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로 읽는 청오 차상찬] 23.북국으로의 천 리 여행 (1924년 12월 개벽 54호)

윤다연 2025. 11. 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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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승객으로 바라본 친일 광경…날카로운 풍자 미학
1924년 가을 차상찬 금강산 전차 탑승
월하리 정거장서 윤희성 철원군수 만나
총독 영접 갈치장사 총출동 현장 비판
스스로 낮추며 관찰자 시선 풍자 예리
평강서 총독 하차 시간에 권력 비유
권력 영구하지 않은 실체 가르침 전해
▲ 차상찬의 글 ‘북국천리행’이 수록된 개벽 54호
▲  차상찬의 글 ‘북국천리행’이 수록된 개벽 54호

■나그네가 또 손님이 되어

가을비 내리는 쓸쓸한 10월 3일이었다. 나는 함경남도 답사 중인 춘파 박달성 군에게서 서둘러 함흥으로 와달라는 급한 전보를 받았다. 급히 장비의 군령 모양으로 서둘러 허둥지둥 여행에 필요한 물건과 짐을 꾸려서 경성역으로 나갔다. 온다 간다는 말 없이 혼자 다니기를 잘하는 나는 이날도 역시 가까운 주변 누구에게도 떠나는 시간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거장에도 전송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배낭과 대지팡이를 정다운 친구로 삼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 차는 오후 영시 5분 경원선 최북단 역인 복계행 열차였다. 차내에는 승객도 별로 없었다. 더구나 실없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오고 보니 차 안이 한층 더 쓸쓸하다. 18년간이나 가정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맛보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며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늘 외롭고 쓸쓸했지만 새삼 오늘은 더 쓸쓸함과 외로운 생각이 난다. 혼자 말로 ‘나그네가 또 손님이 되었네’라고 속삭이며 차창 밖을 내다보니 그 번성하던 기찻길 옆 버드나무 잎들이 벌써 반이나 쇠잔하여 비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과 늙은 사람의 뼈처럼, 병든 미인이 멋만 남아서 가련히 춤추고 사방팔방으로 몸짓하는 것 같다. 그것도 또한 슬프게 보인다. 나는 심심도 하고 무료함을 보내고자 시나 한 수 지려고 시 운을 띄어보았으나 시도 역시 생각이 잘 나지 않아서 겨우 한 구절만 짓고 말았다.

강바람 불어 낙엽 지고 비 내려 쓸쓸한데

차창으로 들어오는 한기에 잠조차 못 자겠네

(중략)

■월하역에서 아침 일찍 길을 떠나다

4일 오전 9시경이다. 나는 호기심에 새로 개통된 금강산 전차(이때는 임시기차 운행)를 타고 철원역으로 가려고 이용순, 박남극 두 사람과 같이 월하리 새 정거장으로 갔다. 이 월하리는 작년(1923)에 우리 ‘개벽’ 12월호에도 잠깐 소개되었던 철원의 늙은 색마로 유명한 박의병 대감의 집이 있는 곳이다. 그 대감은 그동안 아들의 잘못으로 사설 유곽이라 불렸던 그 크고 넓은 집까지 집행당하고, 진짜 유곽인 광도옥에 집을 매도하려고 알아보는 중이었다. 애첩들도 쌀 몇 섬씩 주어 해산식을 하고 자기는 면목이 없어서 경성으로 뺑소니를 쳤다 한다. 원래 망할 짓만 하면 그런 법이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시간이 되어 차내로 들어서니 현지 군수 윤희성의 허여멀건 얼굴이 보인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정거장에 좀 볼일이 있다고 한다. 나는 벌써 알아차리고 ‘옳지! 금강산 가는 총독을 영접을 가는구나!’ 하였더니 진짜로 꼭 맞췄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일본인이 또 물으니까, 귀에다 대고 ‘소?독구각가노 데무가이(총독 각하를 맞이한다)’ 라고 한다. 아하! 우습다! 나는 먼저 아는 것을, 비밀이 다 무엇이냐! 참 충실한 관리다. 아무쪼록 조선인과는 마음을 주고받지 아니하더라도 일본인하고는 비밀 대화를 하여라.

