하지만 화려한 성장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2000년대 초, 엔비디아는 ATI(훗날 AMD로 편입)와 치열한 기술경쟁에 돌입하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라데온 시리즈를 내놓은 ATI와의 경쟁은 회사 재정에 부담을 줄 정도였다. PC 칩셋 사업 확장도 예상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음 세대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결정적인 위기는 2007년이었다. 엔비디아가 야심차게 내놓은 모바일용 칩셋 ‘테그라’가 시장에서 또다시 선택받지 못한 것이다.퀄컴과 삼성, 애플이 이미 스마트폰 AP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에는 GPU 칩의 납땜 불량으로 수백만 개가 리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고,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엔비디아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엔비디아와 ATI와의 경쟁 구도를 이미지화한 그림
하지만 젠슨 황(CEO)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그래픽 회사로 남으면 끝난다며 GPU의 계산 능력에 미래가 있다고 믿었다. 자사의 GPU를 단순히 그래픽 카드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계산하는 ‘병렬 컴퓨팅 장치’로 활용키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픽 전용 언어가 아닌, GPU를 이용해 모든 연산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든 범용 개발 플랫폼을 만들었다. 당시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회의적이었다. 게임용 칩으로 수학 연산을 하겠다는 발상은 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젠슨 황은 연구자와 개발자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설득했다. 그는 그래픽 픽셀 하나하나를 동시간에 처리하는 방식을 수백만개의 연산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용하면 인간의 지능을 흉내내는데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발상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현재의 엔비디아를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

데이터 연산의 미래를 보다
젠슨 황은 GPU에서 멀티미디어 처리 능력을 제거하는 대신 단순 연산에만 특화된 고성능 칩을 개발했다. 그렇게 2007년 ‘테슬라’라는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칩이 개발됐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이름이 같았다. 게임용이 아닌 범용 연산에 쓰이도록 개발된 고성능 연산 작업 칩으로 데이터센터나 슈퍼컴퓨터용 반도체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엔비디아 테슬라 칩
특히 2012년, 토론토 대학의 젊은 연구진이 엔비디아 GPU 한 대로 만든 신경망 모델 ‘알렉스넷’이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압도적 성능을 기록하자 전 세계가 놀랐다. AI 연구에 CPU가 아니라 GPU가 최고라는 사실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엔비디아는 즉시 이 흐름을 잡았다. 연구소와 데이터센터를 위한 테슬라 GPU, AI 서버인 DGX 시리즈를 내놓으며 ‘AI 컴퓨팅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했다.

물론 고성능 반도체 시장 역시 인텔 등 경쟁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고 먹을 파이 자체가 작다보니 주목도는 낮았다. 하지만 젠슨 황은 누구의 말도 신경쓰지 않은 채 기술 고도화에 나서며 내공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젠슨 황은 당시 구체적으로 지금과 같은 AI 산업이 개화할 것이라고 뚜렷하게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AI, 딥러닝, 메타버스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막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처리하는 첨단 기술의 시대를 대비해야 할 것이라는 감은 분명히 있었다.

멈추지 않은 혁신, 행운이 따르다
주력이던 게이밍에서도 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2018년 ‘RTX 시리즈’는 영화처럼 사실적인 빛 반사 효과를 구현하는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을 상용화했고, 엔비디아는 다시금 게임 그래픽의 기준은 우리다라는 확신을 세웠다.
포춘지 모델로 나선 젠슨 황
엔비디아의 도약에는 행운도 따랐다. 우선 암호화폐 열풍이 엔비디아의 가치를 밀어올렸다. 암호화폐 붐이 일어난 가운데 GPU의 병렬 연산 능력이 비트코인 채굴에 최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가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를 찾아 나섰다. 지포스 시리즈는 단숨에 품귀 현상을 빚었고, 수십만원대던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가 10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이마저도 없어서 못사는게 현실이었다. 진짜 게임을 하기 위해 그래픽카드를 찾던 이들조차 PC 구입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일시적인 호황이었지만, 이 경험은 엔비디아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GPU는 게임을 넘어서, 세상을 계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암호화폐와 코로나, 엔비디아를 키우다
두 번째 기회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찾아왔다. 모든 공장이 멈췄지만, 집 안의 컴퓨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돌아갔다. 언택트 시대가 열리며 전 세계의 게이머, 스트리머, 크리에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집 안의 작은 모니터 속 세상이 현실을 대체했고,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던 이들이 게임 등을 즐기기 위해 엔비디아를 택했다 .

그 결과 엔비디아는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동력이 폭발한 계기가 바로 AI시대의 개화다. 2023년,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세상을 뒤흔들자, 모든 데이터센터가 엔비디아의 칩을 찾아 나섰다. AI 학습용 GPU H100은 개당 4만 달러에 거래됐고 기업들은 너나없이 물량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AI칩의 대명사가 된 엔비디아는 끝을 모를 질주를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참석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환담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5.10.31 [경주/한주형기자]
30년만에 이뤄진 꿈, 세계 1위 기업이 되다
결국 젠슨황은 30년전 엔비디아를 창업하며 세웠던 허무맹랑했던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바로 ‘타도 인텔’을 한 것이다. 2020년, 엔비디아는 인텔의 시가총액을 역전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현재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4조4300억달러 수준. 반면 인텔은 1905억달러다. 엔비디아의 몸값은 인텔 20배가 넘는다.

이 극적인 변신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창업자, 젠슨 황이다. 그의 리더십은 기술과 사람 사이, 성공과 실패의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실험의 자유’를 허락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그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 다음 혁신의 씨앗으로 삼게 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실패한 시제품과 폐기된 보드들이 가득한 서랍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실패의 박물관’이라 불렀다. 하지만 젠슨 황에게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늘 같은 가죽 재킷을 입고 무대에 선다. 그 재킷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다. 완벽함보다 용기, 계산보다 실행, 안전함보다 탐험을 택하겠다는 신념의 상징이다. 그의 왼팔에는 엔비디아 로고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그에게 회사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몸의 일부이자 사명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젠슨 황과 젠슨 황의 문신
그는 자신을 CEO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엔비디아의 첫 번째 엔지니어입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엔비디아라는 회사의 철학을 보여준다. 리더가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이 사람을 움직이는 회사.그것이 젠슨 황이 만들어낸 엔비디아의 진짜 혁신이다.

그래픽 카드 한 장에서 출발한 엔비디아는 이제 인공지능·자율주행·슈퍼컴퓨팅을 아우르는 기업이 됐다. 1990년대 한국 PC방의 불빛 아래 스타크래프트의 전장 한가운데에서 뛰던 그래픽칩이, 20년 뒤 인공지능의 두뇌가 되어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에게 선물한 AI슈퍼컴퓨터 ‘DGX스파크’. 25.10.31 [경주/한주형기자]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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