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영웅’ 소방관의 고질병 암…“‘추정’ 아닌 ‘인정’ 필요” [건강한겨레]

최지현 기자 2025. 11. 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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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의 날 특집
재난 진압하며 발암물질과도 싸워온 김래형·최아무개 소방령
올해 김래형 소방경이 소속된 충남 119특수대응단 해저터널구조대와 함께 수행한 화재 진압 및 구조 활동 모습으로 지난 1월26일 새벽 아산시 둔포 면 공장 화재 사고 현장이다. 사진의 재배포를 금합니다. 충남 119특수대응단 해저터널구조대 제공
소방대원들은 화재 현장부터 각종 응급 사고와 재난 현장을 누비며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길 위의 영웅’으로 활약하지만, 그만큼 신체·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험 환경에도 노출된다. 11월9일 ‘소방의 날’을 앞두고 건강한겨레는 김래형·김용희·최아무개 소방경, 박영민 소방령 등 소방관 네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20~30년 동안 재난과 싸웠던 대원들은 이제 중년에 접어들며 몸과 마음에 남겨진 부상과 질병에도 맞서 싸우고 있다. 최근엔 정부도, 민간도 여러 지원을 이어가며 이전보다는 처우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건강한겨레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소방대원의 건강을 함께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2월18일 오후 천안시 동남구 철물점 화재 사고. 현장 모습. 사진의 재배포를 금합니다. 충남 119특수대응단 해저터널구조대 제공

소방대원의 고질병이라고 한다면 화상이나 각종 외상을 떠올리는 반면, 오랜 시간 손상과 충격이 누적되며 발병하는 질환은 놓치기 쉽다. 하루 10회 내외씩 부상자를 들것으로 옮기는 구급대원의 허리디스크나, 화재 진압 현장을 사무실처럼 출퇴근하는 현장 진압대원이 얻게 되는 희귀 폐암을 비롯한 각종 직업성 암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세포와 유전자 단위의 상당한 손상이 누적되며 발생하는 암은 ‘소방대원의 고질병’으로 떠올리더라도, 실제 인과성을 따지기 매우 어렵다. 국제암연구소(IARC)조차 2022년에야 화재 현장에서 노출되는 유해물질 및 교대근무 등 소방대원의 근무 환경과 암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일부 암종에 대해 1군 발암 요인으로 지정했다. 오랜 기간 2군 발암 요인으로 그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추정’해온 지 13년 만이었다. 인과성을 확인한 암종 역시 제한적이다.

6월18일 밤 아산시 인주면 공장 화재 사고 현장. 사진의 재배포를 금합니다. 충남 119특수대응단 해저터널구조대 제공

이에 대해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암은 유해 물질에 노출된 직후 바로 발생하는 병이 아니다”라며 “대부분 고형암은 5~10년의 잠복기를 가질 뿐 아니라 중피종(흉막·복막 등 신체 내부 장기를 덮는 보호막인 중피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의 경우 유해 물질 노출 후 약 40년이 지나서도 생기는 사례가 보고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는 “현재는 현직 소방관의 암 발생 사례를 집계하지만, 이미 질환을 앓았거나 퇴직한 상태의 대원들까지 포함한 분석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정년퇴직을 1년가량 남겨둔 최 소방경(50대 후반, 35년 이상 근무) 역시 같은 부분을 지적한다. 그는 지난해 9월 희귀 암종인 ‘육종양 폐암’을 진단받았다. 해당 암종엔 현재 쓸 수 있는 항암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그는 1기에 발견해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고 공로연수를 받아 회복 중이다. 최 소방경은 “투병 중 ‘과거 한 근무지에서도 동료 두 명이 같은 희귀암에 걸렸던 것’이 생각났다”고 말한다.

4월25일 오후 천안시 동남구 공장 화재 사고 현장. 사진의 재배포를 금합니다. 충남 119특수대응단 해저터널구조대 제공

최 소방경은 “일반인들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을 소방관들은 밥 먹듯이 보게 되기에 몸과 마음이 관련 직업성 질환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그는 이어 “외근직뿐 아니라 내근직도 마찬가지”라며 “내근한다고 사무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응 1단계만 발령돼도 인근 관할 소방서의 모두가 출동하기에 내근직도 자주 화재 등 재난 현장에 같이 가서 현장 활동을 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대응 1단계는 3단계의 재난 대응 단계 중 일상적 사고에 발령되는 가장 낮은 단계로, 10명 미만의 인명 피해, 상황 해결에 3~8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재난에 발령된다.

충남 119특수대응단 해저터널구조대에 근무 중인 김래형 소방경(46살 남성, 17년9개월 근무)은 올해 8월 폐암 1기를 진단받고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담담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무방비로 당하는 것보단 준비하고 당하면 덜 아프지 않겠나 싶어서” 매년 폐 영상 검진을 받던 그는 2016년 6.5㎜의 결절을 발견하고 추적관찰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김 소방경은 “해저터널구조대다보니 화재뿐 아니라 물에 빠지는 사고나 교통사고 등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우리 직원 모두 ‘항상 다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어느 곳에서나 서로 안전을 봐준다. 그렇기에 또 대범하게 (암을) 받아들이려고도 노력했다. 제가 암이라고 기운이 빠져 우울해 있으면 직장 분위기가 안 좋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건강관리와 회복에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폐암 수술을 앞두고서도, 또 한 달 전 복귀한 뒤에도 동료들과 폐활량을 늘리는 운동 등을 함께 하고 있다. 동료 환자들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함께 용기를 갖고 앞을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희망은 13년 남은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정년퇴직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요청이 있었다. 암을 비롯한 직업성 질병에 대한 소방대원의 공무상 요양(공상)을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공상 당연인정제’다. 소방대원으로서 시민의 안전을 지켰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2023년 ‘공무원재해보상법’을 개정해 소방공무원의 직업성 암을 공무상 재해로 추정하는 ‘공상 추정제’를 도입한 상태다. 다만, 여전히 10년 이상의 근무 경력과 중피종, 방광암, 폐암 등 6개 직업성 암종 등 제한이 있어 공상 인정에서 배제되는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정경숙 교수는 “암 발생 특성과 함께 그간의 관련 자료나 데이터가 적었기 때문에 소방관의 암 발생 인과성을 역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현재의 공상추정제만 해도 과거에 비해 엄청난 발전이긴 하지만, 이를 당연인정 기준으로 바꾸면 사회적 부담이 커지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아직은 그 합의 정도가 이 정도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향후 역학 입증 자료를 체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각 소방서마다 안전보건 관리 담당자를 두고 업무상 위험요인 노출 사항을 매번 보고하도록 하고 모든 소방서에서 동일하게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장비와 시설 구비 사안을 매뉴얼화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두 사람은 대한암협회와 유한재단은 소방청과 지난 10월 협약을 맺고 진행 중인 ‘암중모색’ 캠페인의 도움을 받았다 ‘암은 환자 개인의 질환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위기’라는 문제의식 아래 폐암과 기타 희귀암 등을 투병 중인 전·현직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체 3억원 규모의 치료비 및 생활안정비를 전달하며, 소방의날을 맞아 119명에게 우선 지원했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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