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 단순한 시력 저하 아니라 실명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질환’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지난해 한국근시학회에 이어, 올해는 대한안과학회가 근시의 심각성을 공식적으로 경고했다. 우리나라의 근시 발병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근시가 단순한 시력 저하로 끝나지 않고,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각종 안질환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유정권 고대안암병원 안과 교수는 "근시는 단순한 굴절 이상이나 시력 저하가 아니라, 잠재적으로 실명을 유발할 수 있는 병적 안질환의 시작점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시는 가까운 사물은 잘 보이지만 먼 거리가 흐릿하게 보이는 시각 이상으로, 안구의 앞뒤 길이(안축장)가 정상보다 길어져 망막 앞에 초점이 맺히는 굴절 이상이다. 즉, 망막(빛을 감지하는 신경세포층)에 초점이 정확히 도달하지 않아 상이 흐릿하게 인식된다.
미국 등 서양 국가의 근시 유병률은 약 30%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인 80~90%에 달한다. 특히 학령기에서의 근시 비율은 매우 높아 초등학생의 30~50%, 중학생의 64%, 고등학생의 74%가 근시로 진단된다. 김태임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근시 인구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인종적·유전적 요인 때문이다. 또 학습량과 근시 유병률은 밀접하게 비례한다. 공부하느라 장시간 가까운 거리를 보는 데다, 휴식 시간에도 스마트기기 사용으로 눈이 쉴 틈이 없다"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은 근시가 생기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로 교정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근시는 단순한 시력 저하로 끝나지 않는다. 근시는 녹내장, 망막박리, 황반변성 등 실명을 초래할 수 있는 주요 안과 질환의 근본 원인 중 하나다. 녹내장은 안압(안구 내 압력)이 상승하거나 시신경이 취약해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망막박리는 안구 안쪽의 신경조직인 망막이 떨어져 나가는 질환이다. 황반은 망막의 중심부로, 시세포가 밀집해 있어 정밀한 시력을 담당한다.
근시를 예방하고, 근시가 심각한 안과 질환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생활습관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근거리 작업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독서, 컴퓨터 작업, 스마트기기 사용 등은 일정 시간마다 눈을 쉬게 해야 한다. 대한안과학회는 책은 눈에서 30~35c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볼 것, 컴퓨터 화면은 눈에서 약 50cm 이상 띄울 것, 근거리 작업은 45분을 넘기지 말고, 5~10분 정도는 반드시 먼 곳을 바라보며 눈의 긴장을 풀 것을 권고한다.
또 하루 2시간 이상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 근시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자연광, 특히 자외선(UV)은 성장기 아동의 안구 성장 속도를 조절해 근시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자외선은 성인에서 백내장이나 황반변성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실내조명 환경도 중요하다. 조명은 너무 어둡거나 지나치게 밝지 않아야 하며, 빛이 균일하게 분포돼야 하며, 가능하면 빛이 위쪽에서 아래로 비추는 조명이 바람직하다.
특히 40세 이상 성인은 노화로 인한 안구 구조 변화와 함께 녹내장·황반변성 등 근시 관련 합병증 위험이 급격히 커지는 시기이므로, 매년 한 번 이상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기검진을 통해 시력 저하뿐 아니라 안압, 망막 상태, 황반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면, 근시로 인한 병적 변화나 실명 위험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다. 김찬윤 대한안과학회 이사장(세브란스병원 안과)은 "시력은 조기에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번 실명이 진행되면 대부분의 환자는 시력을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근시가 있다면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통해 진행을 늦추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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