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남극 겨울바다서 얼어붙은 배…반년 후 생환한 선원의 수는 [Book]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5. 11. 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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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일 내내 타오른 생의 불꽃
사진으로 기록한 남극 생존기
영국의 탐험가 섀클턴 경
1914년 남극 횡단에 도전
부빙에 갇히는 고난 지나자
이번엔 배가 침몰하는 악몽
빙하서 살며 2년 버틴 끝에
탐험대 28명 모두 생환 성공
인듀어런스호를 배경으로 찍은 탐험대 28인이 함께 찍은 사진. 전원이 생존했다. [프랭크 헐리]
극지의 밤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온은 영하 34도, 보이는 것은 아득히 펼쳐진 얼음뿐이었다. 바람은 맹렬했고, 도무지 견디기 어려운 추위가 변변한 장비조차 없던 살갗에 사무쳤다. 선장은 읊조렸다. “과연 배가 견딜 수 있을까.” 선장을 고용한 탐험대장은 옆에서 또 말했다. “거의 끝이 온 것 같군.”

배의 이름은 인듀어런스호(號). 1914년 ‘남극 횡단’이라는 초유의 꿈을 안고 출항했던 배는 꽝꽝 얼어붙은 부빙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들의 실패는 훗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실패’로 기록된다. 타이나닉호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침몰선, 그러나 무려 634일 만에 ‘탐험대원 전원 생존’이란 기록을 세워서였다. 그 인듀어런스호의 이야기가 책으로 꿰매졌다.

탐험대장 어니스트 섀클턴 경(卿)의 꿈은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다. 섀클턴 경은 1910년대 당시 이미 남극을 다녀온 베테랑이자 영국 왕실에서 최고 권위 훈장을 받은 유명 탐험가였다.

섀클턴 경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빙하를 다 녹여버리고도 남을 용암 같은 열정이 그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선택한 다음 과업은 남극 횡단. ‘탐험대원 27명과 함께 남극 웨들해에서 출발해 맥머도 만까지 항해해 남극을 횡단한다’는 원대한 희망을 품었다.

남극 횡단의 꿈을 안고 출항했던 인듀어런스호의 마지막 모습.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가 탐험에 합류하면서 이 사진이 남을 수 있었다. [프랭크 헐리]
하지만 그 꿈은 지독한 난관에 부딪힌다. 영하 30도의 맹추위 때문에 얼음이 끝없이 밀려왔고, 인듀어런스호는 결국 부빙(浮氷)에 갇혔다. ‘백색 미로’였다. 오는 길도 이미 지옥이었지만,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였다.

‘좋건 싫건 혹독한 겨울을 남극 한복판에서 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섀클턴 경은 배를 거대한 월동기지로 바꾼다. 창고를 선실로 개조했고 가로 1.8m, 세로 1.5m 크기의 선실마다 두 명이 들어갔다. 먹이는 펭귄과 펭귄알, 그리고 물개였다.

100m 앞에 잠시 물길이 열리면 섀클턴 경과 대원들은 곡괭이로 얼음을 깨고 앞으로 나가갔지만 부빙은 끝도 없이 밀려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처음 갇힌 때는 1월. 그러나 3월, 4월, 5월이 와도 상황은 더 악화할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엔 무시무시한 7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7월은 북반구에선 여름이지만 남반구에선 한겨울이다.

강풍 사이로 굉음이 들려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마치 살인을 당하는 사람이 공포에 질려 외치는 소리처럼.” 앞뒤 좌우 사방에서 부빙이 몰려들어 4.5m 갑판 위로 아예 올라올 기세였다.

결국 어느 날, 배가 공중으로 점프하는 듯이 튕겨올랐다가 곤두박질을 쳤다. 그러기를 한 달.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인듀어런스호가 물 위에 다시 떴다. 때는 늦은 뒤였다. 배가 좌현으로 30도 가까이 기울어져 못 쓰게 된 것. 심지어 선미에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섀클턴 경은 말했다. “배를 포기한다.” 탐험대는 거대한 빙하로 건너가 텐트를 친다.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책 ‘인듀어런스’의 저자 캐롤라인 알렉산더는 뉴요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글을 쓰는 작가로 섀클턴 경의 모험을 재구성하지 않고 시간순으로, 그러나 대원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차분히 전개한다. 인듀어런스호를 다룬 책들은 많지만 이 책이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책에 수록된 당시 사진 때문이다. 책에는 수십 장의 남극 사진이 생생해서 마치 시곗바늘을 110년 전으로 돌려 당시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동행하는 느낌까지 난다.

인듀어런스호에는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가 승선해 긴 여정을 함께했는데, 그가 사진을 찍을 수 있던 이유는 섀클턴 경이 ‘탐험에서 발생할 모든 뉴스와 사진 판권’을 출항 이전에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계획을 세운 덕분이었다.

남극의 얼음에 갇힌 인듀어런스호. 남극 횡단은 탐험대장 섀클턴 경의 좌초된 꿈이었지만 이 실패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실패로 기록됐다. [프랭크 헐리]
섀클턴 경의 수완과 리더십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선실을 대원들이 쓰게 하고, 자신은 인듀어런스호에서 가장 추운 선장실을 숙소로 썼다. 직급이 높은 대원보다 일반 대원들에게 의복 등의 물품을 먼저 지급했고,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일화 한 가지. 배에서 내려 텐트를 칠 때 가죽백이 부족해 대원 중 누군가는 울백을 써야 했다. 섀클턴 경은 제비뽑기를 ‘조작’해 상위 대원들이 저품질의 울백을 쓰게 했다. 내구성이 좋고 추위에 강한 가죽백은 죄다 하위 대원들에게 주어졌다. 리더란 불리한 몫을 먼저 짊어지는 솔선수범이 기본이며, 진정한 존경심은 강제된 명령이 아니라 상호 신뢰 위에서 작동함을 이 책은 증언한다.

섀클턴 경이 남극의 강추위에서 붙들었다는 구약성경 ‘욥기’(38장 29~30절)를 다룬 책의 부분은 강한 울림을 준다. “얼음은 뉘 태(胎)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섀클턴 경은 ‘의인의 고난’을 대원들에게 묵묵히 들려주면서, 고통의 침묵 속에서도 질서는 작동하고 있다는 온기를 이 대목으로 대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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