▲ 1924년 8월 1일 개통된 철원역 금강산 전기철도 모습.

■굉장한 총독의 행차

철원역에 다다르니 벌써 야단법석이다. 철원에 있는 갈치 장사는 총출동하여 무슨 중대 사건이 생긴 듯이 비상선을 늘리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막 노려보고 관청 출입이나 좀 하는 철원의 명망 있는 나으리 들도 다 나왔다.

참! 굉장하다. 나는 정신이 띵해서 대합실 안에 우두커니 앉았더니 조금 있다가 함흥행 차가 삐~~소리를 지르고 온다. 뒤꽁무니에 임시로 단 특등실에서 몸이 깍지 덩이 같고 머리가 목화 솜을 빼고 남은 목화박 같은 총독이 나온다. 그러자 윤희성 군을 위시하여 영접 나온 여러 사람의 허리가 일시에 부러지고 그들의 코가 땅 냄새를 맡는다. 또 갈치 장사 측에서는 ‘척’, ‘짹’ 하면서 손들이 모두 모자 위에 가 붙는다.

나는 잡담을 멈추고 이등 찻간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도 총독부 공기가 충만하였다. 관리는 물론이고 총독부 편만 드는 어용 잡지의 수행 기자인 숙명여학교의 연택이란 일본인 여선생까지 있다. 당나귀 말뚝 같은 여송연, 말 오줌 같은 ‘위스키’를 막 터트리면서 일본말로 ‘금강산’이 어떠니 ‘헤이고’가 어떠니 하고 떠든다. 그러던 중 어느새 기차는 출발했다.

나도 이, 박 두 사람의 따듯한 손을 떠나게 되었다. 월정역을 지나 평강을 가니 그곳은 총독이 하차할 곳이어서, 경계도 철원보다 엄밀한 모양이다. 영접 나온 사람들도 퍽 많다. 자동차, 인력 차가 역전에 빽빽하고 평강의 남녀노소는 물론 학생까지 다 나왔다. 앉은뱅이하고 송장만 아니 온 모양이다. 또 육당 최남선의 쇠똥 모자가 멀리 보인다. 그도 금강산으로 가는 모양이다. 총독 일행이 다 내리고 보니,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이야! 시간의 힘은 참 무서운 것이다. 삽시간에 차 안의 총독부 세력을 다 퇴출하여 버렸구나’ 하고 혼잣소리했다. 이어 ‘도시락’과 차를 사서 점심을 먹었다. (이하 생략)


■해설
1924년 가을, 차상찬은 함경도 답사를 위해 기차를 탔고, 우연히 철원과 평강역에서 벌어진 총독 행차의 장면을 목격한다. 어찌 보면 차상찬은 그날의 광경을 그저 선선히 묘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가 단순히 감상에 머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빈 차와 스미는 냉기,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의 시들어 감을 배경으로 세우고, 식민 권력이 연출한 ‘의전극’을 차분한 풍자와 날 선 아이러니로 해부하고 있다. 70여 개의 필명으로, 1000여 편의 글을 쓴 차상찬이 질적으로도 좋은 글을 써내는 언론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글이다. 결국 이 여행기는 답사기가 아니라, 총독과 친일 인물들을 향한 조롱의 현장 보고서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철원역 장면은 이 글의 핵심이다. ‘갈치 장사(차고 다니는 칼날을 갈치에 비유)’라 불린 일본 경찰이 역에 가득 출동하고, 지방 유력자들이 “허리가 일시에 부러지고 코가 땅 냄새를 맡는” 순간, 글은 단번에 희극으로 전환된다. 차상찬은 비굴한 그들의 모습을 과장해 이들의 내면까지 드러낸다. 권력 앞에서 허리의 각을 깊이 꺾는 만큼, 그들의 자존도 깊이 꺾이고 있다. 이어 “목화박 같은 총독”이라는 비유는 더 노골적이다. 번드르르한 껍질을 벗긴 뒤 남는, 볼품없고 푸석한 찌꺼기. 총독의 권위는 그 허세가 벗겨지면 이처럼 초라하다는 선언이다. 이는 일본 지배의 보잘 것 없음을 비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차상찬은 비밀 유지의 코미디도 놓치지 않는다. 철원 군수였던 윤희성이 조선인인 차상찬 앞에서는 쉬쉬하다가 일본인에게는 귀에 대고 ‘총독 각하 영접’을 속삭인다. ‘충실한 관리’라는 반어적 표현이 인상 깊게 눈에 박힌다. 검열과 공포의 시대라지만, 진짜 비밀은 권력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열리고 닫힌다는 사실, 곧 식민 통치의 치사함과 허구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기차 안 풍경 묘사 역시 날카롭다. 어용 매체 수행기자, 일본인 교사, 값비싼 담배와 ‘말 오줌 같은 위스키’가 만드는 소음. 권력은 이처럼 취향과 향취를 통해도 과시된다. 그러나 차상찬은 마지막에 한 줄로 판을 뒤집는다. 총독 일행이 내리자 ‘시간의 힘은 참 무서운 것이다’라며, 방금까지 장악하던 ‘총독부 공기’가 삽시간에 빠져나갔음을 서술한다. 권력은 영구한 실체가 아니다. 차가 떠나면 권위도 비워진다. 일제가 아무리 조선을 핍박해도 영원하진 않을 것이라는…. 일제 비판을 이렇게 절제된 문장 리듬으로 들이대는 것이 차상찬만의 풍자 미학이다.

