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화재와 AI 강국 사이의 간극[IT 칼럼]

2025. 11. 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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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밤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소화수조에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26일 저녁,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5층 전산실에서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했다. 이후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우편 서비스, 심지어 119 긴급출동 신고 시스템까지 709개의 정부 정보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참사가 예고돼 있었다는 점이다. 2022년 10월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는 한국사회 전체의 일상적 디지털 소통을 127시간 동안 멈춰 세웠다. 배터리 화재, 이중화 시스템의 부재, 느린 복구 속도. 모든 것이 데자뷔였다. 그런데 3년 후, 정부는 똑같은 실수를 더 큰 규모로 반복했다. 사고가 아니라 방치다.

2022년 카카오 화재 당시, 한국사회는 분노했다. 민간 기업 하나의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체의 커뮤니케이션과 결제 시스템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화재로 카카오 서버의 85%가 영향을 받았고, 이중화 시스템이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카카오는 사과했고, 향후 5년간 투자 금액을 3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권은 재발 방지 법안 마련에 나섰다.

그렇다면 카카오 사태를 교훈 삼아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놀랍게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국정자원 화재로 중단된 709개 시스템 중 재해복구 시스템을 갖춘 경우는 5%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이 2025년의 이야기다.

글로벌 표준은 액티브-액티브(2개 이상의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하며 부하를 나눠 처리하고, 한쪽이 고장 나도 나머지가 즉시 서비스를 이어가는 방식) 또는 액티브-스탠바이(주 서버가 평상시 일을 하고 예비 서버는 대기하다가, 주 서버 장애 시 예비 서버가 활성화돼 서비스를 넘겨받는 방식) 방식의 이중화, 지리적으로 분산된 백업, 명확한 목표복구시간(복구돼 가동될 때까지의 소요 시간)과 목표복구시점(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는 기준점) 설정을 요구한다. 우리 정부는 이런 기본적인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능을 넘어선 무책임이다.

2025년 재해복구 예산은 고작 30억원에 불과했다. 국정자원 화재는 한국의 디지털 국가 담론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AI 강국을 외치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떠받치는 인프라의 복원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것은 예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선순위의 문제다. 화려한 신기술 프로젝트는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지루한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디지털 인프라는 산업 기반이자 국가안보의 문제다. 709개 시스템의 마비가 증명했듯, 데이터센터 하나의 화재가 정부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것은 사이버 공격이나 자연재해 상황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진짜 디지털 강국이 될 것인지, 아니면 디지털 강국 코스프레를 계속할 것인지. 다음 화재는 더 큰 것을 태울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앱과 서비스보다 그것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들이 얼마나 튼튼한지가 진짜 디지털 강국의 척도다. 다음 화재가 오기 전에 우리의 디지털 기둥들을 점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류한석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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