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한국화, ‘케데헌’ 바람 타고 날개 달까

한겨레 2025. 11. 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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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ㅣ 한국화의 재발견
청전 이상범이나 소정 변관식은 전통화법을 잘 구사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표현형식을 구사해 대가로 평가받는다. 청전 이상범의 ‘군봉추색’. 한겨레 자료(호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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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게임을 개최할 만큼 나라 경제에 여유가 생기면서 미술을 모르는 일반인도 미술작품을 사려고 줄을 설 정도로 미술시장이 급성장했다. 당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던 작가는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이었다. 그의 전지 크기 그림은 1억원을 호가했는데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이후 한국화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2000년대 중반 서양화가의 작품 가격이 급등해도 이들은 예전 고가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300만~400만원이면 이들의 소품을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이 가격이 내려와 있다.

형편없는 시장가격

청전은 ‘근대 한국화 10대가(大家)’중 한 명이다. ‘10대가’는 1940년 조선미술관에서 오봉빈이 ‘십대산수풍경화전’을 주최하면서 그 전시에 참여한 화가 10명을 지칭한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인 1971년 서울신문사에서 창간 26주년 기념전으로 그 10명 중 생존한 6명으로 ‘동양화 6대가전’을 열면서 ‘6대가’로 수가 줄었다. 이제는 그중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만이 ‘대가’로 불릴 수 있을 만큼 한국화의 위상은 위축됐다. 그렇다면 이들마저 결국 그냥 잊히고 말까, 아니면 지금이 과매도 상태여서 오히려 매수 시점일까?

청전이나 소정은 전통화법을 잘 구사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표현형식을 구사해 대가로 평가받는다. 전통회화에서 개성의 표현은 서양화와 마찬가지로 남들과 다른 독자적인 표현형식으로 나타난다. 그 형식은 운필법(붓놀림)이나 준법(산과 바위 표면의 질감과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한 화법), 발묵법 등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이들은 1922년 심산 노수현, 묵로 이용우와 함께 ‘동연사’라는 모임을 조직해 실경을 사생하고 단일 원근법을 이용하는 등 전통회화의 근대화를 도모한 바 있다. 이후 다양한 시도를 거쳐 각자 자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냈다.

청전은 붓을 옆으로 길게 긋는 ‘절대준’과 수직으로 힘차게 긋는 ‘부벽준’을 함께 써서 바위의 거친 표면이나 산의 입체감을 표현하고 수목의 계절감 있는 표현에 활용하면서 한국의 산천을 향토색 짙게 표현한다. 그의 준법은 한국의 농촌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완만한 구릉을 배경으로 하는 구도의 화면과 어우러지면서 전통과 고향에 대한 대중의 향수를 자극했다.

반면 소정은 적묵(시커멓게 먹칠함)과 파선(破線)을 이용한 화법으로 산수 그림에 짧은 필묵을 무수히 중첩한다. 그는 특히 수많은 금강산 그림을 남겼다. 금강산의 거친 산세를 변형과 왜곡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역동적인 구도로 포착하는 그의 화면은 짙은 먹과 필선의 변화로 한국 산수를 강인하고 웅장하게 표현한다. 한국 산수를 표현하는 두 대가의 이런 상반된 특징으로 인해 청전과 소정은 근대 한국화에서 양대 기둥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1980년대 말에 그림을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있던 당시 50대 전후의 자산가들은 1950~1960년대에 성장기를 보냈고, 당시에는 서양화보다 한국화가 일반적이었다. 당연히 박수근 같은 서양화가보다 청전이나 소정과 같은 한국화가가 훨씬 유명했다. 또한 대부분이 전통가옥에 거주했기 때문에 서양화보다 한국화가 집에 두고 보기에도 잘 어울렸다. 실제로 1970년대에 현대화랑을 필두로 서울 인사동에 상업적 화랑이 하나둘 문을 열었던 시절에, 팔리는 건 서양화가 아니라 대부분 한국화였다고 한다.

청전 이상범이나 소정 변관식은 전통화법을 잘 구사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표현형식을 구사해 대가로 평가받는다. 소정 변관식의 ‘단발령’. 한겨레 자료(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 시절에 비하면 오늘날 한국화는 거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위축됐다. 그나마 대학에 동양화과 또는 한국화과가 남아 있어서 전통회화를 가르치고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수요가 없는 전통회화를 고집하지 않아 전통산수화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게다가 아파트 건설의 급증으로 중산층의 주거환경이 전통가옥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족자나 병풍 형식의 한국화는 집 안에 두기도 마땅치 않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청전과 소정의 시장마저 조만간 사라질 것만 같다.

그런데 미술시장은 지금 잘 그리는 작품보다 지난 시대에 잘 그린 작품을 더 높게 평가한다. 5천억원에 거래돼 현재 최고가 기록을 지닌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예수상 ‘살바토르 문디’다. 시장에 매물이 없어 거래 건수가 적을 뿐이지 과거 대가의 작품은 시장에 출시될 때마다 상당한 고가에 거래된다.

한국의 경우도 겸재 정선의 작품은 수억원대에 거래되고, 그 외 조선시대에 이름을 남긴 대가의 그림이라면 보통 수천만원대에 거래된다. 그리고 동시대 미술품 가격이 오르면 통상 과거 대가의 그림 가격도 동반 상승하기 마련이다.

매수 시점일까

청전과 소정의 작품은 근대 초기 우리 전통회화가 서양화를 만나면서 근대화를 위해 고민한 성취로, 우리 근대미술사에 확실한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한국화에 대한 이해가 얕고 부족하지만 김환기의 점화나 단색화와 같은 오늘날 서양화 대가들의 그림은 바로 수백 년 동안 우리 조상이 그려왔던 전통회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로 민화의 호작도(호랑이와 까치의 그림)가 새롭게 주목받는 것처럼 한국 문화의 위상이 오를수록 우리 전통에 대한 재평가도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다. 게다가 신진 작가의 작품도 수백만원씩 하는데, 그 돈으로 우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대가의 그림을 소장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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