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과 성격 다른 종묘에 "뷰 가린다" 어깃장 … 노후도심만 몸살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한창호 기자(han.changho@mk.co.kr), 정유정 기자(utoori@mk.co.kr) 2025. 11. 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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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세운재개발 길 터줬지만 … 여전한 '제2 왕릉뷰 논란' 따져보니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당시
조선왕릉 자연경관·배치 인정
종묘는 건축물·제례문화 방점
빌딩 세운다고 훼손되지 않아
세운지구, 도심공원 조성하고
'제기' 모티브 디자인으로 조화
전문가 "유산청 과도한 개입"
일각선 "보존 절충점 찾아야"

◆ 문화재와 도심 개발 ◆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의 세운지구 초고층 재개발을 둘러싸고 조선왕릉에서 일어난 '왕릉뷰 아파트' 사태에 빗대 국가유산청을 비롯해 여론이 들끓었지만 실상은 차이가 크다. 언뜻 고층 건물이 문화유산 경관을 훼손한다는 취지는 조선왕릉 논란과 비슷하지만 세계유산 등재 배경과 입지, 개발 용도, 규제지역 여부 등이 다른데 단순 비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선동하기 쉬운 '왕릉뷰'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낙후된 도심 재생을 막는 동시에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서울의 경쟁력을 도태시킬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6일 서울시와 문화계 등에 따르면 종묘와 조선왕릉은 우선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준에 차이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공식 자문기구 'ICOMOS'의 보고서와 등재 결정문에 따르면 조선 왕과 왕비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왕실 사당인 종묘의 등재 기준(4번 조항)은 건축물과 전통 제례에 방점이 찍혔다. 똑같이 왕릉뷰라는 비판을 내놓지만 정작 종묘엔 왕릉이 없는 것이다.

반면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왕릉은 풍수지리 등을 적용한 장례 전통과 제례 공간을 창조한 근거(3번 조항), 자연 경관을 결합한 건축물과 배치(4번 조항), 제례 전통(6번 조항) 등 3개 기준을 충족했다. 등재 기준에 대한 설명 전반에 걸쳐 풍수지리와 자연 경관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조선왕릉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로 경관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백성준 한성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종묘는 의례 유산의 성격이 강한 만큼 그 본질 가치에 훼손이 없다면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종묘는 1995년, 조선왕릉은 2009년 등재됐는데 그사이 신청 양식이 많이 달라졌고 등재 노하우에 차이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왕릉뷰 사태에선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건축 중인 대단지가 논란의 중심이었다. 신도시 개발은 본질적으로 기존 경관 훼손이 크고 아파트 위주라는 특성이 있다. 세운4구역을 포함해 세운지구는 오피스·주거·상업 등 여러 기능이 융합된 복합시설로 계획됐다. 특히 세운지구 건물들은 애초부터 종묘와의 디자인 조화를 고려해 설계 중이며 일부 건물은 계획보다 높이를 낮췄다. 세운4구역은 건물 디자인도 종묘 제례에서 사용하는 전통 제기를 모티브로 삼기로 했다.

무엇보다 세운4구역은 왕릉뷰 아파트와 달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역보지역) 밖에 자리 잡고 있다. 문화유산의 경관과 주변 환경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완충지대인 역보지역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유산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서 조례로 정할 수 있다. 서울시는 종묘처럼 국가지정문화재의 역보지역을 문화유산보호구역 경계로부터 100m 이내로 두고 있다. 역보지역에서 건물을 지을 경우 국가유산청장 또는 지자체의 허가 등 법적 규제를 받는다.

왕릉뷰 아파트는 사익 중심 개발이지만 세운4구역은 개발이익을 환원해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단계적으로 철거하고 그 자리에 종묘 앞부터 남산을 잇는, 서울광장 3.8배 규모(약 5만㎡ )의 도심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건물 상층부 2개층(약 3700㎡)을 할애해 종묘 역사박물관과 전망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 결과 공공기여 비율이 16.5%까지 높아졌다.

이날 대법원이 종묘 인근에 고층 건물을 세울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삭제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해 가까스로 사업이 중지될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향후 국가유산청이 다른 지역 개발에도 비슷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세운4구역은 재개발이 20년 넘게 표류하면서 금융 비용 등 토지주들의 누적 채무가 7250억원에 달한다. 높이 규제가 122m→71.9m→141.9m 등으로 달라지면서 설계비만 500억원이 들었고, 대부분 매몰비용이 됐다. 류성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유네스코는 개별 국가의 지역 특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가이드라인만 주는 것인데 국가기관이 유네스코에 권위를 부여해 규제 명분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유산영향평가는 개발과 보존의 절충점을 찾기 위한 프로세스"라며 "서울시 등이 개발만 밀어붙일 경우 한양도성 유네스코 등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한창호 기자 /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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