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美연방대법원 분위기 “트럼프 관세, 의회 권한 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초 취임 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관세 정책이 최대 위기에 처했다. 미 연방 대법원이 5일 트럼프 관세 정책의 위법 여부를 놓고 심리에 들어갔는데, 9명의 대법관 중 최소 6명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법원이 관세 권한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일부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전 세계에 부과한 상호 관세를 토대로 무역 협정을 맺은 각국에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 대법관들도 관세에 부정적
현재 대법원은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해 보수 성향이 6명, 진보 성향이 3명인 구도다. 하지만 이날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심리 결과,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을 포함해 최소 6명이 트럼프에게 불리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졌다.
법적 쟁점은 “미국의 무역 적자는 비상사태이고, 이를 위해 각국에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트럼프 주장처럼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에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할 여러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데 그중 하나는 수입을 ‘규제’할 권한이다. 1·2심은 모두 위법 판결을 내렸다.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트럼프의 관세가 비정상적으로 광범위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이) 어떤 나라의 어떤 상품이든 어떤 세율로든 어떤 기간이든 관세 부과 권한에 사용되고 있는데 그 주장의 근거가 부적합해 보인다”고 했다. 트럼프가 임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도 “(미국의) 방위 및 산업 기반에 대한 위협 때문에 관세를 부과해야 했다면, 왜 그렇게 많은 나라가 상호 관세 대상이 돼야 하느냐”고 했다. 역시 트럼프 때 임명된 닐 고서치 대법관은 정부 측 대표로 법정에 나온 존 사우어 법무 차관에게 “관세 문제는 대통령에게 고유 권한이 있는 대외(對外) 사안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대통령이 심지어 외국과 전쟁을 선포하겠다는데도 의회는 그냥 바라보라는 거냐”며 따지듯 말했다.
진보 성향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관세는 대통령 권한이 아니라 의회 권한”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과거 하급심 법원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유사한 법률에 따라 관세를 부과한 것을 허용한 선례가 있다면서 이는 의회가 대통령에게 “비상사태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우어 차관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공황 수준의 경제 붕괴, 무역 협상 중단, 외교적 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관세 ‘환불 대란’ 오나
대법원은 국가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이번 사건을 신속 심리로 다루기로 했기 때문에, 이르면 수주에서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전방위적 관세 정책은 탄력을 받게 된다. IEEPA가 규정한 ‘국가비상사태’를 명분으로 트럼프가 사실상 의회 견제 없이 관세 부과를 이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스콧 베선트 재무 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매우 낙관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도 위법 판결이 나오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0개월간 수입 업자와 기업들에서 걷은 관세의 환불 문제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후 약 890억달러(약 128조원) 이상의 관세를 징수했다. 트럼프가 이 재판을 두고 “국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며 패소 시 “미국 경제에 재앙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가 전방위적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세계 각국과 맺은 무역 협정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시장 개방, 방위비 인상, 대미 투자 등 ‘특정 조건 이행 시 관세 인하’를 전제로 각종 협상을 해왔는데 이러한 법적 근거가 사라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합의를 철회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번 소송에서 패하더라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플랜 B’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안보 관련 비긴급 조항인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 다른 법적 근거로 우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IEEPA만큼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권한은 없어 관세를 전방위적 지렛대로 삼아온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속도와 범위는 기존과 비교해 크게 제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대법원 판결은 트럼프의 대통령직에 있어서도 정치적으로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순간”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지층엔 사이다, 기업엔 저승사자… 트럼프급 ‘X 정치’
- “늙어갈수록 본심을 숨겨야 약이 된다. 그래야 추하지 않다”
- 그 땐 몰랐다…서울 지하철 첫 말뚝이 휘었다는 걸
- 패럴림픽 첫 경기서 바이애슬론 김윤지 4위로 출발...알파인스키 최사라도 4위
- 한국 상대로 홈런 쏘아올린 오타니...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
- 약속의 8회, 이제는 없나... 야구대표팀, 日에 6대8 역전패
- 미 최정예 공수사단, 돌연 훈련 취소…이란 지상전 투입?
- 약속의 8회, 이제는 없나... WBC 日에 6대8 역전패
- ‘천만 감독’ 장항준…대통령·장관 잇달아 축하 메시지
- 트럼프, 이란 공격 확대 시사... “오늘 매우 강한 타격 입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