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사망' 화재 뒤엔 '쓰레기집' 청년 있었다…지원 사각지대에 갇힌 청춘들 / 풀버전

심가은 기자 2025. 11. 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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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경기 오산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큰 불이나 주민 1명이 숨졌습니다.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불이 커진 또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청년이 혼자 살던 집에 생활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 있었고, 여기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삽시간에 번졌던 겁니다.

심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심가은 기자]

[현장 도착 조에서 상황 판단해 본 바 건물 2층에서 다량의 연기가 분출하고 있고…]

지난달 20일 새벽, 사이렌소리가 오산 주민들의 잠을 깨웠습니다.

다세대주택 2층에 있는 한 호실에서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낸 불은 삽시간에 번져 건물을 뒤덮었습니다.

연기를 피하던 윗집 이웃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불 탄 흔적을 없애는 공사가 한창, 작업자들은 처음 방문을 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공사 현장 작업자 : 필요 이상으로 딴 사람보다 쓰레기가 그렇게 많더라고. 발 디딜 틈이 없었어. 여기만 남고, 이 안에 꽉 찼었어.]

20대 여성이 혼자 살던 다섯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 쓰레기만 두 트럭이 나왔습니다.

화재 당시를 보니 창문이 안 보일 만큼 쌓인 까만 잿더미가 현관 바로 앞까지 밀려나와 있습니다.

타다 만 맥주캔과 박스들, 모두 생활 쓰레기입니다.

다리 뻗을 곳도 없는 이 방에서 살던 여성을 이웃들은 기억했습니다.

끼니는 편의점에서 겨우 해결했고,

[인근 편의점 직원 : 아침에는 음료수 사 가시고. 거의 아침에 오시고 저녁 시간 (되면) 저녁에도 오시고…]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건물주 : 앉아 가지고 스트레스받고 이러니까 도시가스값도 못 내고. 내가 전화하면 문도 안 열어줘.]

여성은 경찰조사에서 일하던 편의점에서 가져온 폐기된 식품을 먹고 쓰레기를 집에 뒀다고 진술했습니다.

최근엔 아르바이트마저도 그만뒀는데, 무기력증이 심해지면서 불필요한 물건을 과도하게 쌓아 두는 '저장강박'을 앓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쌓아 둔 쓰레기 더미에 불이 붙으며 사고로 이어진 겁니다.

오산시는 지난 2023년 저장강박 가구를 보호하기 위한 지원 조례를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지원대상은 단 한 가구도 없습니다.

이 여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장강박 가구는 주로 이웃이나 지인의 제보로 발견되기 때문에 신고가 없으면 알기 어렵습니다.

은둔하는 청년들이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이유입니다.

결국 이곳엔 쓰레기 더미 만큼이나 거대한 우울이 오랜시간 방치돼 있었습니다.

[앵커]

쓰레기집에 갇힌 청년들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자비를 들여 청년 쓰레기집을 청소해주는 업체를 만나봤습니다. 청소를 의뢰한 사람 중 70% 이상이 20~30대라고 합니다.

이어서 송혜수 기자입니다.

[송혜수 기자]

바닥은 보이지 않고 천장까지 닿을 듯 쓰레기가 쌓여 있습니다.

쓰레기에 갇힌 청년의 집입니다.

[손용희/클린어벤져스 대표 : 의뢰가 한 달에 거의 100에서 150건씩 들어와요. 요즘 추세로는 거의 20~30대가 70% 이상…]

수백만원이 드는 청소 비용에 발길을 돌리는 '은둔 청년'만 한 달에 수십명.

업체 대표는 도움이 필요한 청년의 집을 무료로 청소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각지대의 청년들이 드러났습니다.

30대 김모 씨는 우울증을 앓으며 쌓여만 가는 쓰레기 속에 고립돼 있었습니다.

[김모 씨 : 저처럼 한 번 이렇게 구렁텅이로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이게 반복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이러다) 혼자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무료 청소 한 번이 희망이 됐습니다.

[김모 씨 : 뭐라고 말이 안 나와요. 그냥 살아보고 싶어서…]

대체로 쓰레기를 재산으로 인식하는 고령층의 저장강박과 달리 청년 쓰레기집은 우울증 등으로 무너진 일상이 원인입니다.

[백종우/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노인에 비해서 청년들이 더 잘 숨겨요. 그러니까 밖에서는 의외로 아무 문제없어 보이고 멀쩡하게 다니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집안에 가면 쓰레기가 꽉 차 있는 거예요.]

그 속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발굴부터 어렵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있는 '저장강박' 조례의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나 고령층 뿐입니다.

서울 용산구의회에서 처음으로 지원 대상에 청년을 명시했지만, 쓰레기집 청년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치료할지는 계획이 없습니다.

청년의 구조 신호를 놓치지 않을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옵니다.

[손용희/클린어벤져스 대표 : 청년 주거 클리닉 같은 이런 제도를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쉽게 신청할 수 있으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모 씨 : 알림 톡 이런 거로 뜨게 하거나 아니면 카카오톡 요즘에 안 하는 사람 거의 없잖아요. 홈 화면 같은 거에도 광고를 띄우고 그러던데 그런데 뜨면…]

[화면제공 오산소방서]
[영상취재 박대권 방극철 영상편집 원동주 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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