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6개월 상영 뒤 OTT 공개 ‘홀드백’ 제도, 한국 영화 살릴까

한겨레 2025. 11. 7.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CULTURE & BIZ
‘홀드백 법제화’는 극장의 급격한 쇠퇴를 막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지만, 홀드백 기간을 6개월로 잡아둔다고 해서 극장을 외면했던 관객이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서울 시내의 한 영화관. 연합뉴스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최근 영화 ‘홀드백’(Holdback) 기간을 6개월로 정하는 법안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홀드백은 영화가 영화관에서 개봉된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방송 등 다른 플랫폼에서 공개되기까지 일정 기간을 두는 제도다. 영화관 관객 감소 원인 가운데 “OTT에서 곧 볼 수 있으니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는 인식이 거론되면서 강제로 홀드백 기간을 늘리려는 것이다.

이 법안은 겉으로는 영화 생태계를 보호하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화관을 보호하는 장치에 가깝다. 과거 영화 수익 대부분이 영화관에서 발생하던 시절에는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 중심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홀드백 강화를 산업 전체의 해법으로 볼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거엔 영화관 사업자-산업 이해관계 일치

영화산업에서 홀드백은 특정 유통 창구에서의 상영이나 공개가 끝나기 전, 다른 창구로 넘어가는 것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장치다. 20세기 중반 미국 할리우드에서 형성된 이 장치는 영화관-비디오-케이블-방송 순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창구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당시에는 창구별 구분이 명확했고, 각 단계에서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에 홀드백은 제작·배급 질서를 지탱하는 핵심 장치다.

한국 역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도입된 1990년대 말부터 유사한 모델을 받아들였다. 이미 비디오 시장이 커지던 상황에서, 영화관에서 수익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제도는 영화산업을 떠받치는 장치였지만 동시에 영화관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장치여서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 전액 투자로 제작됐지만 감독은 영화관 개봉도 이뤄지기를 원했다. 영화산업에 몸담아온 봉준호 감독은 영화관 개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영화관 동시 공개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으나,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국내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천하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더라도 “동시 공개라면 상영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며 2~3개월 이상의 홀드백을 요구했다. 당시 영화관 업계는 넷플릭스로 인해 독점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막 느끼던 시점이었기에 더욱 완강했다. 결국 ‘옥자’는 대한극장·서울극장·씨네큐브 등 단관극장과 예술영화관에서만 제한적으로 개봉됐다. 이 사건은 영화관의 힘이 여전히 강력해 홀드백을 넘어서는 시도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산업에서 홀드백이 이렇게 강력히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은 영화관 매출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멀티플렉스 도입 이후 한국 영화의 수익 구조는 철저히 박스오피스 성적에 달려 있었다. 홀드백 제도는 영화관 독점권을 보장해 박스오피스 성과를 담보했고, 이는 비디오·DVD 등 부가판권 가격을 끌어올리는 기반이 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까지 한국 영화 수익의 80% 내외가 국내 영화관 매출에서 발생했으니, 홀드백이 산업적 논리로도 설득력을 가졌던 셈이다.

변화한 환경, 흔들리는 영화관 독점 구조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관 관객은 급감했고, OTT가 영화 소비의 중심 채널로 부상했다. 창구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영화관의 독점 기간은 더 이상 산업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영화관에서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빠르게 다른 창구로 넘어가는 편이 전체 수익 극대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해당 영화가 어느 창구에서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는가에 따라 선호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홀드백은 과거 영화산업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핵심 장치였지만, 오늘날 그 기능은 많이 약화됐다. 이제는 영화관 상영을 위한 영화 수출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여러 아시아 국가의 극장가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영화 ‘파묘’가 바람직한 사례다. 쇼박스

