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명 압사' 니콜라이 2세 대관식...현장의 조선인들 '뜻밖의 반응' [.txt]

이유진 기자 2025. 11. 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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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아관파천 뒤 사절단 세계일주 기행문
중국어 통역 김득련 한시 100여편 꼼꼼한 역해
청·일·미·유럽 지나 러시아까지 7만리 견문
앞줄 왼쪽부터 김득련, 윤치호, 민영환, 무관 파스코프, 외부관리 블란손. 뒷줄은 왼쪽부터 김도일, 스테인, 손희영. 1896년 5월25일 모스크바 사진관에서 촬영했다. 아카넷 제공

1896년 조선은 역법을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꾸었다. 청에서 들여와 쓰던 시헌력에서 태양력인 그레고리력으로 옮긴 것이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을 겪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는 이듬해 2월11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었다. 여러모로 격동기였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그해 5월26일, 러시아에선 새 황제의 대관식이 예정돼 있었다. 조선은 절박한 심정으로 대관식에 참석할 사절단을 꾸렸다. 특명전권공사로 민영환을 임명하고 영어 통역 윤치호, 중국어 통역 김득련, 러시아어 통역으로 김도일을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다. 단순한 특사라기보다 ‘생존 외교’의 성격이 강했다. 사절단은 4월1일부터 10월21일까지 반년하고도 20일 동안 청나라, 일본, 미국, 영국,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몽골까지 8개국 6만8365리(약 2만 6848㎞)길을 다녀왔다. 당시 독립국이 아니었던 캐나다, 아일랜드, 폴란드까지 합하면 11개국을 거쳤다.

라우리츠 툭센이 그린 니콜라이 2세 황제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대관식. 위키미디어 코먼스

장대한 유람 뒤 사절단은 공적 성격이 강한 기록을 날짜별로 정리한 ‘사행록’을 남겼다. 민영환의 ‘해천추범’(海天秋帆)과 김득련이 쓴 ‘환구일록’(環璆日錄)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득련의 ‘환구음초’(環璆唫艸)는 지구 한바퀴를 돌며 읊은 한시를 모았다는 뜻을 지닌 시집이다. 1895년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이 펴낸 ‘서유견문’이 최초의 조선 근대 세계여행 기행문으로 거론되지만, 세계의 지리, 국제관계, 정치체제, 법률과 교육 등 각 분야에 걸쳐 서구의 모습을 소개하며 조선의 근대 개혁을 기획하는 전략적 고민을 담은 성격이 강했다. 2년 뒤 일본 교토에서 발간된 ‘환구음초’는 그에 견줘 좀 더 본격적인 세계여행기에 가깝다.

황재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환구음초’의 가장 큰 특징은 공적 기록인 민영환의 ‘해천추범’과 김득련의 ‘환구일록’, 영문으로 된 사적 기록인 ‘윤치호 일기’를 비교하면서 자세한 해설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역해자의 자세하고도 해박한 지식에 기대 읽다 보면, 식민지가 되기 직전 낙후된 작은 나라 출신 사절단이 겪은 문화 충격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사적 중요 장면과 별것 아닌 것으로 지지고 볶는 인간 관계까지 이 책이 폭넓게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주변 친구들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펴내게 되었다는 사적 기록인 이 기행서가 공적 기록보다 당시 사행을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절단이 승선하게 된 영국 상선 황후호. 1896년 4월9일 상하이를 떠나 일본에 잠시 정박한 뒤 태평양을 건너 밴쿠버항에 도착했다. 13일간의 항해였다. 아카넷 제공

일행은 4월1일 인천 제물항을 떠나 러시아 배에 올라탔다. 하지만 중국 상하이에서 원래 계획한 배편을 놓쳐 영국 상선 황후호를 타고 일본과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을 들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러시아로 향한다.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사절단은 뉴욕에서 전기박람회를 보고, 축음기로 추정되는 기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듣는다. 김득련은 서구 문물을 보고 “진실로 생각하기도 어려운 기이한 일”이라 적는다.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한 끝에 사절단은 5월20일 모스크바에 도착했고 친서와 예물을 전달하면서 공식 임무를 수행한다. 볼쇼이 극장에서 글린카의 오페라 ‘황제를 위한 삶’도 감상한다.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5월26일 대관예식이 열리는 성당에서 민영환이 모자를 벗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윤치호가 격분하고 결국 사절단이 예배당 바깥의 누각 위에서 대관식을 지켜보는 장면이 눈에 띈다. 나흘 뒤인 30일, 사절단이 참관한 ‘만백성을 위한 잔치’도 톺아 볼 대목이다. 대관식을 축하하려고 마련된 민중 배식과 기념품 증정 행사를 보고 김득련은 7운 14구의 시를 읊어 칭송한다. “넓은 들판에 높은 누대 세우고/ 두 분 폐하 동가하여 오셨네. (…) 저마다 내려주는 물건 받자오니,/ 떡과 고기에 술 여러 잔이라. (…)”

그러나 이날 몰려든 군중이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1300명이 압사하는 ‘호딘카 참사’가 벌어졌다. 며칠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득련은 ‘환구일록’에 이를 기록했지만 황제가 보상금을 지불했다고 적었을 뿐, 비판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역해자 황 교수는 “아마도 ‘군민공락’(임금과 백성이 함께 즐거움을 누림)의 이상이라는 유가적 정치의 틀”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사절단이 방문했던 니즈니노브고로드주 박람회. 아카넷 제공

역해자의 해설로 파악할 수 있는 사절단의 내부 사정이나 성격차는 그들의 기행만큼이나 흥미롭다. 민영환과 김득련은 동고동락하면서 친밀감을 쌓아갔던 모양인데, 영어 스트레스와 외국어를 못하는 민영환의 각종 뒤치다꺼리에 지칠 대로 지친 윤치호는 김득련을 타깃 삼아 술고래(Mr. Fish), 말 같은 동물에 비유하고 민영환의 하수인이라고 거듭 비난하면서 기록해놓았다. 하지만 김득련은 프랑스어를 더 공부하겠다며 현지에 머물게 된 윤치호를 조금쯤 우호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했고 헤어질 땐 “이별의 심정”을 다소 과장되게 피력하기도 했다.

같은 사건을 겪고도 기록이 사뭇 달라, 황제의 행렬을 보고 김득련은 화려한 모습만 묘사했는데 윤치호는 다른 나라의 특사들과 비교하며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조선 사절단의 현실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김득련은 상대적으로 호탕하고 많은 친구를 둔 인물이었던지 외유를 다녀와서도 찾아온 벗들과 만남을 떠들썩하게 그려 기록해놓았다. 여행이 어땠냐며 궁금해하는 벗들에게 “보고 들은 것 ‘기행편’에 다 있다네”라 답한다.

환구음초 l 김득련 지음, 황재문 역해, 아카넷, 3만3000원

고전 문학으로서 한시가 지닌 아름다움과 옛 기행문에서 느낄 수 있는 풍속의 기록, 문화적인 감상, 거기다 김득련의 글솜씨를 상찬한 이들의 서문과 발문까지 다채롭게 구성돼 있어 두고두고 볼 만한 책이다. 120년 전 어느 역관의 의외성 가득한 여행기를 이렇게나 섬세하고도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독자로서 큰 기쁨이다. 여행 틈틈이 기억하고 기록한 저자,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고 집요한 탐정처럼 파헤치며 연구한 역해자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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