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촌 사태가 불붙인 '치킨 중량 표기' 의무화…소비자 속인 대가 치른다
정부, 이달 말 ‘치킨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대책 발표
치킨업계 “취지는 공감하지만, 의무화는 부담” 항변

[스포츠한국 김나연 기자] 치킨값은 그대로인데, 양은 슬그머니 줄었다. 소비자들은 "닭이 작아졌다"며 분통을 터뜨렸고,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교촌치킨의 '슈링크플레이션(양 줄이기)' 논란이 전국적인 불매 움직임으로 번지자, 정부는 '마리' 대신 '그램(g)' 단위 표기 의무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
6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품 중량을 줄일 때는 소비자에게 사전에 고지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며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품목별 특성이 다른 점은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장관은 교촌 사태와 관련해 "농식품부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며 "소통을 한다고 했지만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 앞으로 업계와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문제의 출발점은 교촌에프앤비가 운영하는 교촌치킨이었다. 교촌은 지난 9월 순살치킨 중량을 700g에서 500g으로 줄이고, 닭다리살 100% 대신 가슴살을 혼합해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불러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변경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아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국정감사 지적과 소비자 반발이 이어지자, 교촌은 결국 11월부터 4개 순살 메뉴의 중량과 원육 구성을 기존대로 되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신뢰는 무너진 뒤였다. "양은 줄이고 가격은 그대로 두는 건 꼼수" "프리미엄 브랜드임을 자처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온라인상에서도 "이제는 닭 호수 대신 정확한 g 단위로 표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실제로 같은 '한 마리'라도 프랜차이즈와 대형마트 등에서 사용하는 닭 호수가 달라 중량이 30% 이상 차이 나기도 한다.
이에 농식품부는 지난 3일 BBQ·BHC·교촌치킨 등 주요 외식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외식물가 안정 및 슈링크플레이션 자제를 당부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달 말 관련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치킨업계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담이 있다고 항변한다. 그동안 치킨은 '마리' 단위로 판매돼 왔으나, 닭의 크기(호수)에 따라 실제 중량이 크게 달라 통일된 표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한 마리'라도 8호(751~850g)와 10호(950~1050g) 닭의 중량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호수의 닭이라도 매장별 조리 과정에서 중량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가맹점주가 매번 조리 전 무게를 달아 표기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식업계의 부담은 이해하지만, 소비자 기만 행위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가공식품이 중량을 표기하는데 규모도 큰 프랜차이즈가 예외일 순 없다"며 "중량을 표기할 땐 떡, 감자 등 각각 얼마라고 분리해서 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치킨을 식품위생법상 영양성분·원재료 표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원재료를 더 저렴한 재료로 바꾸는 등 소비자 몰래 품질을 저하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다.
뒤늦게나마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논의되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처음부터 기업이 소비자를 속이지 않았더라면 정부가 직접 규제에 나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 치킨 중량표기 논의는 교촌의 '슈링크플레이션' 사태가 불러온 결과다. "소비자가 모를 것"이라 여긴 기업의 안이함이 부른 자업자득인 셈이다.
교촌은 뒤늦게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소비자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며 잘못을 인정했지만, 위기 뒤 황급한 사과로 잃어버린 신뢰를 한순간에 되찾을 생각은 오만이다. 정직성과 투명성은 기업 생존에 있어 기본 요건이다.
교촌은 그동안 '프리미엄 치킨'을 내세워왔지만, 진짜 프리미엄 가치는 맛과 가격이 아닌 신뢰와 내실에 있다. 소비자가 시장을 움직이는 시대, 기업이 신뢰와 공정성을 지킬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소비자를 기만한 브랜드가 어떤 고급 이미지를 내세운들, 그것은 결국 허울뿐인 광고 문구에 불과하다.
교촌은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소비자는 더 이상 부당한 일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며, 한 번 등을 돌린 소비자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소비자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장사는 결국 부메랑이 돼 기업에게로 돌아간다. 외식업계가 이번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닭 한 마리의 무게뿐 아니라 기업 가치의 무게까지 재게 될 것이다. 교촌과 같이 얻어맞고 나서야 정신 차리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
스포츠한국 김나연 기자 yeonpil@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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