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응급처치, 생명을 살리는 오지랖

주어진 시간은 4분. 시간을 넘기면 뇌 손상 위험이 커진다. 눈앞에는 상반신 모양 마네킹이 있었다. 명치에서 손가락 약 두 마디 위, 가슴뼈 하반부를 5㎝ 깊이로 곧게 압박한다. 명치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마네킹 어깨 부근 센서에 노란 불빛이 둘 켜진다. 기준에 맞게 흉부 압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심폐 소생술 얘기다. 국제 응급처치 자격증(EFR)을 지난달에 땄다. 민간 자격증으로 ‘이머전시 퍼스트 리스폰스’의 약자다. 심폐 소생술과 심장 자동 충격기(AED) 사용법, 기도 폐쇄 상황에서 복부를 밀어 올리는 ‘하임리히법’ 등 국제 표준 응급처치를 배운다.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었다. 직장에서 필요한, 취재에 반드시 필요한 자격증도 아니었다. 단지 취미인 스쿠버다이빙 구조 자격 과정 중 하나의 선행 요건이라 배우기 시작했다. 묘하게도 한동안 개운하지 않았다. 방법을 알면서도 미흡한 처치로 최악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밀려올 죄책감에 겁이 났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교육 내내 강사와 교재와 참고용 동영상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적절한 조치는 무(無)조치보다 언제나 낫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가이드라인에는 심정지 환자 목격자가 심폐 소생술을 하지 않는 이유로 “모른다” 외에 “잘못할까 봐 두렵다”가 적혀 있다. 처치법을알고도 망설이는 것이다.

결정적인 골든타임을 놓치기도 한다. 비의료인 목격자가 있는 심정지 환자 사례 7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약 10%가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기까지 10분 이상 지연됐다는 내용의 논문이 지난해 미국심장협회(AHA) 계열 국제 학술지에 실렸다.
남을 위한 기술처럼 보였다. 심장마비나 부정맥, 익수, 질식, 외상성 쇼크, 열사병 등 심정지를 일으키는 수많은 사례를 접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처치를 익혀 봐야 당연하게도 내가 쓰러지면 소용이 없었다. 온전히 타인을 위해 흉부 압박을 실시했을 땐 익히 알던 대로 가슴뼈 골절은 피하기 어려웠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면한다는 ‘선한 사마리아인법’이 위급한 상황에 떠오르기나 할까.
그럼에도 배우는 이유는 나처럼 응급처치를 망설이며 익힌 누군가가 내 숨을 붙들어주리라는 믿음일 것이다. 구급대원이 오기 전 괜한 오지랖은 아닌지 고민하는 방관의 관성을 깨기 위해서. 그 망설임의 10분을 1분으로, 1초로 줄이기 위해 알아야 했다. 이후 건물마다 심장 자동 충격기 위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핼러윈 데이를 앞둔 시점이었다.
며칠 전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순찰하던 군인들이 길에 쓰러진 노인을 심폐 소생술로 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군인의 의무라서가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이타심이었을 것이다. 안전 불감증 기사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기자이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지금도 자신은 없다. 다만 생명을 살리는 오지랖이 있다는 것을 안다. 골든타임은 포 미닛, 4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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