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 둔 어른? 아이돌에 빠진 청춘!

원동욱 2025. 11. 8.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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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 둘러싼 세대 논쟁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으로 활동하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건가요?”

서울 동작구에 사는 43세 미혼 직장인 이선영씨는 요즘 아이돌 그룹 노래에 푹 빠져 지낸다. 그의 주말 계획도 자전거 타고 한강 달리기, 좋아하는 아이돌 유튜브 동영상 찾아보기, 저녁엔 이태원 등 힙하다는 식당 찾아다니며 친구와 와인 한잔하기로 채워져 있다. 최근 핫이슈 중 하나인 ‘영포티’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당당했다. “이 나이에 좋아하는 걸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죠. 몸도 마음도 저는 여전히 청춘입니다.”

이씨의 삶은 20년 전 40대였던 김정희(65)씨의 중년과는 사뭇 대비된다. 김씨는 2000년대 초반 두 아이 양육과 시부모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밀린 집안일을 마치면 저녁 10시가 돼서야 겨우 숨을 돌리곤 했다. “그땐 ‘내 인생’이란 말 자체가 사치였어요. 젊음을 만끽한다는 건 꿈도 못 꿨고요. 나이 마흔이면 이미 어른 중의 어른이란 게 당시 사회 통념이었죠.”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맞벌이 가구 비율은 40% 안팎에 그쳤다. 평균 출산 연령도 28세로 40대 대부분은 자녀가 중·고등학생이었다. 반면 지금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60%에 근접했고 40대 미혼자 비율도 6배가량 급증했다. 그러면서 40대를 규정하는 정체성도 ‘가정’을 돌보는 부모에서 ‘나’를 맘껏 향유하는 개인으로 바뀌어갔다. 40대의 자기 인식 또한 ‘아이 둘’ 키우는 ‘어른’에서 ‘아이돌’ 좋아하는 ‘청년’으로 변화하면서 “중년이란 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40대는 결혼 유무나 나이와 상관없이 각자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간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도 이젠 ‘영포티’ 세대 갈등을 넘어 ‘중년의 재정의’를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진단했다.



“40대는 청춘 연장선…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은 내가 개척하며 살아가야죠.” 2025년 11월. 이선영씨는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한 뒤 자기 계발 강의를 듣고 있다. 귀갓길엔 감성 편집숍에 들러 새로 나온 향수를 맡아보기도 한다. 이씨는 “회사 일이나 연애 말고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며 “30대 때는 40대가 되면 ‘나만의 인생’이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지금도 ‘청춘의 연장선’이란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새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맞벌이 가구 비중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창업·이직 등 ‘인생 2막’에 도전하는 40대도 크게 늘었다. 김석호 교수는 “지금의 40대는 라이프 스타일이 획일적이지 않으면서 SNS 등을 통해 다른 세대의 삶도 훨씬 쉽게 공유하는 세대”라며 “최근의 ‘영포티’ 논란도 ‘중년답게’라는 기존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과 40대의 실제 삶의 형태가 일치하지 않는 괴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 말대로 2000년대 초반 40대 기대수명은 78세, 건강수명은 66세 수준이었다. 그런데 2023년엔 83.5세와 72.5세로 크게 늘었다. 박현아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료 기술과 정보 접근성 향상 덕분에 ‘늙어서도 오래오래 사는 시대’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며 “지금의 40대도 건강 관리에 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 예전보다 심신이 훨씬 젊은 상태로 40대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건강함의 연장은 곧 시간의 확장을 의미한다. 40대는 더 이상 ‘노년을 준비하는 나이’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나이’로 바뀌었다. 서울 서초구에서 14년째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김선영(59)씨는 “요즘 헬스장과 요가 스튜디오, 사이클링 클래스 수강생의 절반이 40대”라며 “내가 40대 때만 해도 여가 활동은커녕 주말에도 밀린 집안일 하느라 쉴 틈이 없었는데 지금의 40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퇴근 후 취미생활을 즐기는 40대가 늘면서 경제적 소비 패턴도 크게 달라졌다. 2000년대의 40대는 ‘빚의 세대’였다. 외환위기 이후 실직·부채의 충격이 가장 크게 몰아닥친 연령층이기도 했다. 반면 지금의 40대는 ‘지출의 주체’로 떠올랐다. 롯데·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40대의 온라인 패션 상품 구매 증가율은 20대를 능가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트렌드는 20대가 이끌지만 정작 실제 소비는 40대가 주도하는 양상”이라며 “40대는 충분한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도 특히 신경 쓰는 연령대”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변화는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다. 저출생·고령화 현상의 심화로 청년층이 갈수록 줄어들자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 상한 연령을 올리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강원도와 전라남도는 청년을 45세까지로, 다른 광역자치단체들도 대부분 40세 안팎으로 상한선을 높였다. 40대 중반도 ‘청년’으로 공식 인정받는 시대가 이미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 사회의 중위연령이 계속 높아지면서 정년 연장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라며 “앞으로는 한 조직 안에서 청년·중년·노년 세대가 함께 일하는 구조가 보편화될 것인 만큼 일하는 방식과 문화도 그에 맞게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중년의 재정의’와 이를 둘러싼 논란을 해소하려면 나이에 따른 ‘역할 규범’을 강요하기보다는 각자의 생애 단계와 선택을 인정하는 사회적 관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금의 40대는 디지털과 게임 문화를 접한 첫 세대로, 젊게 살려는 40대의 욕구는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산물”이라며 “이런 다양성을 너그러이 수용하는 게 세대 갈등의 해법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진영 대립이나 도덕적 잣대로 접근하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조 교수는 “이젠 나이가 아니라 ‘역량’에 따라 일하고 평가받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정년·연령 규범을 재설계해 20대와 40대가 공존하며 함께 성장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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