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영화감독들, 드라마로 가다
드라마로 온 영화 감독과 스타 PD와의 한 판 승부
쪽대본 대신 ‘사전제작’ 시스템 정착
작품 오픈과 동시에 글로벌에 공개되는 OTT로 몰려
뉴스에서는 종종 영화 극장 산업이 침체기라고 떠든다. 이는 결국 한국영화 시장이 피폐해졌음을 시사하는 바다. 이런 와중에 영화감독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종착지는 바로 드라마다. ‘도가니’, ‘남한산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OTT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감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도 OTT를 통해 ‘지옥’ 시리즈를 선보였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작’ 등으로 영화계에서 연속 흥행을 이룬 윤종빈 감독도 넷플릭스 ‘수리남’, ‘나인 퍼즐’로 화제에 올랐다.

얼마 전 영화 ‘콘크리아 유토피아’를 연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엄태화 감독에게 연락을 했다. 함께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어 연락한 것인데, 이래저래 안부를 물으며 업계 근황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익히 알고 있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전체적인 한국영화 산업이 어렵고, 쉬이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몇 가지 프로젝트 중 먼저 투자가 결정되는 게 차기작이 되지 않을까라고도 전했다.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유명세가 꽤 컸기에 엄 감독 정도면 쉽게 차기작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영화산업은 제작사와 극장가 방면에서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도 없는 보릿고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제리 브룩하이머 “TV는 영화의 미래다”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과 연출에서 내로라하는 명성을 날리던 감독 제리 브룩하이머는 “TV는 영화의 미래”라고 선언했다. 그는 그 유명했던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는 물론이고 ‘콜드 케이스’, ‘클로스 투 홈’ 등과 같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렇다고 그가 여기에만 올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흥행한 ‘F1: 더 무비’도 그가 제작한 작품이니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제 영화의 미래를 OTT로 규정하기도 한다. OTT는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비즈니스 전략의 일환으로 꽤 많은 자본을 제작 시장에 투입했다. 그 탓에 꽤 퀄리티가 견고한 시리즈들이 많이 탄생했다. 이 자본 투입의 전환 시기에 영화 감독들이 시리즈 연출 시장으로 유입되었다. 물론 지금의 OTT는 오리지널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시청률 저조와 광고시장 감소로 힘겨워하고 있는 TV와 협약을 맺고 시리즈를 각각의 OTT로 유입시키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그중 미디어 전환이 꽤 영리하게 이루어진 감독은 아무래도 윤종빈 감독이 아닐까 싶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작’ 등으로 영화계에서 연속 흥행을 이루었음에도, 제작 여건이 변화한 걸 감지하고 넷플릭스 시리즈를 연출했다. 그게 바로 ‘수리남’, ‘나인 퍼즐’과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 ‘신세계’와 ‘마녀’ 시리즈로 잘 알려진 박훈정 감독 역시 두 분야를 오가며 활동한다. 그의 시리즈 ‘폭군’은 영화 ‘마녀’의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4부작 시리즈였다.

또 영화 ‘발레 교습소’와 ‘화차’로 잘 알려진 변영주 감독은 첫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성공적으로 선보인바 있고, 얼마 전 호평을 받은 고현정 주연의 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을 연출했다. 이렇게 많은 영화 감독들이 드라마 혹은 시리즈 시장으로 넘어오며 활발히 활동 중에 있다.

이들 감독들이 시리즈 도전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영화 산업의 상대적 빈곤과 자본을 등에 업은 OTT 플랫폼의 부상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일단 여러 개의 OTT들이 순차적으로 생겨나게 됨에 따라 드라마 시장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진 건 사실이다.
많은 자본을 투자하니, 고퀄리티의 콘텐츠가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기존 드라마 현장이 일명, ‘쪽대본’이라 불리는 벼락치기 제작의 관습보다는 해외 시리즈 산업이 구축해둔 ‘사전제작’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한국 극장에서 인기를 얻고, 2차 판권 시장에서 해외로 팔리던 영화와 달리 OTT 플랫폼은 작품 공개와 동시에 글로벌 구독자와 만날 수 있다는 수용자 시스템의 이점도 있었다.

그런 영역의 확장에 대한 사례가 ‘멜로가 체질’, ‘수리남’, ‘오징어 게임’과 같은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높은 시청률을 얻거나, 동시간대 스트리밍 최고 순위에 오른 건 아니다.

그 후 OTT를 통해 공개한 ‘닭강정’ 역시 호불호 강한 반응을 남겼다(최근 美 국제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이해영 감독의 ‘애마’ 역시 마찬가지다. 제작사인 OTT는 꽤나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기대했을 것이다. 마치 일본 성인물 비디오 산업을 풍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때와 같은 그런 화끈한 구독자 반응 말이다.
영화 감독과 스타 PD와의 한 판 승부

종영후 최근 글로벌 인기를 얻고 있는 ‘폭군의 셰프’는 ‘별에서 온 그대’, ‘하이에나’ 등으로 호응을 얻어냈던 방송 PD 출신 장태유의 작품이다. 이는 현재의 한국 드라마 혹은 시리즈 시장의 판도를 꽤나 흥미롭게 하는 지점이다. 시스템의 붕괴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영화 감독들과 기존 스타 PD들의 한판 승부가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영화 감독들의 시리즈 연출 러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점차 제작되는 한국영화 편수가 줄어들수록 그들의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드라마나 시리즈 연출에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산업 역시 역량 있는 감독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두 시장 모두 확대보다는 축소의 길로 접어 들어선 판국이다. 그렇다면 누가 대중의 심리를 꿰뚫으며, 만듦새를 유지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더 많은 익명의 대중을 수용자로 산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드라마가 성공하기란 영화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잘 감안하며 좋은 영화감독들의 멋진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길 희망하는 바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일러스트·사진 각 영화 스틸컷, 게티이미지뱅크,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애플티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2호(25.10.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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