이 지점에서 이번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생겨난다. 관객이 줄어든 상황에서 홀드백을 늘리면 영화관은 상영 기간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다. 오래 걸어둘수록 수익이 나는 블록버스터라면 이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영화가 개봉 뒤 한두 주 만에 상영관에서 내려간다. 이런 작품들은 홀드백이 길어질수록 OTT나 다른 부가판권 판매로 수익을 보전할 길이 막힌다. 결과적으로 홀드백 연장은 대작 블록버스터에만 유리하고, 산업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영화에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외에서도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홀드백을 유연하게 조정해왔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90일 홀드백을 지켜왔으나, 팬데믹 이후 단축되고 있다. 디즈니, 워너브러더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소니 등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대부분 45일 전후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작품 성과에 따라 한 달이나 17일 만에 스트리밍(실시간 재생)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함께 하는 영화관 사업자들은 신작 영화를 영화관과 스트리밍에 동시 공개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문화정책 차원에서 영화관 보호를 위해 36개월이라는 긴 홀드백을 강하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도 OTT 확산에 대응해 최근에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는 홀드백 기간을 15~17개월로 줄여줬다. 대신 이때에도 정부는 홀드백을 줄여주는 대가로 OTT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냈다. 넷플릭스는 3년간 연매출의 4%(최소 4천만유로)를 10편 이상 영화에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가 홀드백 단축을 허용하는 대신 OTT의 산업 기여를 제도적으로 끌어낸 것이다.

위기의 해법, ‘영화 가치 증대’로 눈 돌려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 문제의 본질은 영화관 관객 감소로 수익이 줄고, 이로 인해 투자까지 위축된다는 점이다. 핵심은 영화에서 창출할 수 있는 총수익을 늘리는 것이다. 영화관 수익이 정체돼 있다면, 다른 부가수익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표적 방안이 수출 확대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의 국외 진출은 대부분 주문형 비디오(VOD)나 OTT 판매에 머물렀고, 극장 배급을 통한 본격 수출은 드물었다. 이 때문에 수출액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 영화 보호를 이유로 한국 영화 진입을 제한했고, 서구 시장에서도 한국 영화 수요는 제한적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설국열차’,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 정도가 예외적으로 북미·유럽에서 개봉했을 뿐이다. 이들조차 주로 아트하우스나 제한된 상영관에 국한됐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2024년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는 아시아 여러 나라 극장가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베트남에서는 개봉 첫 4일간 65만 명을 동원해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고, 누적 223만 명으로 역대 최고 관객 기록을 새로 썼다. 인도네시아에서도 180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기생충’의 기록을 넘어섰다. 아시아 시장에서조차 상영 기회를 얻기 힘들었던 과거와는 달라진 흐름이다. 케이(K)-콘텐츠 열풍이 영화관 상영 시장에도 틈을 만들고 있다.

이제는 영화관 상영을 위한 영화 수출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적어도 한국 영화관 체인이 진출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터키 등지에선 배급 합작이나 공동 투자 모델을 시도해볼 수 있다. 우리 제작 영화 배급이 어렵다면 현지와 합작해 진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쉽지는 않다. 과거에도 잘 시도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숙제를 모두 다 알고는 있는데 서로 미루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과제는 OTT 판권 가격의 현실화다. 영화 제작자들이 OTT 판매에 소극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낮은 구매 가격이다. 되도록 시청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OTT 입장에서 영화는 드라마 시리즈보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콘텐츠다. 이런 점 때문에 OTT에서는 영화가 드라마 시리즈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과거 VOD에서는 시청 횟수에 따라 수익을 배분받는 형태여서 제작자가 꾸준히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OTT는 단매 형식이라 최소 금액만 제공받는 점도 다르다. 이래저래 제작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이제는 OTT가 영화 소비의 중심 채널로 자리 잡은 만큼, 판권 가격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처럼 홀드백 단축과 맞바꿔 OTT의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 참고가 될 수도 있다. OTT를 영화산업의 적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산업을 이끌어가는 동반자로 끌어들이며 산업에 기여하도록 책임을 지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홀드백은 과거 영화산업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핵심 장치였지만, 오늘날 그 기능은 많이 약화됐다. 앞으로 영화산업이 계속 성장하려면 영화관 중심이 아니라 국외 시장, OTT, IP 확장 등 다양한 수익원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영화관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가치를 늘리는 것”이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해법이라는 이야기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zkim@koreaexim.g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