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보다 무서운 건 트럼프의 계산서였다 [박수찬의 軍]
“걱정스럽다. 감당할 수 있겠나.” 최근 기자와 만난 정부 소식통의 말 속에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둘러싼 리스크가 숨어있었다.

정부는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낙관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4일 국무회의에서 “원자로, 무장 체계 등 핵심기술을 확보 중이고 안전성 검증을 진행 중”이라며, 2020년대 후반 건조 단계에 진입하면 2030년대 중·후반 선도함 진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도 이날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기자회견에서 “국무부 및 에너지부와 긴밀히 협력해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신중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잠수함 10여척을 건조하면서 재래식 잠수함 설계·건조 기술을 확보했다. 앞서 1990년대 러시아 OKBM사와의 협력을 통해 잠수함용 원자로 도면과 설계용 컴퓨터 코드 등을 입수했다. 이를 통해 스마트원자로를 개발했다.
일각에선 이를 축소하거나 상업용 소형모듈형원자로(SMR)를 토대로 잠수함용 원자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SMR은 대용량 원자로 구성품인 가압기,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을 하나의 원자로 용기에 넣어 일체형으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재래식 잠수함이 오토바이라면 핵추진잠수함은 페라리다.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외엔 공통점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설계·기획 단계에서 핵추진잠수함은 핵연료와 원자로 배치부터가 난제다.
원자로 냉각, 방사선 차폐, 안전 설비 설계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장기간 수중 작전을 위한 내구성과 신뢰성 확보가 필수다. 미국·영국에서 설계에 3~4년에 걸리는 이유다.

국내 잠수함용 원자로 기술은 실험실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만들어서 지상시험과 수중시험을 하고 잠수함에 탑재해서 시험을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미국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어 핵연료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원자로 완성도 늦어진다.
제작단계에서도 핵추진잠수함은 방사선 차폐 시설과 고급 용접 기술이 필수다.
두꺼운 강판을 다층으로 용접해서 압력용기를 구성한다. 원자로 등이 선체 내에 복잡하게 설치되어야 하므로 모듈 단위로 공장에서 만들고 현장에서 최종 결합한다. 원자로 설치는 별도의 방사선 안전 구역에서 이뤄진다.
핵추진잠수함은 원자로 냉각계통과 증기 터빈, 발전기 등에 대한 높은 정밀도가 필수다. 원자로 시험 가동에만 수 주가 소요된다.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재래식 잠수함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며 준비해야 할 부분도 많다.
미국에서 핵연료와 기술을 지원받은 영국의 사례를 따른다고 해도 협정 체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영국은 4년이 걸렸지만, 프랑스는 미국 지원을 받지 못해 원자로·핵연료를 독자 개발하느라 13년이 걸렸다. 기술수준이 낮았던 인도는 25∼30년이 소요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필리조선소 건조는 비용 문제를 증폭시킨다. 군 소식통은 “지금은 비용 산출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정부는 국내 조선소에서 한국 기술로 만들고, 핵연료를 미국에서 공급받거나 자체 생산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핵연료 언급 대신 필리조선소에서 한국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의중에 거리를 둔 셈이다.
이는 비용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핵추진잠수함 척당 건조비로 거론되는 3조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계산법으로 알려졌다.

한·미 합의로 한국에서 4척을 건조한다면, 방사능 차폐 시설 등의 신규 인프라와 정비·훈련체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원자로 등의 핵심 장비 개발비도 추가된다.
이 모든 비용을 종합하면 미 해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 1척당 건조비인 5조원과 유사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 4척이면 20조원이다. 내년도 국방예산안 중 방위력개선비(20조1744억원)와 맞먹는다.
필리조선소에서 만들면 비용 리스크가 더 커질 위험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낙후된 필리조선소를 한국의 투자를 통해 현대적인 민·군 조선소로 바꾸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관측이다.
필리조선소에서 한국 핵추진잠수함을 만든다면, 미국은 쉽게 잠수함 건조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미국 노동자들을 건조에 투입하는 것도 인건비 증가를 부추긴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노동자는 한국처럼 ‘빨리빨리’가 없다. 한국보다 제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노조가 한국보다 훨씬 강성이라 현지의 한국인 사업가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산 장비나 부품 탑재 과정에서 비용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 부품과 장비를 필리조선소로 옮기려면 태평양을 건너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필라델피아항으로 가는 한 달짜리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해상 운송비에 더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하면 비용은 더욱 불어난다.

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잠수함을 만들어도 또다른 문제가 있다. 운영유지비다.
미 해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의 1척당 연간 운영유지비는 5000만∼1억7000만 달러(720억∼2500억원)로 알려졌다. 원자로 정비, 방사선 안전관리, 전문인력 인건비, 장비 유지보수, 도크와 특수 시설 운영, 무장·전자장비 관리비 등이다.
한국의 경우 잠수함 창정비를 필리조선소에서 진행하려면 잠수함을 미 동부 해안까지 옮기는 비용이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잠수함은 건조한 조선소에서 창정비를 하기 때문이다.

필리조선소 건조 카드는 미 해군 못지 않은 운영유지비 부담을 한국 해군이 지게 될 위험이 있다. 한국 해군의 전력증강 계획을 근본적으로 흔들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 발전 속도 빨라…효용성 따져야
문재인정부 시절 경항공모함 사업 추진이 강조될 때 다수의 드론을 탑재하는 드론항모가 대안으로 거론됐다. 당시 해군은 기술적 문제 등으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약 10년만에 해군은 무인기와 무인수상정 등을 탑재하는 3만t급 유·무인 전력모함(MuM-T Carrier) 확보 계획을 스스로 공개했다. 그만큼 무인 기술과 함정의 항공기 운용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는 의미다.

서방의 소노부이는 수㎞ 거리의 음파를 탐지할 수 있고, 중국·러시아는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도 음파 탐지가 가능하다.
서방측은 AI와 머신러닝을 통합하고, 중국은 AI와 신소재를 결합한 국산화 전략을 추구한다. 러시아도 기술자립과 첨단 기술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잠수함 작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세계적으로 기술 혁신이 가속화하고 있다.
무인 및 대잠수함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한반도에서 핵추진잠수함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처음 거론됐을 때는 군사적으로 활용할 영역이 충분했지만, 군사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핵추진잠수함의 군사적 효과를 다시 한번 살피게 하도록 하는 원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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