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은 '제로섬 게임'…유행 아닌 지속성 보라

중앙선데이 2025. 11. 8. 01: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인사이트

서울의 대표 명소로 부상하면서 국내·외 인파가 몰리고 있는 성수동은 팝업스토어가 유난히 많은 게 특징이다. [중앙포토]

지난주 금요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평일인데도 골목마다 사람으로 가득 찼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걷기조차 어려울 만큼 인파가 빽빽했다. 한 화장품 브랜드의 팝업스토어(임시 매장) 앞에는 꼬불꼬불 20m가 넘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작은 골목 전체가 하나의 체험 공간처럼 느껴졌다. 쇼핑백을 든 사람들 사이로 한국어·중국어·일본어·영어가 물결처럼 뒤섞였다. 외국인이 절반은 넘어 보였다.

한때 낡은 공장지대였던 성수동은 이제 ‘서울의 브루클린(미국 뉴욕)’이라 불린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꼭 한 번 들르는 골목길 투어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성동구는 25일 한국관광공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성수동을 찾는 내국인 방문객은 2018년 1993만 명에서 지난해 2620만 명으로 31%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외국인 방문객은 6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늘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서울의 대표 쇼핑 명소가 된 셈이다. 성수동이 뜨는 사이, 같은 지하철 2호선 라인의 신촌이나 건대 상권은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상권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 재래시장 상인이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거지인 아파트는 이웃에 새 단지가 들어서면 주거 가치가 함께 상승하지만, 상권은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시장이다. 한정된 고객을 두고 생존 경쟁을 벌이는 ‘제로섬 게임’이다. 성수동의 급성장도 주변 상권의 쇠퇴 위에서 가능했다.

상권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입지적 특성이 중요하다. 명나라 풍수서 ‘인자수지(人字水志)’에는 ‘산관인정 수관재물(山管人丁 水管財物)’이란 말이 있다. 산은 사람을, 물은 재물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돈의 흐름은 물과 닮았다. 강남역이나 삼성역처럼 물이 모이는 곳에 사람도, 돈도 모인다. 대부분의 핵심 상권은 평지에 있다. 반면 구릉지는 비가 내리면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가듯, 사람도 돈도 머물지 않는다. 이태원 경리단길이 급부상했다가 빠르게 위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접근성과 지형이 불리한 상권은 쉽게 쇠퇴한다. 특별한 콘텐트나 볼거리로 그 약점을 극복한다면 모를까.

성수동 연무장길처럼 크게 주목받는 골목길 상권은 ‘공간의 가치소비’를 보여준다. 답답한 콘크리트 문화에 지친 젊은 세대가 자신들만의 여유로운 공간을 찾고 있다. 유럽의 길거리 카페 문화가 한국에서는 좁은 골목길에서 재현되고 있다. 빠르게 식사를 해결하는 설렁탕집이나 순댓국집보다 커피점·레스토랑·베이커리·이자카야 등 느긋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소비자는 물건보다 공간과 분위기를 산다. 요즘 상권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소비하는 무대’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주택가나 공장 골목이었다. 리모델링과 신축을 거쳐 아기자기한 화장품 가게나 카페·식당 거리로 변신했다. 이국적인 지붕과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치 ‘건물들의 경연장’ 같다. 서교동 카페거리와 연남동 경의선 숲길, 서촌과 북촌, 송리단길(송파동), 그리고 ‘힙당동’으로 불리는 신당동까지 도시 곳곳의 골목길마다 저마다의 개성과 감성을 담은 문화가 살아 숨 쉰다.

골목길 인기는 전국적이다. 부산에서는 원도심 골목길 축제가 열리고, 대구와 대전에서도 골목길 투어에 사람들이 몰린다. 지방 도시 역시 오래된 골목을 새롭게 탈바꿈시켜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데 잇따라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핫플레이스 상권은 유행을 많이 탄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 커지고, 발길이 뜸해지면 빠른 속도로 시든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꾸준히 유지되는 동네 상권과는 다르다. 핫플레이스 같은 광역 상권은 단순한 점포의 집합으로서는 오래 못 간다. ‘먹자골목’을 넘어 볼거리와 체험 콘텐트를 갖춰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또 하나. 이제 핫플레이스 상권은 내국인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유동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핵심이다. 최근 방문한 일본 도쿄의 다이버시티 도쿄 플라자와 오모테산도 힐즈 등지에선 외국인 방문객이 일본인보다 많았다. 어떤 곳에서는 쇼핑과 엔터테인먼트가 한 공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다이버시티 도쿄 플라자는 실물 크기의 건담 로봇 모형을 전시한 곳으로 오다이바의 쇼핑 명소다. 동행한 한 관광객은 “요즘 한국 10대들이 건담을 보기 위해 일본을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핵심 콘텐트야말로 글로벌 시대 상권의 생명선이다.

성수동이 명동이나 홍대 못지않은 글로벌 상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판매보다 ‘체험’과 ‘브랜드 홍보’에 초점을 맞춘 팝업스토어가 유난히 많다는 점이 성수동 상권의 특징이다. 최근에는 일본 아이돌 그룹이나 중국 캐릭터 기업 등이 잇따라 연무장길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홍보전에 나섰다.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만큼 브랜드 인지도 확산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다.

성수동은 골목길 상권의 대표적 성공 사례지만, 이를 전국으로 일반화하긴 어렵다. 최근 오프라인 상권은 삼중고에 시달린다. 이상기후로 여름과 겨울철 유동 인구가 줄고, 온라인 소비 확대로 타격을 입고 있다. 게다가 여의도 IFC몰 같은 지하상가나 스타필드 등 대형 복합몰도 기존 상권을 압박한다.

핫플레이스 상권의 흥망은 결국 사람들의 유입과 관심에 달려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취향의 방향이 바뀌면, 그 흐름은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더 매력적인 신흥 상권이 등장하면 선두 자리를 내주는 것도 핫플레이스의 속성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이 한때 ‘서울의 패션 거리’로 불리다가 지금은 한적한 이유도 같다. 상권은 한 번 쇠락하면 다시 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상권의 성공은 ‘유행’이 아니라 ‘지속성’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