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심장을 거머쥔 사회주의자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5. 11. 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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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무슬림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
민주당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자가 4일 미국 브루클린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연설했다. /AP 연합뉴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을 이끌어 갈 시장을 뽑는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이자 자칭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인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하원 의원이 4일(현지 시각) 당선됐다.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맘다니는 무슬림으로 첫 뉴욕 시장이 됐다.

맘다니는 이날 선거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거물’ 앤드루 쿠오모(68) 전 뉴욕 주지사를 꺾었다. 맘다니는 당선 축하 행사에서 “뉴욕은 오늘 밤 변화를 위한 명령을 내렸다”면서 “소수를 위해 다수를 저버리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했다. 이날 브루클린을 비롯해 맨해튼, 퀸스 등 곳곳에서 맘다니 지지자들이 모여 승리를 축하했다.

맘다니는 2020년 주(州) 하원 의원 선거에 당선되며 정치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 10월 정치 경력 4년 차의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그가 뉴욕 시장 선거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지지율은 1%에 그쳤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유세 활동이 젊은 층을 파고들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철저하게 ‘먹고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공약은 서민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부유세 신설 등 반(反)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진 공약을 내놓자 월가 억만장자 등이 쿠오모 측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며 낙선 운동을 펼쳤지만, 맘다니는 이런 저항도 이겨냈다.

다만 뉴욕에서는 버스 요금 무료,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 등 맘다니의 공약이 시 재정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 정부와 갈등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맘다니는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을 겨냥해 “오늘 밤부터 뉴욕시는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라고 말했다.

복지센터 찾아 춤추며 스킨십 자칭 ‘민주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 4일 미국 뉴욕 시장에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생활 밀착형 공약과 함께, 시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선거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맘다니(왼쪽)가 맨해튼의 복지 센터에서 지지자들과 춤을 추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9·11 도시에 무슬림 시장… 무상 시리즈·부유세로 역전극

“미래는 우리의 손안에 있다.”

4일 밤(현지 시각) 뉴욕 시장 당선이 확정된 후 조란 맘다니는 첫 일성으로 ‘변화’를 외쳤다. 현장에 있던 지지자들은 “조란!”을 외치며 화답했고, 일부 지지자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미 정계에서 맘다니의 승리는 ‘파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상 정치 초짜인 그가 3선 뉴욕 주지사이자 한때 민주당 대선 후보군으로 꼽혔던 정계 거물 쿠오모를 압도적인 차이로 꺾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가가 위치한 뉴욕은 자본주의의 심장부로 불린다. 이곳에서 스스로를 ‘민주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맘다니가 혜성처럼 나타나자 처음에는 “당선 가능성이 없다”며 모두가 비웃었다. 특히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맘다니는 세계에서 이스라엘에 이어 유대인이 둘째로 많은 도시인 뉴욕에서 무슬림이라는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맨해튼에 있는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한 뒤 뉴욕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했다. NYT는 “출마를 결정했을 때 맘다니 선거 캠프조차 당선 가능성을 3%로 전망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는 맘다니의 당선 이유로 높은 물가로 고통받는 뉴욕 시민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본 공약과 소셜미디어를 꼽는다. 맘다니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보좌관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브롱크스와 퀸스를 누볐다. 그는 트럼프를 찍은 이유를 물었고, 시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비와 가자 사태와 관련한 이스라엘의 대응에 분노를 쏟아냈다. 맘다니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시 운영 식료품점 설치, 아동 무상 보육 제공과 같은 공약을 내세웠고,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현장에서 답을 찾고 이를 공약에 반영한 맘다니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맘다니가 됐어” 4일 미국 뉴욕 시장 당선자로 조란 맘다니가 호명되자 지지자들이 들뜬 표정으로 환호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그는 소셜미디어를 가장 세련되게 활용했다는 평을 받는다. 양복을 입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며 공약을 선전하고, 푸드트럭에 마이크를 들고 올라타 민심을 경청하는 내용을 영상으로 찍어 인스타그램 등에 올렸다. 젊은 층은 구세대 정치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을 맘다니에게 느꼈다. 맘다니는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지난 6월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승리했다.

맘다니는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지만,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다. 그의 급진적인 공약으로 억만장자가 도시를 떠나고 시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맘다니의 공약은 공공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재정 부족 문제는 고소득층에서 세금을 더 걷어 충당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연소득 100만달러 초과 시민에게 2%의 세금을 추가 징수하는 사실상의 ‘부유세’ 신설 카드도 준비 중이다. 또 최고 법인세율을 현 7.25%에서 11.5%로 인상할 것을 주장한다. 다만 뉴욕 시장이라고 해도 과세 제도에 손을 대기 위해서는 뉴욕주 의회와 주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과세가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로이터는 “경제 이론과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을 둔 정책은 뉴욕시의 주거비 부담과 같은 실질적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적인 공세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트럼프는 선거 전날 쿠오모 지지 선언을 하면서 “‘공산주의자’인 맘다니가 뉴욕 시장이 될 경우 뉴욕에 대한 연방 지원금을 끊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동안 다른 진보 도시에 비해 잠잠했던 이민 당국의 공격도 예상된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이민자의 도시인 뉴욕에 진입할 경우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맘다니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 중 누구에게라도 다가오려면 우리 모두를 뚫고 지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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