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발은 그만”…‘한한령 해제’ 기대 속 차분한 대중문화계

고승희 2025. 11. 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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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한 후 ‘한한령 해제’ 기대감
가요계도 동향 예의주시…“신중 접근”
대형 K-팝 그룹일수록 민감…“매력적”
지난 1일 경주에서 진행된 국빈 만찬에서 박진영(왼쪽부터)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화하고 있다. [박진영 위원장 SNS]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중음악계에서도 다시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이 K-팝은 물론 드라마, 영화, 예능을 아우르는 K-콘텐츠의 최대 시장이었던 만큼 지난 9년간 중국 정부의 동향은 내내 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유화적인 제스처보다 인지도 높은 아티스트의 3000명 이상 대규모 공연이 성사되는 실질적인 진전이 있어야 한한령 해제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6일 대중문화계에 따르면 중국은 2016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보복 조치의 하나로 중국 내 한국 영화, 드라마, 게임, 대중문화 공연은 물론 한국 연예인의 방송, 광고 등을 일절 금지했다. 중국 측은 ‘정부 차원의 한한령은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지만,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각 지방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K-콘텐츠를 사실상 알아서 제한해 왔다.

하지만 올해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점차 커지는 양상이다. 올 초 우원식 국회의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5월 중국 IT 대기업 텐센트가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약 10%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는 “이번 인수는 중국이 거의 10년간 유지해 온 K-팝 공연 금지령(한한령)을 해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며 “SM엔터 같은 한국 기업이 텐센트와 관계를 통해 음악 배급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11년 만에 한국을 국빈 방문한 시 주석이 행사 후 만찬에서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공개된 것도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커지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자들의 유화적인 제스처만으론 한한령 해제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한한령이 이어지는 동안 업계에선 해마다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로 국내 아티스트들의 현지 진출이 성사된 적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K-팝 빅그룹인 트와이스를 비롯해 아이브, 김재중 등이 중국 현지에서 팬미팅과 팬사인회를, NCT드림이 팝업스토어를 열자 분위기가 고무됐다. 또 지난 5월에는 보이그룹 이펙스가 전원 한국 국적인 K-팝 그룹 최초로 중국 푸저우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펙스의 공연은 결국 취소됐고, 걸그룹 케플러의 ‘팬콘(팬 미팅)’도 행사 날짜가 다가오자 ‘불가피한 현지 사정’을 이유로 연기했다. 국내 기획사 관계자는 “노래를 하지 않는 팬미팅이나 팬사인회 정도는 허가가 됐는데, 최근엔 현지 여건에 따라 수락과 취소가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만 대중적 영향력이 적은 인디 밴드의 경우 일부 공연이 성사되기도 했다. 지난해 재즈 음악가 마리아킴이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공연했고, 미국 국적의 한국계 인디 가수 검정치마가 지난해 12월 말 우한에서, 올해 1월 초 정저우에서 공연을 성사시켰다. 한국 국적의 3인조 힙합 그룹 호미들도 지난 봄 중국 투어를 가졌다.

중국 공연 프로모터인 타이허 뮤직 그룹의 아이 징 쇼스타트 시니어 컨설턴트는 “지역마다 허가 기준과 요건이 각기 다르다”며 “북경, 상해, 광저우의 문화부에 똑같이 한국계 DJ 예지와 밴드 세이수미의 공연 신청서를 넣어도 광저우에선 승인되지 않았는데 베이징에서 난데없이 허가받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 지역마다 공연 허가 요건이 다른 것은 대형 K-팝 스타들의 지대한 영향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아이 징 대표는 “소위 말하는 빅그룹, 인기가 많고 영향력이 큰 가수일수록 중국 내 활동 가능성이 더 작다”며 “‘대형’ K-팝 공연일수록 더 민감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이 같은 판단 배경에는 2021년 8월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조치한 과도한 팬덤 활동 규제 조치와 연관이 있다. 당시 중국판 ‘프로듀스101’인 ‘청춘유니3’은 스폰서 회사인 멍뉴유업이 판매한 우유 뚜껑의 QR코드를 찍어 복수 투표를 할 수 있게 하자, 팬들이 우유를 잔뜩 사 투표만 하고 버려 사회적 공분을 샀다. 당시 버려진 우유만 27만병이었다. 현지에서는 팬덤 문화가 사회적 박탈감을 주고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는데, 이는 K-팝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K-팝은 2016년 이후 그룹 방탄소년단(BTS), 걸그룹 블랙핑크 주도로 동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시장으로 영토를 확장한 상태다. 그럼에도 한한령 해제가 간절한 것은 중국 시장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K-팝 시장은 2023년 음반 판매량이 1억 장을 돌파한 이후 점차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K-팝 기획사들은 중국을 겨냥한 전략 수립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이브는 최근 소속 아티스트의 중국 활동 지원 등을 위해 하이브 차이나를 설립했고, JYP는 지난 8월 두 번째 현지화 보이그룹 뻔푸소년(奔赴少年)CIIU의 데뷔를 알렸다. SM엔터는 텐센트와 향후 2~3년 내 중국 현지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APEC 홍보대사인 가수 지드래곤도 오는 15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위버멘시’ 미디어 전시를 계획 중이다. 당초 지드래곤은 지난 5월 상하이 전시와 함께 월드투어를 하려 했으나 돌연 연기됐다. 일각에서는 지드래곤의 전시가 ‘한한령 완화’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K-팝 기획사 관계자는 “최소 3000석에서 1만석 이상 공연이 성사돼야 한한령 해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한한령이 완화된다면 다시 K-팝 산업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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