그리고 멀리서 “육당 최남선의 쇠똥 모자”가 보이는 장면은, 한 시대의 민족주의자이자 지식인이 어떻게 시대 권력의 들러리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쇠똥 모자(볼러 모자)는 단순히 최남선이 쓴 모자에 대한 서술이 아니다. 민족 계몽의 언어를 조선총독부의 홍보 말투로 바꿔 탄 사람에게 붙여진 냉혹한 별칭이다. 민족·개벽을 외치던 그가 총독의 금강산 ‘행차’에 종속되는 순간, 그의 모자는 빛나는 지성의 영광이 아니라 악취 나는 배설물의 은유로 격하된다. 차상찬은 이름을 크게 부르지 않고 사물 하나로 인물 전체를 꿰뚫고 있다. 한때 민족 지도자였던,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빗대었던,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던 이에 대한 실망감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순 없을 것이다.

풍자의 칼끝이 예리한 까닭은, 차상찬 스스로가 자신을 과도하게 치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차상찬은 자신을 대단한 이로 치부하지 않았던, 늘 겸손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글에서도 그는 ‘외롭고 쓸쓸한 나그네’로 서 있고, 그 거리감이 관찰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자신을 높이는 순간, 글 자체는 낮아진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언론인이었다. 허름한 대지팡이를 손에 쥔, 작은 키(156㎝)에 대머리인 중년 남성이 쓴 글은 그래서 더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글에서 차상찬이 겨냥한 것은 총독 개인이 아니라, 총독을 ‘총독’으로 보이게 만드는 연출과 들러리들의 비굴한 체제가 아닐까. 차상찬은 화려하고 직접적인 고발 대신, 한 컷 한 컷의 풍경 묘사와 비유로 비판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글이라고 하기엔 놀랍도록 매끄럽고 세련되었다. 열차가 떠나면 권위도 떠난다는 뉘앙스의 서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권력은 늘 이동하고, 사람과 언어와 사물의 협조가 끊기면 허깨비처럼 꺼진다는 걸 일갈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혹은 한때의 권위주의 정부, 그리고 권력의 무상을 모른척하는 앞으로의 누군가를 향한 묵직한 경고가 아닐까.

“차창으로 들어오는 한기에 잠조차 못 자겠다”는 차상찬의 시구에서 그의 쓸쓸한 마음의 풍경을 읽을 수 있는 깊디깊은 가을이다.

이현준(한림대 강사, 차상찬기념사업회 이사)


△현대어 번역·해설=(사)차상찬기념사업회·이현준 한림대 강사 발췌문헌=차상찬 ‘北國千里行’, 개벽 54호. 1924. 12. ‘차상찬전집 2’, 184~188쪽. ‘차상찬현대문선집1’ 214~219쪽.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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